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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lly Kenye Kwon Jul 10. 2017

1. 계약직 채용

- 팀장이 되어도 고집하고 주장할 수 있는 건 별게 없었다.

"선미야. 내일 PT 준비는 잘 하고 있지?"

"네, 팀장님. 그동안과장님들이 바쁘신데도 모의 PT 시켜보고, 코멘트 주시면서 많이 도와주셨어요"

"그래, 나 없는 상황에서도 잘 해왔으니까, PT만 무난하게 하면 통화 될 수 있을거야. 팀장 없다고 기죽지 말고. 알았지? 화이팅이야!"


작년 말. 다른 부서에서 시급 알바로 일하던 친구가 우리팀 인턴으로 들어왔다. 수줍고, 약간은 촌스러운 옷차림의 그 아이는 가끔 오가며 마주칠 때에도 소극적인 태도가 가득 느껴졌다. 하지만, 워낙 일 잘한다고 소문난 부서에서 10개월간 일했고, 그 일잘한다는 부서의 수장이 꼼꼼하고 성실하다고 침이 마르도록 칭찬한 아이였기에 별 의심 없이 우리팀 인턴 TO를 채우는 데 동의했었다.  


그 친구가 이제 정식으로 계약직 그러니까, 정규직을 전제한 계약직이 되기 위한 임원 면접을 앞두고 있었다. 우리회사 신규 인력 채용 시스템은 아주 복잡하고도 험난하다. 정규 채용이 아닌, 상시 채용인 경우 기본적으로 시간제 알바로 들어오게 된다. 그 후 일을 잘 하고, 본인도 계속 리서치 분야에서 일할 생각이 있다면 인턴으로 추천해 채용된다. (물론 인턴도 TO가 났을 때 가능하고, 기회가 나지 않으면 계속 시간제 알바로 일하게 된다). 그 후 평가가 좋고, 본인도 의지가 있다면 정규직 이전의 계약직으로 채용이 된다. 물론 그 사이에는 일종의 관문이 있다. 팀장 평가와 임원 면접. 임원 면접은 모의 PT와 질의 응답으로 구성된다. 


이 친구는 시간제 알바와 인턴을 1년 가까이 했고, 그 덕분에 일 처리가 웬만한 신입보다 나았다. 그래서 팀장인 나는 그 친구를 조금이라도 빨리 안정적인 조건으로 앉히고 싶었다. 비록 계약직이지만. 그 친구가 일해 온 시간과 나와 이전 팀장의 정성적 평가가 있었기에 임원 면접과 모의 PT는 약간의 요식행위로 치뤄질 줄 알았다. 이게 신임 팀장이자 정초부터 휴직을 들어가 회사 분위기를 파악 못한 나의 불찰이었다. 휴직 중 선미에게 응원 삼아 한 통화에서도 '간단한 것이니 대강대강 봐라!'라는 메세지를 복화술로 전달하고 있었다. 


다음 날. 부장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선미 어떻하니. PT를 너무 못했어"

"그래요? 걔가 워낙 소심해서 긴장하면 목소리가 좀 떨리긴 하는데, 그래도 메세지는 논리적이었을텐데요"

"그렇긴 했지. 그런데 그게 뭐 보이나. 워낙 긴장을 많이 해서 말을 잘 못했어"

"그래서요?"

"선미 안될 것 같다."

"......"


"여보세요?"

"네? 왜요? 부장님 제가 보내드린 팀장평가서 확인하셨잖아요. 팀장이 그렇게 좋게 평가했고, 부장님도 저 없이 선미랑 일하시면서 많이 느끼셨잖아요. PT 한번 못한 게 뭐가 그렇게 잘못이라고....."

"아는데, 상무님이 너무 실망하셨어. 점수가 너무 안좋아"

"제 점수 합산하세요. 팀장이 준 점수도 반영할 거 아니에요? 사실 그 점수가 더 중요한 거 아닌가요?"

"일단은 좀 두고 보자. 복직하면 다시 얘기하자구"


2주일 뒤가 복직이었다. 뭘 더 두고 보자는 얘기인지 알 수 없었다. 이런 논란이 왜 나오는지도 이해되지 않았다. 같이 일하겠다는 사람이 좋다는데, 뭐가 문제가 되는 것인지. 


복직을 2주 남기고 마음이 심난해서 파주 지지향에서 하루 묵을 생각으로 가던 중이었다. 전화를 끊은 뒤 가슴이 답답하고 팔이 아려오는 증상이 다시 시작되었다. 

'아, 또 이러네. 이런 통화 한번 했다고 바로 반응이 오면 앞으로 어떻하냐'

짜증과 불안이 밀려왔다. 일단 추우니 체크인부터 해야 할 것 같았다.


복직을 하고 임원분들 방을 돌며 인사를 했다. 내 휴가 15일 탈탈 털어 쓰고, 1개월 유급휴가 다녀온게 뭐가 그리 감사한지 온 방을 돌며 허리굽혀 인사를 했다. 팀원들과 자리하고 그간의 메일을 보는데 부장님이 불렀다.

