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 다이어리' 도착 후 찾아온 폐렴
오래도록 준비한 책은 잘 나왔다. 내가 볼 땐 아쉬운 점이 많지만, 그런대로 '책'처럼 나왔다.
주변에서 '수고했다'는 칭찬이 이어졌다.
'대단하다'며 날 치켜세우는 사람들도 있었다.
차분하면서도 기쁜 나날이었다. 그런 뒤 예기치 않은 감기가 왔고, 추운 날씨 때문인지 폐렴으로 번져갔다.
난 책 무더기 사이에 드러누워 끙끙 앓을 수 밖에 없었다.
워낙 좁은 집에 구석구석 350권을 채워넣은 터라, 이리봐도 책이고 저리봐도 책이었다.
안그래도 계속 누워있어 답답한데 여기저기 깔려 있는게 '쿠바 다이어리'이니 더 어지러워졌다.
그러는 동안 내 안에서 밀려온 질문. '이제 원하던 책을 냈으니, 뭘 해야 하는가?'
개인적으로 그토록 혐오하던 자비 출판자가 된 듯 했다. 아니. 사실 난 자비 출판자였다.
출판사에 투고할 때만해도, 시장에서 받아주지 않으면 묻어버릴 생각을 했던 원고였다. 운좋게 계약까지 되었다가, 파기가 되면서 미련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난 이 원고가 꽤 쓸만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렇게 책에 대한 미련이 커지면서, 시간의 흐름과 함께 초초해져갔다. 그래서 묵히고 묵힌 감정을 추스려 버킷리스트처럼 책을 만들어 냈다. 돈도 많이 들었다. 시간도 많이 들었다. 이 과정에서 내 밥벌이의 경력은 단절이 되었고, 동료들의 원성은 한바가지를 들어야 했다.
어쨌든 앞만보고 달려오듯 과정을 마쳐 결과물을 내 방에 들여놓은 뒤, 난 몸 져 누웠다.
사람들은 그간의 맘 고생이 밀려온 것이라 했지만, 난 속으로 알고 있었다.
이게 공허함의 표현이라는 것을.
그리고 공허함은 무슨 일을 하면 커리어로 연결되어야 하는 관습적 사고로 우울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 어떤 일을 '일 자체로 즐길 수 있는 자유분방함'은 사치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난 이 공허함이 참으로 조급하게 느껴졌다.
헌데 무엇보다 더 불안한 건 '글을 더 쓰지 않는 지금'이다. 저자였다가, 에디터였다가, 출판사사장이었다가, 이제는 홍보담당자가 되었다. 그 사이 난 글을 한 줄도 쓰지 못했다. 책을 홍보하러 다닐 때마다 장전한 총알이 하나씩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사치스럽게, (영화 '위대한 갯츠비'의 파티 처럼)좀더 흥청망청한 기쁨과 멜랑꼴리한 공허함을 느낄 줄 알았다. 그런데 난 내장이 하나씩 빠져나가는 것 같은 '상실감'만 느낄 뿐이었다.
어찌되었건 난 글 쓰기에서 시작했었기에, '글을 쓰지 않는 지금'이 불안한 건 당연할 것이다. 내 책이 잘 되고, 잘 팔리도록 하는 건 솔직히 관심 밖이다. 내가 쓴 책이 다 마무리가 되어 세상에 나온 지금, 그 '시원섭섭함'을 다른 '글'로 채워야 하는데 그것을 하지 못하니 생기는 불안한 공허함이다.
빈 술잔은 술로 채워야하고(물이아닌!) 이별의 고통은 새로운 사랑으로 대신하 듯, 글 쓴 뒤의 공허함은 글로 채워야 하나보다. 그래서 메모장을 들추고, 블로그를 열고, 브런치를 시작한다.
한알 한알 다시 장전하는 기분으로 글자를 채워가는 지금. 가장 평온하고, 안정적인 숨을 쉴 수 있다. 며칠 전의 공허함은 다 날아가 버렸다. 이로써 내가 원한 것은 끝나지 않고, 계속 이어진다.
원한 것을 이룬 뒤 공허함을 해소하는 방법은 원했던 것의 본질을 다시 채우는 것이다. 원했던 것은 '원했던 그 한번'으로 끝날만큼 단발적인 게 아니었을 것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