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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tist 켈리장 Apr 21. 2019

인싸 되기

-아싸도 괜찮아

2007년쯤의 일기

어쩌면 내 미니홈피 안에서의 진짜 ‘나’는 완전히 소외되어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사람들과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을 좋아한다. 그런데 사람들과 만날 때 내가 엄청난 에너지를 쓰고 있다는 사실을 어느 순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사람들과의 만남 후 집에 돌아와 완전히 뻗어버리고, 혼자만의 시간을 오랫동안 가져야 다시 나의 에너지를 회복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아주 가까운 지인들과 편안한 시간을 갖는 것과는 다른 이야기지만. 어쨌든 타인과 감정적인 유대를 갖는 일에는 많은 에너지가 소모된다. 요즘 말로 '인싸'가 되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호감을 얻는 것이 중요하고, 그 호감을 유지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사회성이 강한 외향적인 사람들에게 인싸가 되는 일은 일종의 즐거움일 수도 있다. 그러나 나처럼 다양한 모임과 파티 등에서 에너지가 고갈되는 것을 느낀다면, 당신은 아싸(아웃사이더) 일 가능성이 다분하다.

cafe sandpark 2009 개인전 전시 장면 

2009년에는 카페를 주제로 전시를 하기도 했다. 이 전시의 제목은 '나는 꿈속을 걷는 자(I'm a Dreamwalker)'였다. 홍대를 걷다가 '카페 샌드파크'라는 곳을 보게 되었다. 모래 공원. 나에게 카페는 그런 곳이었다. 나는 공부를 하거나 일을 할 때 혹은 책을 집중해서 읽고 싶을 때도 카페에 갔었다. 나는 지금도 '혼자' 카페에 가는 것을 좋아한다. 수많은 사람들 속에 혹은 그 소음 속에 철저히 혼자가 되어 나의 일에 완전히 빠져드는 것을 즐긴다. 나는 그 시간을 내 일상의 오아시스 같다고 생각했다. 신기루 같은 시간. 


꿈과 환상에서 체험한 객관성은 완성화된 개성화에 속한다.

그것은 가치평가라든가 우리가 감정적인 유대라고 부르는 것으로부터의 해방을 뜻한다.

객관적인 인식은 감정적인 연관성 너머에 있다.

객관적인 인식을 통해서만 진정한 융합이 가능하다. –칼 융


나는 칼 융이 꿈을 통해 우리에게 하려는 말을 이제 이해한다. 카페를 주제로 내가 동경하는 시간을 표현하려 했을 때 나는 지금처럼 그 의미를 뚜렷하게 알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가 자유로워지는 시간은 감정적 유대를 너머, 서로에 대한 평가에서 해방될 때라는 것을.

인싸가 된다는 것은 사람들 안에서 그들과의 깊은 연관성이 절실히 요구된다. 나와 그들의 기대감이 적절히 균형을 이룰 때 나는 인싸가 될 수 있다. 

그런데 융은 나에 대한 객관적인 인식을 통해서만 진정한 융합이 가능하다고 한다. 그리고 그 객관적인 인식은 꿈을 통해서 드러난다고 했다. 왜냐하면 꿈은 우리가 컨트롤할 수 없는 채로 우리의 모습을 보여주니까.


Cafe sandpark 2009 (10년 전 작업)

실제 존재하는지 알 수 없는, 늘 아무도 없는 텅 빈 카페를 그리던 나는 아웃사이더였을까?

Insider_cafe series 2009

낯선 언어로 떠드는 수많은 사람들 속에 나는 살고 있다. 그래서 나는 자유롭고 외롭다. 

내가 나에게 수많은 질문들을 던졌던 10년 전에도 나는 아웃사이더였고(적어도 내면은) 지금도 나는 아웃사이더의 삶을 선호한다. 때로는 인싸와 아싸의 발란스를 유지하며 아슬아슬 지내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외국인으로 외국에 살기 위해서는 적절한 사회성의 발란스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나 2009 

10년 전 나의 작업에 등장하는 카페는 언제나 밤의 시간이었고 그래서 빛을 선명히 볼 수 있다. 그러므로 나는 내 작업이 어둡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모두들 어둡다고 했다. 

Eternal sunshine 영원한 햇살 2009

10년 전의 꿈 일기.

슬픈 5월이 다가오면 꿈을 꾼다. 별들이 우르르 떨어지는 꿈.

저들도 세상이 아쉽고 그리워서 하늘로부터 떨어져 내리고 싶은 게 아닐까,

나는 그들을 돌아본다.

검은 하늘에서 환한 세상으로 떨어지려는 별들과 검은 어둠으로 사라져 가는 당신.

당신도 별이 되려나 보다.

나는 세상을 살아가는 별. 환한 세상 속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 빛이 되려고 한다.

내가 좋아하는 시간. 빛이 선명해지는 시간. 우리만 아는 그 시간에 저 위에서도 내가 잘 보이도록.


지금 다시 일기를 읽으니 알 것 같다. 그때의 내가. 여전히 슬펐고 또 여전히 밝았던 내가.

모두에게 사랑받고 싶기도 하고, 온전히 혼자이고 싶기도 한 내가.

꿈속에서

내 작업 속에서 나를 치유하고 있었다는 것.

나는 꿈이 전해주는 메시지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꿈은 내가 소셜 네트워크나 사회에서 소외시켜버린 진짜 나를 보여주는 거울. 

그러나 그곳에서 보는 나는, 내가 생각하는 나와 달라서 쉽게 잊힌다. 꿈은.


"You live in your sphere's narrowness  

And luck rules over you-  

But in my steady world I feel  

Eternal, cold and true!"

당신은 행운이 지배하는 좁은 구체에 살고 있다. 

그러나 나는 나의 세상에서 영원을 느낀다. 춥고 진실된 이곳에서! 


Lucifer 루시퍼 중. Mihai Eminescu (1850-1889) 루마니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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