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여행 전 자료를 수집하고, 여행 중엔 기록을 한다
가장 큰 밑받침이 되는 건 여행 중의 기록이다. 물론 이것은 여행을 가기 전 책을 염두해 두었을 때의 경우이다.
여행을 가기 전에 글을 염두하지 않았다가 돌아온 뒤에 기억을 자료 삼아 쓸 수도 있겠지만, 이는 솔직히 내 능력 밖이라 상상도 되지 않고 개인적으로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여행 중의 메모가 여행기에 그대로 담기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하지만, 그 메모를 보면서 그 당시의 감정과 상황을 상상하는 것은 글을 풀어나가는 게 정말 큰 도움이 된다.
그 전에 해야 할 일이, 바로 여행 전 자료를 수집하는 일이다.
다행히 '여행을 하려면 적어도 그 나라의 언어 약간을 구사할 줄 알고, 그 나라의 역사 약간을 숙지하며, 그 나라의 최근 뉴스에 대해 좀 읽어보고 가야한다' 고 주장하는 지인(정확히 친구의 남편)이 있어 난 이것 저것 자료를 좀 수집하고 갔었다.
쿠바 여행을 앞둔 당시, 스페인어를 2개월 못되게 공부했었고, 6개월 전부터 쿠바의 역사, 문화에 대한 서적을 닥치는 대로 읽었었다. 책은 우선 읽기 쉬운 여행 에세이로 시작했지만, 정확한 쿠바에 대하 정보는 전혀 얻지 못했었다. 그래도 5~6권의 쿠바 여행기와 쿠바 사진집을 독파했고, 그 이후 쿠바의 역사, 문화서를 읽었다. 스페인어는 고작 2개월만 했을 뿐인데, 단어 몇개 만으로도 현지에서 꽤나 의사소통이 되었었다. 이는 워낙 말하기 좋아하고 친절한 쿠바노(Cubano)들이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여튼 당장 떠나지 못하는 갈증을 채우는 마음으로 이 책들을 폭식하듯 읽어댔고, 공부도 꽤 열심히 했다.
그렇게 8개월 넘는 준비를 하고, 넘어간 쿠바는 그간 상상해온 곳와 완전히 다른 곳이었다. 당연하다.
그동안 접해온 사진과 글들은 작가들의 것이었다. 똑같은 곳을 보고 다른 것을 느끼기에 그 많은 사람들이 자기 발로 미지의 땅을 밟는 것 아니겠는가. 작가들의 것을 접하며 상상해 온 쿠바는 첫날 정말 정말 무참하게 부서졌다.
난 우울했고, 뭘해야 할지 몰랐다. 그러면서 시작한 것이 일기였다. 사실 할 게 없었다. 그 많은 여행기에서 가라고 했던 길들은 내게 감흥을 주지 못했다. 배반감, 상실감, 두려움 등이 밀려오면서 할 수 있는 건 펜을 잡는 것 뿐이었다. 퇴사한 회사의 팀원들이 나의 여정을 응원하며 챙겨준 몰스킨 다이어리를 꺼냈다. 비행기 티켓 가격, 캐리어자물쇠 비밀번호, 준비물 따위 등을 적은 메모가 눈에 띄었다.
'아, 이런 메모할 때가 안락했다'
생전 들 것 같지 않았던 한국에 대한 그리움마저 들면서 쓰기 시작한 것이 이런 메모였다.
..... 오늘 아바나 centro, vieja 모두 두루두루 둘러보았다. 내가 받은 느낌은... 꽤 더러웠다는 것. 그리고 아직 내 눈에 익숙한 깨끗하고 정갈한 거리, 많은 상품들, 이것들이 갖춰진 길을 다녔다. 동시에 부족하고 물건을 한없이 쳐다보는 모습들... 모두, 어색하고 불쌍해 보인다. 마트도 없고 여기서 어떤 것도 어떤 물자의 여유도 즐길 수가 없다. 하지만 길에서 노래를 부르고 축구를 하고 야구하며 노는 모습들. 어딘가 즐거워 보인다. 하지만 그들이 할 수 있는 경제활동은 제한적이다.
아무리 그들이 즐거워한다 하더라도 현실을 즐긴다해도 그들이 할일이 없는 건 마찬가지이다. 내가 아는 도시농업, 무상으료, 무상교육, 이것은 그들이 자유를 헌납한 대신 누리는 혜택이다. 아무리 그들이 즐거워한다 하더라도 현실을 즐긴다해도 그들이 할일이 없는 건 마찬가지이다. 이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지만, 서점과 도서관이 연결되고 1800년대 고서적을 파는 모습은 인상적이고 그들만의 유희로 보였다. 내 여정이 쿠바에서의 여정이 어떻게 펼쳐질지 궁금하다. 아무튼 이 까사에 머문건 정말 잘 된 일이다.....
이런 메모들을 거의 매일 같이 썼었다. 물론 하루에 두 세개를 적은 날도 있다. 감정 기복이 심한 날일 것이다. 감정 기복에 따라 메모의 서체, 크기 그리고 행간이 달라진다. 나만 아는 이런 변화에 당시에 감성은 더욱 강하게 상기된다. 이런 효과 덕분에 돌아와 방구석에서 혹은 까페에서 글을 쓸 때에 당시의 감정에 젖을 수 있었다.
출장을 포함해 꽤 많은 나라를 드나든 경험을 비추어 볼 때, 한국은 아니 좀더 정확히 서울은 생각보다 너무 편리하게 되어 있어, 몇 개월을 지내온 나라도 금새 잊어 버리게 하는 대단한 기술을 가지고 있다. (공항버스를 타고 올 때 정형화된 식당 간판이나 빠리바게트 같은 프랜차이즈를 볼 때마다 느낀다)
이렇게 편리하고, 개성 없게 느껴지는 도시인 만큼 그래서 생활하는데 전혀 불편한 게 없는 도시에 안착한 이상, 떠나온 곳의 경험을 기억하고 쓰기란 쉽지 않다.
여행을 하고 싶다면 여행지의 감성을 메모하길 바란다. '설사 이 문장이......?'라고 여겨지는 작은 표현이 신기하게도 노트북 앞의 나를 그 당시, 그 장소로 데려가줄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