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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lly Kenye Kwon Mar 26. 2016

여행기를 쓰기 시작할 때

(2) 허리 힘을 기르고, 외로움에 익숙해진다

여행기를 쓰기 시작할 때만의 얘기는 아닐 것이다. 모든 글을 쓸 때에 장시간 앉아 있을 허리 힘과 엉덩이 근력, 그리고 외로움에 싸워 이길 강한 독립심이 필요하다.

글을 쓰는 과정은 분명 고독하다. 아니, 고독은 너무 그럴싸한 표현이다. 좀더 솔직하게 말하면 아주 외롭다. 그것도 처절하고 찌질할 정도로 외롭다. 매일 글을 쓴다는 이유로 혼자만의 시간을 확보하지만, 그 시간동안 꽤나 생산적으로 일을 해야 한다.

'생산적'이라는 개념은 산업적으로만 쓰일게 아니라, 창조적 작업에도 충분히 적용되어야 한다. 많은 예술이 놀다가, 뭔가 번뜩이는 감각에 의해 작품을 마구 그려낸단고 생각하지만, 실상 그렇게 나오는 작품은 거의 없다. 물론, 드물게 한번의 기록으로, 혹은 붓칠로 명작이 나오기도 하지만 그 역시 매일 반복되는 습작과 연습이 영글어 나오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예술가야 말로(여기서 예술가는 직업적, 명성적으로 인정받은 이들 뿐 아니라, 그냥 예술을 하는 人을 모두 의미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성과를 내기위해 무던히 연습하고 작품을 만들어 낸다는 측면에서 그 어떤 직장인보다 성실함과 효율성에 익숙해져야 할 것이다.


내 경우 글을 쓰려고 마음먹고 가장 먼저 한 것이 책상을 맞춘 것이다. 그리고 난 어느 여성작가가 했다는 화장실 변기 뚜껑위에서 글을 쓸만큼의 열정은 자신없었으므로, 작지만 안정적인 내 공간을 확보하는 게 우선이었다. 물론 책상을 맞춘 이유는 기성 책상 중에는 작은 내방에 딱 들어갈 사이즈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모님과 같이 사는 나에게 이 책상만으로 안정적인 집필공간은 되지 못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은 단골 까페를 찾아 다녔다. 스타벅스에서 집 옆 작은 까페까지 전전한 결과 상수동 친구 회사 건물 1층에 위치한 아주 한적한 까페를 발견했다. 사진작가가 운영하는 이 까페는 리필도 해주고, 잠시 밥먹으로 다녀오는 동안 자리도 맡아주고 그랬다. 맥주나 와인도 팔아서, 오후에 지치고 나른해 질 때는 약간의 술로 멜랑꼴리한 기분을 느끼기도 했다. (지금은 그 까페가 사라지고, 이상한 팥빙수 프랜차이즈로 바뀌었다). 이 곳 외에도 마포 도서관, 관악 도서관 같이 돈이 들지 않는 곳도 자주 갔었다.

이렇게 안정적인 곳을 2-3군데 확보한 뒤에야 글을 쓸 수 있었다. 처음 시작한 일은 여행지의 기록을 천천히 읽어보는 것. 최대한 그 때의 감성을 느끼며 천천히 읽었고, 그 때 느꼈던 것, 연관되어 더 풀어내고 싶었던 이야기들을 연필로 끄적여 나갔다. 그때 그렇게 적어 내려간 것이 지금의 목차이다. 사람들은 여행지에서 어떻게 글을 쓰냐고 묻지만, 여행지에서 쓴 것은 한 줄도 책에 담기지 않았다. 대신 그때의 일기로 책의 목차를 구성했다. 내 책의 목차는 크게는 여행다닌 지역 순으로 나뉘지만, 지역 내의 소목차는 당시의 에피소드, 감성들로 내 방식대로 구성했다. 그것의 토대가 된 것이 바로 여행지의 기록인 것이다. 이렇게 당시의 기록은 내 책 스토리라인의 기본 줄기가 되어 주었고, 때문에 여행지의 기록은 정말 중요하다.


