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가 찍은 사진 Part 2
아티스트를 위한 플랫폼 웹사이트에서 제안을 받아 오늘부터 글을 게재하기로 했다. 나의 부족한 글이 조금이나마 다른 이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https://artlecture.com/article
나는 2015년 베를린의 아티스트 레지던시에서 머무는 동안 내셔널 지오그라피 사이트에서 아름답고 비극적인 사진을 보았다. 2010년 파키스탄의 한 작은 마을에서 엄청난 홍수로 인해 마을이 물에 잠겼고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많은 수의 사람들이 실종되었거나 사망했다. 그때 그 마을에서 신기한 현상이 일어났는데 그것은 거대한 거미줄 나무였다. 물이 불어나자 거미를 비롯한 수많은 곤충, 벌레 등이 나무 위로 올라가 거대한 집을 만든 것이다. 멀리서 보면 솜사탕들이 줄지어 있는 듯 보였다. 굉장히 몽환적인 풍경이었다. 그 당시 인터뷰에 따르면 바이러스를 옮기는 모기 등이 거미줄에 갇혀? 더 큰 인명피해는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나무들이 충분한 햇빛을 받지 못해 죽어갔다. 결국 사람들은 나무를 자르기 시작했다.
나는 동양화를 전공했고 동양의 철학, 주로 중국의 철학을 공부했다. 나는 자연으로부터 세계를 보는 방법에 대해 배웠다. 대학생활 내내 자주 산에 가서 스케치를 했고 그것은 의무였고, 그 경험으로부터 산수화가 얼마나 개념적인지 알게 되었다. 그러나 나는 서울이라는 도시에서 한국의 자본주의 시스템의 거품이 거품 인지도 모른 채 그 비눗방울 안의 한 명으로 살아가게 된다. 그래서 작업만을 한다는 사실이 초라해지고 명예나 자본이 없으면 스스로를 변명할 힘이 없다고 느꼈다. 나에게 비눗방울을 스스로 터트리고 나오는 일이 한국을 떠나는 방법이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무(無)가 되게 하는 일. 그건 새로운 곳에서 아무것도 없이 시작해 보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곳에 오니 나는 한국에서 내가 산에 올라가야만 느낄 수 있었던 세계를, 나를 먼 곳에서 한 번쯤 바라보는 그 시간을 삶에서 자주 갖게 된다. 특히 거미줄 나무를 보았을 때 나는 이 세계가 거대한 거미줄 같다는 생각을 했다. 사람들은 마치 영원히 살 것처럼 이 세계에 무언가를 새기고 자취를 남기고 싶어 한다. 그러나 피고 지는 꽃의 생애처럼 우리도 지금 여기와 영영 이별하게 될 것이다. 인간의 욕심으로 인해 자연환경은 점점 파괴되어간다. 자연 역시 그들의 생명에 위협을 느낀다면 스스로 파멸하기 이전에 다른 누군가를 파괴할 것이다. 본래 '나무'였던 나무가 거미줄 나무가 되기 이전에, 지구가 파괴된 혹은 사라진 지구가 되기 이전에. 우리는 있는 그대로를 지켜야 할 소명이 있는 것이다.
나는 2014년 8월부터 거미줄 나무로부터 영감을 받아 정물 작업(스틸라이프 시리즈)과 The Tattoed Flower 작업을 해왔다. 정물화는 현세 특히 *물질에 대한 집착을 보여주기도 하고 혹은 *죽음의 허무(바니타스)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한다. 내가 산수화에서 사용하는 시각. 즉 서양의 원근법과 다른 자연을 보는 나의 시각을 정물화에 적용하고 싶었다. 그리고 Still Life라는 단어가 내게 주는 '시간'적인 영감이 있다.
*필립 아리에스 (Philippe Ariès; 21 July 1914 – 8 February 1984)는 중세 말기에 사람들이 얼마나 현세에 대해 강한 애착을 보이게 되는지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생명 없는 물질을 얼마나 사랑했던지 심지어 '정물'이라는 장르를 낳을 정도였다니까. -춤추는 죽음 1- 진중권
*바니타스(Vanitas)는 16-17세기의 네덜란드와 플랑드르 지역에서 정물화에 특히 관련 있는 상징과 관련된 예술작품의 한 종류로, 그 이외의 장소들과 다른 시기에서도 인기가 있었다. 특히 중세 유렵은 흑사병과 30년 전쟁이 휩쓸고 간 역사적 시기와도 무관하지 않다. 바니타스는 라틴어로 "바니티"를 뜻하고 대략적으로 해석하면 세속적인 삶과 모든 세속적인 추구, 물질의 무의미함과 일치한다.
내가 이곳에 적응해갈수록 나의 작업들 안에 여러 가지 시각들이 혼재됨을 느낀다.
나는 무엇보다 여기서 만나는 아티스트들에게 영감을 받는다. 사실 모든 사람들에게. 이곳에서 주목받는 작업들은 대부분 정치적, 사회적 이슈를 다룬다. 그리고 역사와 철학은 이미 그들의 문화에 온전히 스며들어 있다. 그들의 작업을 보면 그들이 이 세계의 모든 이슈에 얼마나 깨어있는가(Awareness is the ability to directly know and perceive, to feel, or to be cognizant of events. More broadly, it is the state of being conscious of something)를 알 수 있었다. 자신에게 침잠하면서도 세상을 향해 언제나 듣고 보고 느끼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세계를 향한 끝도 없는 질문이 유럽의 예술을 지속적으로 발전시킨다고 봐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외국인 아티스트로서 다른 나라에서 자리를 잡아나가는 일이 쉽지는 않다. 다만 비현실적인 몽상가에서 좀 더 현실적인(다소 비관적인) 낙관주의자로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내가 깨어있을 때 나는 배울 수 있다'는 진리를 늘 마음에 새기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