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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tist 켈리장 Aug 12. 2018

말. 말. 말 그리고 애도

-던져진 말들은 주워 담을 수 없다. 

블루아트스페이스. 베를린.콜라보레이션 작업.EQNX festival. Kelly Jang.



나는 네덜란드에서 휴가를 보내고 있다. 8월은 항상 더 잘 놀게 된다. 9월이 되기 전에 왠지 잘 놀아둬야 할 것만 같다. 무시무시한 겨울이 다가오고 있으니 말이다. 독일과 네덜란드의 겨울은 둘 다 혹독하다. 해를 많이 볼 수 없다는 사실이 제일 두렵다. 지난겨울, 그 추운 서울에 잠시 머물 때 집에 콕 박혀서 베란다로 내리쬐는 햇살만으로도 나는 행복했었다.


위의 영상은 내가 베를린을 떠나기 전에 참여했던 그룹전의 작업이다. 저 영상 속의 사람들의 소리가 좋다. 그들은 각자 자기 삶에 대해 떠들거나 소수의 몇몇은 작품들에 대한 의견을 펼치는 중이다. 저 웅웅 거리는 소리들 속에 내가 없어서 좋은가. 아니면 나를 향하는 말들이 없어서 좋은 건가.

그때의 내가 떠오른다.

지긋지긋한 베를린. 그럼에도 계속 영감을 주는 곳. 스페인 작가와 컬래버레이션.

나보다 많이 어린데 느끼했던 작가. 그래서 두 번째 콜라보는 실현되지 않았던 일 등등.

작품의 제목은 '네 개의 4중주'이다.


현재의 시간과 과거의 시간은


아마 모두 미래의 시간에 존재할 것이고


미래의 시간은 과거의 시간에 포함되리라.


모든 시간이 영원히 현재라면 


모든 시간은 되찾을 수 없는 것이다.


있을 수 있었던 일은 하나의 추상으로


다만 사색의 세계에서만


영원한 가능성으로 남는 것이다.


네 개의 사중주 T.S 엘리엇


재밌는 것은 저 작품은 영상과 사진으로만 남아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기억이 남았다.

내가 만든 작업들에 따라붙는 특별한 기억들이 있다.

언제 가는 내 작품들과 그 뒷이야기들만 엮은 책을 쓰고 싶다. 아니면 '내 작업의 뒷면' 전시를 기획해도 좋겠다. 우리가 영화를 볼 때 세트장과 연출과 수많은 노고가 보이는 대신 감독이 전하려는 이야기만이 우리를 압도하듯이 미술작품의 전시도 종종 그런 느낌을 준다. 작업 과정이 보이는 작업도 있지만, 대부분 작품 자체가 우리를 압도한다. 그리고 물론 뒷면이 궁금해지는 것은 압도당하고 난 다음이다. 나는 먼저 압도당하지 않으면 그 배경도 궁금하지 않다.


가장 사랑했던, 존경했던 사람을 잃었다.

최근에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한 정치인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살면서 많은 이별을 경험했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가족과의 영원한 이별이었지만 그 밖에도 어느 날 내 인간관계에서 사라진 사람들이 있다. 단지 남녀관계뿐만 아니라 여러 관계들 속에서 나는 이별을 경험한다.

어떤 이별은 아픈 생채기를 남긴다. 말은 그저 소리일 뿐이데 나에게 던져진 말들이 왜 이토록 아프게 새겨지는 것일까. 그래서 나는 '던져진'이라고 표현한다. 

20대 초반 내가 가장 친하다고 생각했던 대학교 친구가 내게 던진 말이 여전히 내 가슴에 남아있다.

그리고 얼마 전 내가 사랑했던 사람이 내게 한 말들이 다시 그때의 트라우마를 불러왔다.

'니 까짓 게 뭐라고'


나도 누군가에게 상처 준 적이 있다. 내가 상처를 준 건 잘 기억하지 못해도 혹은 잊어버리려 애쓰기 때문에 잘 몰라도, 남이 내게 준 상처는 아직도 어딘가 박혀있는 작은 가시처럼 내내 따갑다.

오래전 그때 내 친구는 내게 울면서 사과했었고 나는 용서했었다. 그런데 최근에 그 말이 다시 생각났고 또 많이 울게 되었다. 나의 존재를 부정하는 말. 너는 내게 아무것도 아니야.라는 말. 나의 부족함을 사랑할 수 없기에 할 수 있는 말. 그래서 사랑이 없는 말. 


나는 내 삶에서 사람을 잃었을 때 애도하는 방법을 모른다.

마냥 슬프다가 나를 책망했다가 그냥 괜찮아지곤 했다. 이번엔 제대로 애도를 하고 싶다.

내가 당신에게 아무것도 아닐지라도 나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면서 잘 지낼 거라고. 그러니 나를 잃은 당신도 부디 잘 지내시라고. 당신이 준 상처는 희미하더라도 내내 남아 어느 날 갑자기 또 나를 울게 할 테지만. 그럼에도 당신과 보냈던 시간과 이야기들은 미래의 시간에도 좋게 기억되리라 믿으며. 그리고 당신이 내게 건넨 충고들 중에 분명 나를 성장시킨 말들이 있었음을 감사하며.

당신이 내게 그 말들을 던지지 않았더라면.. 또는 다른 사람들에게 내 얘기를 전하지 않았더라면..하는 시간은 다만 사색의 시간에서 영원한 가능성으로 남아.


우리가 결코 열어본 적이 없는 문을 향하여

장미원으로 들어가 나의 말도 메아리친다.

그대의 마음속에서. 네 개의 사중주 T.S 엘리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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