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 다이어리'가 박스채 온 날
나는 원래 기쁨을 만끽할 줄 아는 사람이 아니었다.
어렸을 때 전교 독후감 최우수상 같은 꽤 받고 싶었던 상을 받았을 때도,
힘겨운 석사과정을 마치고, 석사 학위 논문을 받았을 때도,
기쁜 마음보다는 호들갑스럽지 않게 보이려고 더 신경을 썼었다.
그렇게 난 들뜨고, 흥겨운 상황에 놓이는 것을 치열하게도 불편해했다.
그런 내가 3년을 끌어온 '여행+원고'의 종지부를 찍었다.
밥벌이와 병행하다보니 길어진 시간이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지리한 과정이었다.
어쨌든 과정은 겪어 냈고, 난 '이거다!'하고 내 놓을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사랑하는 가족들은 걱정반 우려반으로 내 행보를 지켜봤다. 친구들은 '저 짓을 언제 끝내려나'하는 마음이었고, 건너건너 아는 별로 우호적이지 않은 이들은 '어디 내 놓나 한번 보자'하는 심산이었을테고, 직장 동료는 '퇴사까지 했으니 빨리 좀 내 놔봐라' 하는 마음들이었다.
헌데 무엇보다 애가 닳은 건 나였다. 이 과정에서 '퇴사'라는 '생활 파급력'이 큰 결단을 내린 나로써는 퇴사 전 조금씩 모아놓은 생활비가 동나기 전에 얼른 결과물을 내야 했었다.
하지만, 생각대로 되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예정보다 3개월이 더 걸린 2016년. 1월. 8일. 책이 나왔다.
인쇄소 '한영문화사'에서 보내온 친절한 택배 아저씨의 다마스로 책 350권이 집으로 배달됐다.
오전 11시.
친절하고 약간 늙은 아저씨의 힘을 보태 난 열심히 4층 내 방으로 책을 옮겼고, 이 책 더미들은 햇빛을 받아 의도한 색과 다른 빛깔로 신나게 빛나고 있었다.
딱히 할 게 없었다. 혼자 기뻐 날뛸 수도, 흐느껴 감동의 눈물을 흘릴 수도 없었다.
먹먹하게 몇 분간 쳐다보나, 아침을 안먹었단 생각에 라면을 끓였다.
그리고, '저놈의책덩어리'를 보면서 묵묵히 라면을 먹었다.
공허했다. 정말로 공허했다.
그 느낌은 출산한 느낌보다도 더 공허할 것이다.
(물론 출산을 안한 나로써는 적절한 비유가 아니겠으나, 적어도 출산하고나면 '빽뺵우는 생명체'라도 있지 않은가)
아무말 없이 버티고 있는 저 책들을 난 왜 만들어 낸 것인가.
배고파 끓인 라면이 생각보다 '더럽게' 맛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