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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tist 켈리장 Nov 03. 2018

책 읽는 시간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폭력이란? 어떤 사람/사건의 진실에 최대한 섬세해지려는 노력을 포기하는 데서 만족을 얻는 모든 태도.’ 

더 섬세해질 수도 있는데 그러지 않기를 택하는 순간, 타인에 대한 잠재적/현실적 폭력이 시작된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신형철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책을 꺼내어 들고 쉽게 읽지 못하는 날들.

이미지와 영상으로 쉽게 많은 정보를 접하는 요즘, 나는 시간을 내어 책을 읽는 것이 더 힘들어진다.

그러나 꾸준히 책을 읽는 것은 내 삶에 중요한 일이다. 꾸준한 운동으로 근육을 키우듯, 축 쳐진 나의 감수성을 다시 단단하게 해 주기 때문이다.

섬세한 감수성은 폭력에 민감해지고 그러므로 타인에게 더욱 주의를 기울이게 된다.

책을 읽지 않는 날들이 많아지면 내가 더 작은 마음이 되어 남에 대한 험담과 판단이 쉬워진다. 

책을 읽을 때면 나는 마음을 다잡고 겸손해져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작가들이 이 책 한 권에 쏟았을 그 노력을 생각하면. 그것을 이렇게 공유하는 것에 존경을 표하며 나는 더 겸손해지고 너그러워지는 것이다.

말로 할 수 없는 말들 _2016 켈리장

나는 요즘 네덜란드어를 공부하고 있다.

타국의 언어를 이해하는 일은 타인을 이해하는 것만큼이나 멀고도 멀다.

아. 그래서 정말 감탄이 나오는 책의 내용을 써본다.


내 입에서 나오는 대부분의 단어는 내 감정과 딱 맞아떨어지지 않았다. 그때 나는 모국어에도 역시 내 마음과 딱 맞아떨어지는 단어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낯선 외국에서 살기 시작할 때까지 그것을 느끼지 못했을 뿐이다. 나는 유창하게 모국어를 말하는 사람들을 보면 가끔 구역질이 났다. 그 사람들은 말이란 그렇게 착착 준비되어 있다가 척척 잽싸게 나오는 것이고 그 외의 다른 것은 생각하거나 느낄 수 없다는 인상을 주었기 때문이다.(14쪽) 다와다 요코《영혼 없는 작가》(을유문화사, 2011)

성인이 되어서 낯선 외국어를 배워본 ‘언어의 이주민’만이 ‘언어 자체’에 대해 생각할 수 있다는 것, 그를 통해 모국어가 내 온몸에 기입해놓은 온갖 생각의 코드를 비로소 의식하게 된다는 것, 그렇게 나를 먼저 타자화하지 않으면 타자와의 소통이 힘들다는 것. 당신이 ‘유창한 모국어’에 느낀 구역질이란 ‘자기가 편협함인지를 모르는 편협함’에 대한 구역질이겠지요. 세상에는 문제가 뭔 지조차 몰라서 이미 오답을 말해버린 경우도 있군요.

신형철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언어의 이주민의 위하여' 중.


다와다 요코의 책 <영혼 없는 작가>는 꼭 사서 봐야겠다. '영혼의 속도가 비행기나 기차보다 느려서 여행자는 영혼이 없다'는 그녀의 덤덤한 글이 내게 와 닿았다. 

이곳저곳 옮겨 다니며 살다 보면 내가 지금 어디인지 왜 여기 있는지. 문득 궁금한 적이 많았기 때문이다. 내 영혼이 내가 타고 온 기차보다 느리게 따라오고 있기 때문이었다. 


낯선 나라에 살면서 타인의 말에 최대한 귀 기울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 되었다. 

잘 들을수록 나도 잘 말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다시 낯선 언어를 배우면서 나는 또다시 내가 얼마나 부족한 인간인가 알게 된다.

그건 내가 언어에 서툴러서가 아니라 부족한 나를 계속 부끄러워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잘하는 것만, 내게 편한 것만 하고 살기에 인생은 짧다. 그러니 수많은 이미지의 유혹을 잠시만 뿌리치고 글을 읽어야겠다. 언어의 이주민으로서 나를 타자화하고, 책 읽는 사람으로서 타인을 더 많이 존경하고 그들로부터 배워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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