"정차장, 잠깐 얘기 좀 하자"

"네"

"선미 말이야. 결국 안되는 것으로 결정이 날 것 같은데 정차장이 워낙 완강하게 주장하니 인턴을 한명 더 뽑아서 둘이 경쟁을 시켜보고 다시 한번 면접을 보는 걸로 결정이 났어. 그러니까 선미는 3개월 뒤에 면접을 한번 더 보는 거지"

"네? 굳이 왜요? 아니 인턴 자리 그렇게 없다더니 한명을 더 뽑으면 결국 선미 나가라는거죠. 그리고 선미는 이미 한참 일을 했고, 인턴은 이제 막 들어왔는데 몇 개월 같이 일한다고 동등한 비교가 되겠어요?"

"그래도 상무님 입장에서는 선미에게 기회를 한번 더 준거야. 상무님도 크게 양보하신 거라고"

"아니, 제가 내린 평가는 왜 무시가 되는 건데요? 상무님보다 제가 더 가까이 보고 많이 일했잖아요. 그런데 왜 상무님 판단이 당락에 영향을 주는건지 이해가 안되요."

"맞는 말이야. 그런데 상무님 부서 운영 방식이 그런 걸 어쩌겠어. 정차장이 이해해."

"그렇다면, 선미가 채용되지 못하는 타당한 이유가 뭐에요? 최종 점수는 나왔어요?"

"그게, 사실 그런건 없어. 그냥 선미가 좀 마음에 안드신가봐"


결국 인턴은 새로 들어왔다. 새로 인턴이 들어온 이상 내가 다르게 일을 시켜도 자연스럽게 경쟁구도가 될 수 밖에 없었고, 선미는 나날이 기가 죽어갔었다. 결국 팀장인 내가 '너가 원하면 어떤 곳으로 가던지 조언과 추천을 아끼지 않겠다'는 정말 너무나 뻔뻔스러운 말을 해주는 게 전부였다. 선미는 한달 정도 예상치 못한 경쟁을 하다가, 바로 옆 경쟁사로 이직을 했다. 정규직에 신입 1년 인정을 받는 조건으로. 선미의 움직임이 시작된 후, 나는 그 행보를 음성적으로 지원해주고 눈감아주는 역할 밖에 할 수 없었다. 


언제부턴가 회사에서 인턴을 채용하고, 계약직을 채용하는 게 엄청 대단하고 시혜적인 일처럼 여겨지고 있다. 좁아 터진 나라에 인재가 넘치고, 다양한 산업이 탄탄하게 성장하지 못하다보니 일자리는 부족하다. 수요공급원리는 여지없이 적용돼, 일자리를 쥐고 있는 기업은 여전히 당당하다. 나라에서 채용하면 감세를 해준다는 식의 조건부 당근책을 내놓을수록 그들의 휘어진 인사채용에 대한 인식은 더욱 틀어지고 있다. 


인턴 채용, 계약직 채용은 그들이 무슨 사회봉사를 하거나 누구를 구제하는 게 아니다. 회사가 안정적인 정규직을 만들어내지 못해 임시로나마 인재를 뽑는 것이고, 그만큼 일과 그 상황에 얼마나 적합한 사람인지, 그 사람이 얼마나 성장가능성이 있는지를 봐야 하는 것이다. 단순히 한 두번의 면접으로, 분위기가 안맞는다는 이유로 사람을 평가할 수는 없을 것이다. 결국 난 이 회사를 퇴사를 했다. 선미가 옆 회사로 가고 한 달이 안되어서.


많은 이유가 있었지만, 이 일은 나 스스로 한계를 느끼게 한 사건이었다. 그 친구가 아니면 안된다고 고집하지 않았고, 타당한 이유를 알려달라고 주장하지 않았었다.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은 이미 안될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너무 큰 조직이었기에 되려 인사팀의 합리적인 관리가 부재했고, 그래서 직속 상관의 정성적 판단과 결정이 모든 행정의 가이드가 되고 있었다. 그 암묵적 룰을 깰 자신이 없었다. 


선미는 회사생활 잘 하고 있다며 간간이 문자가 왔다. 생애 첫 출장을 갔는지 두바이에가서 사진도 보내오고, 선물로 두바이 산 초컬릿과 비누 등의 기념품을 사서 보내왔다. 역시 그녀답게 촌스러운 행동이었다. 하지만, 그 행동 하나하나에 진심이 배어 있음을 알기에 난 부끄러운 두 손으로 받을 수 밖에 없었다. 


그녀의 진심을 지켜주지 못해서 많이 미안하다. 그리고 그 마음을 오래오래 유지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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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9년 간 리서치 회사를 다니면서 얻고 잃은 것을 써내려가려고 합니다. 지금은 백수이고, 이 업계로 돌아갈지 말지 (물론 받아주는 회사가 있을 때의 얘기지만) 바닥을 뒹굴며 계속 생각만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결론이 나든 나의 젊음과 열정을 바친 이 업계에서 경험한 다사다난한 일들, 그리고 비단 리서치 종사자에게만 적용되지 않을 일과 나의 관계에 대한 많았던 고민들을 써내려갈 생각입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이름은 모두 가명이며, 사건 역시 실제 일어난 일에 상상을 더한 것입니다. 혹시라도 리서치 업계나 특정 회사에 대한 오해가 없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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