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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tist 켈리장 Jan 20. 2019

지금을 바라보는 두꺼운 시선

A Thick Gaze Now

The Gaze   설치, 비디오, 사진          베를린 2015 

동양화를 전공한 나는 '시점'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동양화에서 자연을 바라보는 시점은 서양의 원근법과 다르게 관찰자 중심이 아니다. 예를 들면 '나'의 시점은 당연히 가까이 있는 것은 크고 멀리 있는 것은 작아야 한다. 

반면에 동양화에는 세 가지 시점이 존재하는데 이는 주로 풍경을 표현할 때 사용된다. 산 위에서 풍경을 내려다보는 시점, 산 정면에서 바라보기, 산 너머의 산 즉, 산 앞에서 바라보되 깊이를 측정하기.

이는 내게 마치 작은 인간이 거대한 자연을 마주하려면 제대로 관찰해야 한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유럽으로 온 지 어느덧 5년이 되었다. 나는 이곳의 원근법에 익숙해졌다. 내가 모든 것의 중심이 되어 세상을 바라보고 내가 서있는 곳에서 나의 시점은 시작된다. 

요즘 그 시점이 나의 삶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 느끼는 순간들이 있다. 직선의 삶. 선의 형태로 인식되는 삶. 결국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면서 점점 조급 해지는 마음.

오늘 레오에게 물었다.

"내가 왜 자꾸 실수를 하게 되는지 모르겠어. 계속 이렇게 조급한 마음으로 살게 되면 어떡하지?"

"시점을 바꿔봐." 그는 무심하게 말했다.

"현재에서 과거를 바라보듯 미래에서 지금의 너를 바라보는 거야."


버릇처럼 언어를 자주 이미지화시키는 나는 직선의 삶이 갑자기 입체적으로 변하는 것을 상상했다. 그리고 한국에서 산을 걸어 오르며 느꼈던 그 미묘한 감정이 새삼 떠올랐다. 

산 밑에서 바라볼 때 이 산은 참 거대하게 느껴졌는데, 오르다 보니 나는 산을 내려다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너머의 산을 바라보며 풍경의 깊이를 실감했었다. 삶도 산처럼 직접 오르지 않으면 평생 올려다보며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내가 이 삶을 제대로 표현하려면 나는 두꺼운 시점을 가진 관찰자가 되어야 한다. 

그것은 나를 바라볼 때도 마찬가지다. 나에게서 완전히 분리되어 나를 바라볼 수 있게 되기 위해 사람들은 명상을 한다. 잠시 자신과의 거리를 가질 수 있을 때 나는 나와 연결될 수 있는 장소를 찾게 되는 것이다. 내게 그 장소가 생기면 나는 다른 모든 것들과도 연결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세상에 대해, 내가 알지 못하는 것들에 대해 너그럽게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가는 것이다. 나를 사랑하면 다른 모든 것들을 사랑할 수 있게 된다는 단순한 진리가 이토록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방인-바람이 부는 곳에 서서.  60x40cm, 혼합재료 2015


미래의 시점으로 나를 바라보니 반성할 것들이 많았다. 쓸데없이 하는 걱정들도 많았다. 여전히 용서하지 못하고 붙잡고 있는 원망들이 있었다. 20년 후의 나는 지금의 나를 바라본다. 모든 게 크게 변하지 않았다고 느끼는 나를 본다. 나는 그대로인데 무정한 시간만 훌쩍 가버렸다고, 지금처럼 한탄할지도 모른다. 먼 미래에서 나를 바라보니 조금 코믹하기도 하다. 벽을 향해 돌진하는 동물처럼 서둘고 실수하고. 사소한 일들에 연연하고. 

그런 서툰 내가 또 아련하고.그래서 지금의 나를 더 아껴주어야겠다고 다짐한다.


내가 현재 지켜나가고 있는 일들이 미래에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낼지는 점을 보러 가서 알 수 있는 게 아니라. 산을 자주 가보면 알게 된다. 내가 걷는 만큼 자연은 정직하게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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