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는 집에 사는 나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고 싶을 수도 없다.
그러나저러나, 나는 내 안에 세상의 모든 꿈을 품고 있다.
내 방 창문들,
그 누구도 모르는, 세상에서 수백만 개 가운데 하나인 그 방의 창문들,
(그 누군가 나를 알았다 한들, 무얼 알았겠는가?)
너희는 끊임없이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거리의 신비로 향해 있다,
어떤 생각도 가닿을 수 없는 거리로,
현실적인, 불가능하게 현실적인, 확실한, 알 수 없게 확실한 거리로,
돌들과 존재들 아래 사물들의 신비와 더불어,
벽들을 축축하게 하고 머리카락을 새게 하는 죽음과 더불어,
아무것도 아닌 길로 만물의 짐수레를 이끄는 ‘운명’과 더불어.
오늘 나는 패배했다, 마치 진리를 알아버린 듯.
페르난두 페소아 <담배가게> 중.
안토니오 타부키(Antonio Tabucchi) 선집 7
페르난두 페소아의 마지막 사흘 - 어떤 정신착란
오늘 기분이 심란해서 친구가 보내준 책을 읽었다. <페르난두 페소아의 마지막 사흘>
페르난두 페소아의 책 <불안의 서>를 보다가 창가에 놓아둔지 한 2주가 지나갔는데, 오늘 이 새로운 책을 단숨에 읽어버렸다. 문득 한국에서 작업이 잘 풀리지않을 때 책을 읽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한국에서는 친한 친구가 출판사에서 일했기때문에 난 운좋게도 많은 책들을 얻을 수 있었다. 한국어로 쓰여진 수많은 책들.. 그립다. 이곳에 오고나서 독서에 게을러졌다. 2년 전에 암스텔담의 공공도서관에서 무라카미 하루키의 '해변의 카프카'(영문판)를 읽고 뿌듯해하며 이제부터 영어로 된 책들도 많이 봐야지, 다짐했건만 역시나 읽는 속도에서 스스로 짜증이 났다. 막 내용에 빠져들고 있는데 모르는 단어가 하나 튀어나오면 집중력이 달아나버리는 것.
어쨌든 지금 내게 필요한 건 독서였다.
페소아나 타부키의 글에는 이미지가 있다. 나는 이미지를 확연히 연상시키는 글이 너무 좋다.
페소아는 여러명의 자아를 창조해서 마치 그들이 얘기하는 것처럼 그의 책을 썼고, 타부키는 페소아의 자아들을 마치 실존하는 인물처럼 그려내어 페소아가 죽기전 그들과 나눈 이야기를 소설로 썼다. 위의 시 <담배가게>는 타부키가 페소아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게 된 '이유'였다고 한다.
'불안의 서'를 읽다보면 스스로에 대한 탐험에서 뜻밖의 우주를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사실 굉장히 힘든일 이다. '나'를 탐험한다는 것은 마치 스스로 내 몸을 해부해야한다는 것과 같은 느낌일 것이다. 포장할 수도 없고 비하할 수도 없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바라본다는 것은.
그래서 깨달은 사실은 내가 다른 사람을 보고 듣고 판단하는 것은 그에 비해 굉장히 쉬웠다는 것이다. 그래서 페소아도 여러명의 자아를 만들어 더 냉정하게 자신을 꿰뚫어 보고 싶었던 걸까.
오늘 언니와 통화하면서 요즘처럼 슬럼프 시기에 자화상을 그려볼까한다고 얘기했다.
그런데 예전부터 자화상에 대해 고민했었지만 왜 이렇게 그리기가 싦은걸까.
사실 나와 너무 안닮게 그릴까봐 두려웠고 또 닮게 그릴까봐 두려웠다.
'나'라는 우주. 내가 한국을 떠나고 내 나라의 얼굴이 보였던 것처럼.
그리고 페소아처럼 나와 조금 떨어져 나를 바라보는 쾌감을 느껴보고 싶다. 다른 사람이 보는 내가 아니라, 내 안에 살고 있는 여러모습의 내가 나라는 우주를 탐험하게 하는 일.
오늘 책이 내게 준 영감. 고마운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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