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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tist 켈리장 Mar 20. 2019

나의 이야기가 마법이 되는 순간

-영화 ROMA 


뉴욕영화제에서 만난 알폰소 쿠아론 감독 - <로마>는 천국과 지상에 대한 이야기다  

글 양지현(뉴욕 통신원) 2018-10-25 씨네 21 참조.


                                                           알폰소 쿠아론 감독


올해(2018년)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하며 세계적인 관심을 받고 있는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신작 <로마>를 뉴욕영화제에서 만났다. 쿠아론 감독이 <칠드런 오브 맨>(2006)의 후속작으로 기획했으나, 12년 뒤에야 결실을 보게 된 <로마>는 그의 어릴 적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자전적인 영화다. 자신을 키워준 유모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쿠아론 자신이나 그의 가족이 조연으로 등장한다. 

-극 중에 지진과 화재, 바다 등 자연이 소재로 등장하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

알폰소 쿠아론_ 질문 그대로 다양한 자연적 요소들이 등장한다. 이는 자연에 대한 존중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로마>가 천국과 지상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영화의 시작은 바닥에 고인 물에 반사된 하늘의 모습을 보여주는 거다. 천국이 물에 반영된 이미지에 불과하다는 거지. 하지만 물의 역할은 점점 줄어들다가 마침내 모두가 물속에 잠기게 된다. 마지막 장면은 처음으로 하늘을 전체 프레임에 담는 것이다. 인생은 일시적이고 순간적이다. 개개인의 경험은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것들로 둘러싸여 있지만 사람들과의 관계와 이들을 향한 애정이 우리가 유일하게 일부나마 컨트롤할 수 있는 요소다. 결국 우리의 존재는 우리가 경험한 외로움을 공유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영화 <로마>의  한 장면.

나는 최근에 이 영화를 보고 많이 울었다. 각자의 외로움이 그리고 내가 느끼는 외로움이 슬프게 느껴져서, 영화가 너무 아름다워서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감독은 이 영화가 자신의 어린 시절 기억을 복구하는 작업이었다고 했다. 나 역시 그가 영화에서 보여준 '시간에 대한 존중'이 이 영화를 특별하게 만든다고 생각했다. 이야기의 느린 전개 안에서 나는 그의 기억으로부터 복원된 시간과 공간을 천천히 음미할 수 있었다.  

쿠아론 감독이 개인적인 기억을 영화화하는 과정에서 후각과 미각을 복원하는 것은 불가능했기에 청각에 집중했다는 얘기도 흥미로웠다. 그 청각적 요소를 객관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감독은 다시 그 시대를 철저히 연구하고 당시의 특정한 '소리들'을 영화에 배치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영화를 보는 동안 그의 시간과 공간 속에 온전히 있을 수 있었다. 개인적인 이야기가 타인에게 깊이 전달될 수 있었던 것에는 철저한 공부와 숙련이 필요하다는 것을 새삼 느끼고 배웠다.

영화는 흑백의 영상인데 영화를 보는 내내 나는 색감을 느꼈다. 첫 장면부터 나는 파란색 하늘을 본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어쩌면 내 안에 고착되어 있는 이미지 때문인 지도 모르겠다. 내 안에 꽉 차있는 편견들에 대해서도 고민했다. 내가 자란 시공간은 나를 어떤 식으로 제한했던 것일까. 그리고 4년 동안 다른 시간과 공간 속에 사는 지금 나는 얼마나 많이 달라져있을까. 

바닥에 고인물에 반사된 하늘 -영화 <로마>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내가 적응하고 있는 시공간이 또 다른 박스처럼 느껴졌다. 영화 속 주인공의 동선 안에 그녀의 모든 인생이 담겨 있듯이, 멀리서 나를 바라보면 여전히 짧은 거리와 작은 공간 안에서 단조로히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간다는 것도 다시 나를 환경 속에, 거기에 맞게 잘 구겨 넣는 것인지도 모른다. 물론 가까이에서 보면 내가 컨트롤할 수 없는 여러 문제들이 매일 닥쳐와서 허둥지둥 대고 있지만 말이다.   


영화 후반에 수영을 못하는'그녀'가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 바닷속으로 거침없이 걸어 들어가는 것을 봤을 때 

나는 마침내 그녀가 고통에서 벗어나리라는 것을 예감했다. 

나에게,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어쩌면 그녀가 보여준, 모든 것을 압도할 만큼의 그 끈끈한 연결성이 아닐까. 내가 어쩌지 못하는 이 세계에서 그나마 컨트롤할 수 있는 건 인간으로서 인간을 사랑하는 일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각자의 아픔과 외로움을 지닌 채 서로 꼭 품어줄 수 있는 그 따뜻함은 이제 흑백의 시간에서만 가능한 것 같아서. 마음이 저릿했다.

영화 포스터

 이 영화는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가 모두에게 마법이 되는 순간을 내게 보여주었다. 

내가 알고 있지만 잊고 있었던 감정들을 다시 떠올리게 했고, 나도 작업을 하면서 내 감정과 기억을 이토록 아름답게 객관화시킬 수 있을까 고민하게 했다. 무엇보다 감독의 과거. 내가 살아보지도 경험하지도 못한, 그 기억의 공간 안에서 내가 울고 웃고 있다는 것이 경이로웠다. 낯선 언어와 다른 피부색 그리고 내가 공감할 수 없는 시대적 배경. 그럼에도 나의 존재와 외로움과 내 주변 사람들과 나의 어린 시절을 돌아보게 하는 영화였다.  

감독은 이 영화를 만드는 것이 정말 큰 도전이었다고 했다. 아무런 안전장치 없이, 예를 들면 유명한 배우나 특수효과 등을  배제한 채 느린 이야기 전개의 흑백영화였기 때문이다. 

모든 안전장치를 버리고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용기.

목적이 사라졌을 때 보여줄 수 있는 진심. 공백을 향한 심연.

나는 예술이 존재하는 이유. 그리고 예술의 이상향을 로마에서 보았다.


https://youtu.be/LAlz1-IV5 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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