길 위의 '집'
2015년 4월.
오늘 흰머리 두 가닥 발견. 늙어가는 게 아니라 서서히 유러피언이 되어 가고 있는 거라 믿으며 이 글을 시작한다. 오늘은 유럽에 온 지 정확히 1년이 되는 날이다. 내가 유럽에 도착한 그 날, 한국에서는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다. 그래서 내가 네덜란드 스키폴 공항에 도착한 2014년 4월 16일을 나는 아마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한국을 떠나온 날. 내 나라는 소중한 생명들을 잃었다. 나는 뉴스와 기사로 많은 사연들을 접했고 울거나 분노를 삭이며 며칠을 보냈었다. 그리고 네덜란드에서 나는 4월의 시간들을 조용히 혼자 보냈다.
사실 혼자 보낼 수밖에 없었다.
나는 전쟁 요새를 전시공간 및 뮤지엄으로 활용하여 보존하고 있는 곳에서 지냈는데 그곳은 주말이 아니면 인적이 매우 드문 곳이었다. 주말엔 사람들이 입장료를 내고 요새를 투어 하는데 내가 머물던 레지던시도 벙커 형태 거의 그대로 그 안에 있었기 때문에 가끔 나는 동물원에 갇힌 원숭이가 된 기분이 들기도 했다. 사람들이 지나가다 창문을 통해 빼꼼 보는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주말에도 고작 몇 시간 시끌시끌하다가 저녁이 되면 다시 고요가 찾아왔다.
나는 외딴섬에 머무는 기분이 들었다. 문을 열 때마다 거미줄을 치워야 했고 밤에는 그야말로 정적 그 자체였다. 옆 방에 사는 아저씨는 부엌에서 가끔 마주치다가 어느 날 같이 저녁식사를 하게 되었는데, 그는 아티스트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총 세 개의 방 (아티스트 레지던스)이 있었는데 그 당시 그곳에 ‘사는’ 아티스트는 오직 나 혼자였고 나머지 두 명은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다른 아티스트들이 오면 그 방을 떠나야 한다고 했다. 처음엔 모든 것이 낯설기도 하고 무엇보다 벙커가 참 우중충해서 암담했다. 매일 밤 라디오를 들어야 잠을 청할 수 있었고 늘 거미들을 쫓느라 힘겨웠다. 그러다 문득 생각했다. 우주에서 나를 바라본다면 나는 이 세상 가장 안전한 곳에 머물며 거미와 마찬가지로 나만의 집을 짓고 있다는 생각. 거미의 입장에서 봤을 때 나 같은 불청객도 없을 것이다. 태어나 처음으로 독립생활을 해보는 것. 이 조용한 섬에서 두려움에 떨고 있는 사람은 오직 나뿐이라는 생각에 갑자기 주변이 보이기 시작했다. 밤에는 달과 별이 가까이 있고 아침에는 새소리에 저절로 눈이 떠졌다. 이웃 아저씨와 그 옆방 청년과 친해지고 난 뒤에는 그들이 아끼는, 이름까지 지어준 꿩이 매일 저녁 인사하러 온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 곳의 모든 동물들은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그들은 아는 것이다. 이 곳 사람들이 수년간 그들에게 절대로 해를 끼치지 않았다는 것을.
'두려운' 개는 오히려 자주 짖는다. 계속 무섭기 때문에 자신을 방어하려는 것이다. 나는 두려워하지 않는 법, 아니 담담하게 세상을 받아들이는 법을 이 곳의 거미를 통해, 모든 동물과 자연을 통해 배울 수 있었다. 그리고 눈이 슬프고 맑은 7번 방 청년이 내게 알려주었다.
"두려움은 사람의 감정, 즉 희로애락에 속해있지 않아. 두려움은 각자의 마음이 만들어낸 망상 같은 거니까. 감정은 늘 ‘사랑’을 전제하고 있거든." 그리고 나는 그 청년과 두려움 없이 사랑에 빠졌다.
아직도 내가 3개월이나 벙커에서 잘 지냈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아마 7번 방 청년을 만나서 벙커마저도 핑크빛으로 보였기 때문일까. 내게 네덜란드의 전쟁 요새는 여러모로 의미 있는 곳이다. 그 3개월의 시간을 긍정적인 마음으로 작업에 열중했고, 전시를 잘 해냈을뿐만 아니라 나는 이제 그 어디에서도 살아나갈 수 있는 자신이 있기 때문이다. 나 벙커에서도 살아봤는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