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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tist 켈리장 May 21. 2019

'빛'나는 시간

-삶과 죽음에 대한 단상

독일의 작업실  

빛이 조금씩 사그라드는 시간을 좋아한다.

그러면 한낮의 빛은 조금씩 바닥으로 떨어져 그림자를 만들고, 비로소 눈부신 빛에 가려졌던 시간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그 떨어져 가는, 사라져 가는 빛을 나는 사랑한다. 그 시간이 다시 올 줄 알면서도 나는 그 빛나는 시간을 영원히 간직하고 싶다.

self portrait 2017 Kelly Jang

그 빛은 곧 어둠이 올 것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그러니 지금 이 순간. 빛나는 삶을 살라고. 

the Tattooed flower_ Kelly Jang
the Tattooed flower_ Kelly Jang

죽어가는 꽃에 시를 새겨 넣으려 했었다. 이 빛나는 시간은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변화하는 중이라고. 

꽃은 문신을 하는 동안 죽어갔다. 


'아이는 미소를 지었다. 나는 그 미소를 절절히 내 가슴속에 넣어뒀다. 아이의 얼굴에 떠오른 그 빛 때문에 기계의 웅웅 소리, 도료 냄새, 그 모든 것이 바뀌어 시간은 더 이상 편편한 덮개가 아니었다. 땅에는 희망과 후회가 있고, 증오와 사랑이 있었다. 결국 죽겠지만 우선 그들은 살고 있었다. 개미도 돌도 아닌 사람들이었다. 그 미소를 통해 마리안이 다시 내게 신호하고 있었다. ‘그들을 믿고, 그들과 함께 있고, 사람으로 남아 있어.’

시몬 드 보브아르 <모든 인간은 죽는다> 중. 


그녀의 소설에서 죽을 수 없는 불멸의 인간 포스카에게 시간은 편편한 덮개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나도 그 허무한 느낌을 희미하게나마 느껴본 적이 있다. 나의 작은 힘으로는 이 세상의 무엇도, 한 사람도 바꿀 수 없을 것이라는 허망함. 그럼에도 빛이 고요하게 내려오는 시간에 다시 찾아오는 희망.

in Light _Kelly Jang

어둠이 오기 전 하얗게 빛나는 그 시간을 나는 입체적으로 느낀다. 그리고 살아있음은 그렇게 빛나야 하는 것이며 어둠처럼 찾아오는 죽음도 두려운 것이 아니라고 스스로 되뇌어 본다. 나는 그 어느 곳에서든 죽음을 이야기하는 것이 더 이상 터부시 되지 않았으면 한다. 어느 날 사랑하는 사람들을 갑자기 떠나보내고, 마치 날개 한쪽을 잃어버린 새처럼 세상을 절뚝거리듯. 살아야 하지만. 나도 언젠가 그렇게 사라져 가겠지만. 그럼에도 매 순간 삶이 보여주는 빛처럼 나는 살아갈 것이다.

흰 빛 _Kelly Jang 2014

  

그리고 모두에게 똑같이 찾아오는 밤처럼. 그렇게 찾아오는 죽음에 대한 이야기도 나의 작업을 통해 계속해나갈 예정이다. 내가 나의 작업에 영원히 가두어놓은 흰 빛은 삶이면서 죽음이고. 이를 모두 품고 있는 변화의 시간이기 때문이다.

in Light 앤디 워홀의 신발 _Kelly J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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