켈리 장 스튜디오
오늘의 작업
베를린의 아티스트 레지던시. 3개월 동안 그곳에 있었고 꽤 많은 작업들을 했다. 이 작업은 그중에서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업이다. 캔버스에 프린트한 작업은 독일의 쾰른에서 판매되었고 아무래도 아쉬워서 유리(glass) 위에 프린트해서 보관 중이다. 이 작업은 내게 많은 기억을 환기시킨다.
쾰른의 아트페어에 참가했을 때 나는 베를린에서 개인전을 막 마치고 온 참이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베를린 지하철에서 지갑을 소매치기당했다. 친구에게 돈을 빌려 겨우 네덜란드의 집까지 왔지만 아트페어까지 갈 생각을 하니 막막했다. 그땐 한국에서 보내주는 돈으로 연명하고 있던 터라 은행카드를 잃어버렸기에 난감했던 것이다. 베를린에서도 그림 한 점 못 팔고 왔기에... ㅜㅜ
쾰른에는 겨우 갔고 나는 그곳에서 그림을 판매할 수 있을 거라 막연히. 믿었다. 그러나 아트페어 마지막 날까지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당시 여차저차 마련한 내 잔고만으로 나는 판매되지 않은 그림들을 싣고 네덜란드까지 올 렌터카가 필요했다. 그런데 렌터카 회사에 가서 보니 돈이 턱없이 모자랐다. 당황하는 내게 렌터카 회사 주인 왜 여기 왔냐고 물었고 나는 아트페어에 참여 중이며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 차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내 작업들을 보여줄 수 있냐고 물었다. 그는 내 작업들을 찬찬히 살펴보다가 이 작업을 자신이 기존 판매금액의 반 값에 살 수 있냐고 다시 물었다. 그는 그림을 사는 것이 취미이며 마침 거실에 걸어둘 그림이 필요하다고 하는 것이다. 나는 눈물이 날 정도로 고마웠다. 그는 나를 도와주고 싶었으리라. 나는 정말 적은 돈으로 차를 렌트해서 집까지 안전하게 올 수 있었고 재료를 구입할 수 있는 여유자금도 마련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는 부인과 직접 아트페어에 방문해서 포장된 나의 작업을 기쁘게 안고 갔다.
내 현실이 참 초라하게 느껴졌음에도 많이 감사한 순간이었다.
나는 당시에 내가 그 아트페어에 참여할 수 있도록 도와준 투자자분의 도움으로 독일에 내가 머물 수 있는 스튜디오를 갖고 있고 올해 여러 프로젝트에도 참여하게 된다.
가까이서 내 인생을 들여다보면 나는 지금도 늘 곤궁한 기분이고 언제쯤 가족들에게 진 빚을 다 갚을 수 있을지 막막하다. 멀리서 나를 바라보면 내 주변에 감사한 사람들이 보인다. 그리고 그에 보답하기 위해서 나는 감사함을 잊지 않고 열심히 살아가야 함을 깨닫는다. 축축 쳐지는 마음을 다 잡으며!
외국에서 외국인 예술가로 살아간다는 것은 기차의 일등석에 기쁘게 탄 후, 편하게 앉지 못하고 힘들게 서서 가는 것과 비슷한 어떤 느낌적인 느낌이다. 예술활동이 게다가 해외에서 하는 작업활동이 겉으로는 거창해 보여도 막상 입문하게 되면 위태롭게 중심을 잡아가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간절히 원했던 누군가는 탈 수 없는 기차를 탔기에 나는 언제 내릴지 모르는 이 여정을 충실히 지켜나가야 한다. 물론 가끔은 만원기차 이등석에 좁고 빠듯하게 선채로 여행 가는 기분이 들 때도 있지만.
이 작업은 외국인으로서, 낯선 여행자로서 내가 멀리서 본 세상의 단면이다. 아니 그냥 내 심경이다. 한때의 아름다움이 그대로 머물기를. 그렇게 얼어버린 시간 속에 머물기를. 정물의 언어적 의미 스틸라이프에 주목한 작업이었다. 살아있지도 죽어있지도 않은 상태. 삶도 죽음도 '변화'에 지나지 않음을 표현하는 작업을 만들고 싶었다.
작업을 하다 보면 나 자신이 어떤 사람인가. 생각하게 된다.
내가 누구인가.
왜 나는. 그것을 믿는가. 그리고 왜 그렇게 바라보는가.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가.
무엇으로 만들어 낼 것인가.
나는 언제 어디에 있을 것인가.
천재들은 대부분 자신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짐 퀵(Jim Kwik)이 말했다.
내가 아직도 이렇게 헤매고 있는 걸 보면 난 평범한 정상인임이 분명하다. ㅎㅎㅎ
그러나 다시 말하면 그의 포인트는 자신에 대해 더 깊이 알면 자신이 하는 일이 더 빛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단지 내가 이곳에서 외국인임을 인식한다. 그리고 낯선 자의 시선으로 세상을 본다.
내가 떠나온 곳에서 내가 할 수 없었던 생각을 한다. 누군가는 자신의 집에서도 세상을 볼 것이다. 나는 떠나와서 철저히 이방인 신세가 되었을 때야 편견의 무서움을 볼 수 있었다. 내가 안다고 생각했던 모든 것들이 산산이 무너져내리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럼에도 끊임없이 놓지 못하고 있는 욕심들.
어쩌면. 저 작업에서 저렇게 보내지도, 놓아주지도 못한 시간들은 내 욕심의 단면들 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