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번째 이야기

_시간의 바깥을 상상할 수 있다면

by Artist K

1. 도화원의 시간


내가 쓴 박사논문의 주제는 '무릉도원'이었다. 동양의 낙원에 대한 이야기.

중국의 작가 도연명(365-427)이 <도화원기>라는 글을 쓴 후, 화가들은 그 이야기를 바탕으로 도원도를 그리기 시작했다. 내가 도연명의 글에서 주목했던 점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모두 날짜와 시간을 모른 채 산다는 것이다. 도원 이야기에서 마을 사람들은 대략 500년 동안이나 바깥세상으로부터 단절되어 살아온 사람들이었다. 시간이 멈춘 곳, 그리고 한 번의 방문 후에 끝끝내 다시 찾을 수 없었던 그곳. 작가는 왜 그런 곳을 낙원이라고 상정했을까.

나는 궁금했다. 그래서 작가의 일대기를 연구했고 그가 한때 정치인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가 정계를 떠나 전원생활을 하면서 시를 짓고 술을 벗 삼아 오직 자신을 위한 시간을 만끽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시간의 바깥에 있는 기분. 세상과 단절된 그 기분을 그는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 평화로운 순간을 그는 '낙원'이라는 장소로 창조했는지도 모른다.


내가 있는 지금 이곳은 한국보다 하루가 느리다. 그리고 왠지 사람들도 느린 것처럼 느껴진다. 모든 게 천천히 흘러가는 기분이 드는데, 어느 순간 달력을 보면 깜짝 놀라곤 한다. 역시 시간이 멈춘 건 아니구나.

그런데 내가 한국으로 돌아가는 상상을 할 때마다 나는 지금이, 그리고 이 곳이 벌써 꿈처럼 느껴진다.

베를린에 머물고 있을 때, 몇 개월간의 아티스트 레지던스를 마치고 자기들 나라로 돌아가는 아티스트들이 말했다. "이제 현실로 돌아가네." 나는 그때 다음 살 집을 구해야 하고 머리 아픈 현실 문제로 고민하고 있었다. 내가 살아내야 하는 이곳이 그들에겐 꿈과 같은 곳이구나. 하긴 나 역시 한국에서 베를린을 상상했을 때 꿈같았으니까.


예술가로 살아내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내가 있는 이 곳에서는 예술가를 존경한다. 삶이 팍팍해도 누군가에게 내 직업을 말할 때 우쭐해지는 기분이 든다. 팍팍한 삶에서도 의미를 찾아내고 또 무언가를 창조한다는 것은 존중받아야 한다.

도연명은 현실적인 정치가들에겐 아웃사이더였고 한량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가 남긴 글은 역사가 되어 지금 이 시대에도 연구할 가치가 충분히 있다. 그는 '동양의 낙원'을 만들어내었고, 이후에 작가들은 그 이야기에서 비롯된 생생한 이미지를 통해 시를 짓고, 화가들은 그 주제로 수많은 그림을 그렸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안견의 <몽유도원도>를 보면서 감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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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우리는 어디서 왔으며, 누구이고, 어디로 가는가?>


고갱의 그림 제목이기도 하다.



예술가로 살아내기 다섯 번째 단계는 시간의 바깥, '잠시 낙원(내가 모르는 곳)에 다녀오기'이다. 반드시 베를린이나 외국에 갈 필요는 없다. 고갱도 낙원 같은 타히티에서 충분히 괴로운 시간들을 보냈다. 그래도 살아내고자 한다면 '다른 시간'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예를 들어 무릉도원에 대한 호기심으로 작가를 찾아보고 연구하다가 논문까지 쓰는 지경에 이르는 것처럼, 다른 분야에 잠시 기웃거리는 것도 좋다.

가장 추천하고 싶은 것은 외국어를 배우는 일. 도화원 운운하다가 갑자기 외국어라니.

그러나 과학적으로도 좌뇌와 우뇌를 함께 쓰는 일에 언어를 배우는 게 좋다고 하니 시도해볼 만하다.


'내가 어디서 왔으며 누구이고 어디로 가는가'를 어린아이에게 묻고 싶다.

아직 뚜렷하게 쓰인 것이 없는 그 마음에 묻고 싶다. 그래서 우리는 새로운 것을 배워야 한다. 아무것도 모를 때의 그 겸손과 호기심과 용기를 찾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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