다행히 기록이 자세했고, 나의 기억도 생생했기에 스토리라인은 금새 잡을 수 있었다. 문제는 그것을 풀어내는 것이었다. 초고를 쓰는 데 약 4개월이 걸렸다. 페이지는 워드 기본 여백으로 하여 180여 페이지 정도. 매일 9시 혹은 10시부터 4시 혹은 5시까지 글을 썼다. 간간이 밤에 쓰기도 했지만, 거의 다음날 아침에 다 지우고 다시 썼다. 평일 대낮에, 소란스러운 서울에서 쿠바에 빠져 글을 쓰는 건 여간 힘든게 아니었다. 집에 있으면 아버지의 종편 TV소리가, 까페에 가면 부동산 계약이나 다단계 판매를 하는 아저씨 아줌마의 고성 수다소리가, 도서관에가면 공시족들의 우울한 얼굴이 내 신경을 분산시켰다. 다들 이렇게 바쁘게 사는데 한가하게 난 뭐하는 짓이지? 라는 어쭙잖은 죄책감도 들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이겨내는 방법은 '튼튼한 허리힘'과 '외로움과 친구가 되는 친화력'과 '난 예술가라는 자기도취'에 빠지는 것이다. 즉 건강한 몸과 즐거운 마음(혹은 안정적인 마음)을 유지하지 않으면 글을 자칫 과도해질 수 있다.


그래서 난 오후에 글을 마치고 돌아오면 포상 차원에서 캔맥주를 사와 마셨다. 더운 쿠바를 다녀온 듯 시원하게, 조금씩 음미하면서 나의 노고를 달랬다.

더운날 커피 몇 잔의 빈 속에 채운 맥주는 내 세포 하나하나에 스며들었고, 그렇게 최소의 알콜로 최대의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는 잠시 잠을 자거나 누워서 지친 허리를 펴주었다. 그렇게 몇 분을 보낸 뒤, 나는 운동화를 신고 밖으로 나갔다. 내일 또 글을 쓸 체력을 비축해 두기 위함이다.












집앞 서울대학교로 이어지는 길은 꽤 괜찮은 산책로였다. 이동네에서 태어나 30년 넘게 살아왔지만, 이 길을 이렇게 성실하게, 감사해하며 걸어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퇴근시간 전이라 한적하고 간간이 하교하는 여고생들만 마주하는 이 시간의 이 길은 오늘 하루동안의 글과 지금의 내 처지를 잊고 몸에 집중하기 가장 좋은 환경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글은 움직임이 없으면서도 많은 노동을 필요로한다. 장시간 앉아서 머리를 쓴다는 정말 많은 체력을 요구하고, 동시에 앉아만 있는 생활로 체력은 점점 저하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매일 산책을 하고 집에 오면 저녁이 되고, 간단한 밥을 먹고 다른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거나, 그냥 멍 때리다가 잠을 잔다.









지금 생각하면 꽤 괜찮은 삶 같지만, 당시에는 외롭고 갑갑하고 온 몸에 좀이 쑤셔서 죽을 지경이었다. 뭔가를 써내야 한다는 부담감, 여행이라도 훌쩍 가고 싶은 갑갑함, 친구들을 만나고 술을 퍼 마시고 노래방도 가는 질펀한 유흥도 그리웠다. 무엇보다 평범한 직장인이던 내가, 이렇게 대낮에 돌아다니는 것에 뭔가 잃어가는 것 같은 불안감이 가장 컸다. 헌데, 그 불안함과 부담이 크면 클수록 글은 잘 나왔다.  절박했기 때문일 것이다.


누가 돈을 대어주고, 좋은 집필실을 주었다면 난 그렇게 열심히 글을 쓰지 못했을 것이다. 얼른 자리를 잡아 양해를 구해 미뤄둔 부모님 생활비를 다시 보태드려야 한다는 부담, 내 원고를 고대하는 친구들과 옛 직장동료들이 있었기에 난 꽤나 성실하게 글을 썼던 것 같다.


딱히 새로운 원고를 시작하지 않은 지금, 내키면 여행도 갈 수 있고, 친구도 만날 수 있고, 밤새 술을 퍼 마실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게 쉽지 않았던 그 때보다 지금 더 뭔가 헛헛하고 밋밋한 일상을 느낀다.

글이 주는 매력은 바로 그런것이다. 아니 좀더 확장해서 말하면, 창작이라는 게 주는 기쁨이 바로 이런 것일테다. 수도생활마냥 뭔가 자유롭지 못하지만, 글과 나와의 교감은, 나만 느끼는 짜릿한 순간은 어떤 유흥보다 재미있다. 그렇게 조용한 여름날, 깊고 진한 기쁨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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