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튜디오 라이프
나는 독일의 스튜디오에서 머물고 있다.
오늘 문득 2014년 유럽생활을 시작할 때 부터 적어둔 작업노트들을 다 꺼내보았다.
요즘 생각만 많고 작업이 잘 되지않아 시작한 일이었다.
그렇게 쌓여있는 노트들은 대부분 아이디어를 두서없이 적어놓았거나 낙서처럼 스케치를 해둔 것이었다. 그런데 2016년 노트를 펴서 보다가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다. 거기엔 작업에 대한 아이디어보다 요리의 레서피들이 더 많이 적혀있었던 것이다. 나를 위한 요리는 아니었다. 그리고 그 때 나는 많이 위축되어 있었다. 요리나 청소에 집중할 때 오히려 덜 우울했던 기억도 난다.
그 힘들었던 시간들이 떠올라서 갑자기 울컥했다. 내가 나를 처량하게 여기는 순간에 객관적인 감정을 갖는 것이 아직은 어렵다.
지금 나는 이렇게 좋은 스튜디오를 갖고 있고, 작업을 실컷할 수 있는데 무조건 더 좋은 작업을 해야한다는 욕심이 오히려 나를 억압하고 있다. 오늘 그 노트를 보게 된 건. 아마 우연이 아니었을 것이다.
한 소설가는 말했다. 지금. 이 순간의 지극한 행복을 누리지 못한채 무언가에 계속 얽매야 살아가는게 노예의 삶이라고.
집인듯 집같지 않은 작업실로 나는 매일 돌아온다. 작업실에 살고 있는 내가 좋다.
그러나 이렇게 새처럼 이곳 저곳을 옮겨다니게 되면 삶의 리듬이 매번 부서지는 것을 보게 된다.
네덜란드에서 아침마다 했던 언어공부도 여기 와서 아침 스트레칭으로 대체되었다.
이곳은 다른 아티스트들과 함께 지내는 곳이기에 늘 약간의 긴장감을 갖고 지낸다. 예민한 아티스트들 사이에서 때론 스트레스가 쌓이기도 한다. 어디에나 다 좋을 수는 없으니까.
그래도 매번 아이디어로 채워지는 노트를 보면서
초현실적으로 훌륭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내 안에 이야기들이 쌓여간다.
그 겹겹의 이야기들이 내가 되고 내 글이 되고 내 작업이 되고
그렇게 매 순간을 잘 살아내고 싶다.
그래서 어느날 나는 베를린의 뜨거운 햇살아래 손으로 녹아내리는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외쳤다.
'이게 바로 행복이지!'
나는 끊임없이 성장하고 싶다.
지금처럼 매일 배움으로 채워지는 삶을 살고 싶다.
내안에 아직도 남아있는 오래된 편견과 고정 관념들이 하나씩 부서지는 쾌감을 느끼면서
나의 무지함을 반성하고 또 그런 나를 용서하면서
어린아이처럼 작업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