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팀웍을 강요하더니, 나를 밟고 올라가는구나
"근혜야, 너 어디 안갈거지? 나랑 함께 계속 가는거다!"
내 첫 사수는 술만 취하면 이 멘트를 무한정 반복했다. 젊었을 때 여러 형태의 배신을 당했음이 분명하다.
"휴~~ 제가 어디 간다고 했어요? 1년간 준비해서 들어간 NGO도 박차고 나왔잖아요. 저 이제 갈데도 없어요"
사실 갈데 없어서 누구 옆에 붙어 있는 건 내 취향은 아니니 이 말은 거짓말이었다. 단, 우연히 접한 리서치가 신선했고, 그 일에 에너지를 쏟는 선배의 열정에 끌려 석사전공과 다른 이 분야에 정착하기로 마음먹은 것은 사실이었다. 그렇다고 있는 그대로 말하기에는 낯부끄럽지 않은가. 반복되는 취중 멘트에 나도 매번 농담삼아 책임지라는 식으로 응대하고는 했다.
리서치 회사의 구조는 좀 신기한다. 지식 산업이고 나름대로 멤버들의 학력도 높은 편이다. 그런 사람들이 팀을 이뤄 일을 하는데, 구조는 영업직과 완벽하게 동일하다. 즉 팀별로 할당되는 매출이 있고, 그 팀은 팀장의 진두지휘아래 일년동안 열심히 프로젝트를 수행한다. 팀 매출은 일반적으로 팀장 혹은 본부장(여러 팀을 묶은 본부의 수장)의 제 1순위 KPI인데, 이 말은 클라이언트로부터 프로젝트를 수주해 와야 한다는 의미이다. 그럼 클라이언트들은 누구인가? 바로 조사를 의뢰하는 회사들인데, 여러 대기업의 MR(Market Research) 팀, 마케팅팀 혹은 제품개발팀 등의 담당자들이 Key client 들이다. 내가 일을 시작하던 10년 전만해도 우리나라에 조사를 기반으로 마케팅 활동을 하는 기업은 많지 않았기에, Key client들은 여유가 있는 대기업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10년간 소비자 조사가 많이 알려져, 이제는 중소기업의 제품담당자나 마케터들도 소비자 조사를 기본으로 생각하고 있다. (물론 그렇다고 시장사이즈가 늘어난 것은 아니며, 이 기형적인 변화에 대해서는 추후 다른 에피소드에서 풀어가겠다)
다시 조직얘기로 돌아오면, 팀에 할당된 매출을 채우기 위해 팀장은 열심히 클라이언트를 만나고, 제안기회를 받아낸다. 이렇게 받아낸 제안기회는 실무자 레벨인 과장, 차장들이 열심히 제안서를 쓰고, 큰 건의 경우에는 팀장, 본부장이 모두 달라붙어 공을 들여 성공으로 이끌어낸다. 이렇게 해서 프로젝트가 수주가 되면 팀장의 지휘아래 인턴,대리,과장 등이 각자의 레벨에 맞는 역할을 담당한다. 물론 프로젝트 규모에 따라 팀원 모두가 달라붙을 수도 있고, 인턴이 혼자 실무를 하기도 한다. 바로 여기서 팀워크가 가동된다. 즉 과차장이 제안서를 잘못 쓰면 어렵게 가져온 제안 기회는 fail로 돌아오고, 인턴이 밑작업을 잘못하면 과장이 보고서를 쓸 때 애를 먹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업무 자체가 얽히고 설켜있다 보니, 야근도 같이 하고, 주말 근무도 같이 하는, 즉 1주일의 7일을 같이 보내는 공동체가 되는 것이다. 어디 그 뿐인가? 우리에게는 '아름다운 공공의 적', 클라이언트가 있지 않은가! 밤이고 낮이고 연락해 끊임없이 다양한 요구를 해대는 상황에서 우리는 묘한 전우애까지 느낀다. 무엇보다 명백한 것은 모든 프로젝트는 우리의 '일년치 일감'인 팀 매출과 직결되며, 이의 달성 여부는 성과급에 영향을 주는 핵심 KPI이다. 즉 업무적으로, 상황적으로, 결정적으로 현실적으로 팀은 끈끈히 연결된 것이다. 그러니 팀장이나 중간급들은 '팀원과 얼마나 손발이 맞는지'가 중요하고, 그러다보니 이직을 할 때도 팀단위 혹은 부서단위로까지 움직이게 된다.
하지만 이런 움직임에는 두 가지 묘한 감정이 섞여 있다. 즉, '우리는 동고동락한 사이'라는 소위 동아리 선후배 같은 동지애와 '너의 아웃풋이 내 노동의 질과 양을 결정한다'는 제로섬 같은 연결성이다. 그 양가감정은 종이 한 장 차이와 같아서 동일한 상황에서도 마음상태에 따라 다른 양상으로 나타난다.
첫 사수는 항상 대외적으로는 동지애를 외쳤다. 그것을 있는 그대로 믿은 나는 사수가 이직을 하는 회사로 따라갈 정도로 우정을 보였었다. 하지만 그 동지애는 분명 부풀려진 면이 있었는데, 서로가 제로섬 같은 연결성에 깔려있는 이기심을 놓친 것이다. 물론 긍정적인 팀웍의 기본은 이기심이다. 저 친구와 일하면 편하고, 효율성도 좋고, 성과까지 나니까 함께 하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관계가 그렇듯 이런 상호 호혜적인 상황은 오래 가지 못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나 역시 클라이언트의 직접적인 인정이 필요했고, 나를 어필할 시점이 필요했다. 하지만, 사수는 내가 영원히 그의 손과 발이 되어주기를 바라는 듯 했다. 게다가 사수와 함께 프로젝트를 하면 그의 영향력이 너무 커서 나의 아웃풋은 언제나 미미해 보였다. 고객사가 나에게 눈길을 줄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나는 늘 뭔가 미묘한, 그렇다고 대놓고 말할 수 없는 경쟁심과 좌절감을 느꼈고, 그걸 감지한 선배는 기이한 방식으로 나에 대한 소문을 만들어 회사에 뿌리고 다녔다. 결국 동지애고 뭐고 다 깨진 것이다.
이렇게 지속적이고 복잡한 경우까지는 아니었지만, 선배가 없었던 다른 회사에 다닐 때에도 팀워크에 대한 강요를 곧잘 받고는 했다.
"과장님, 어디 다른 데 가시면 안되요~! 우리 팀에는 과장님이 기둥인 것 잊지 마세요!"
갓 들어온 대리 눈에 여행이나 글로 관심을 돌리는 나는, 동시에 자신이 이것저것 물어볼 수 있는 선배인 나는 동지애로 묶어둘 필요가 있어 보였나 보다. 물론 난 그 말을 듣자 마자 불편함을 느꼈고, 결국 1년 뒤에 쿠바로 떠났다. 당연히 그 대리도 몇 년 뒤 다른 회사로 이직을 했다.
사실 기업이 얼마나 무자비한지, 우리의 생존이 조직안의 삶에 무기력하게 의존하는지 인정하면, 이런 동지애나 팀워크에 대한 기대가 얼마나 순진한 환상인지를 금새 알 수 있다. 하지만 함께 몇 주씩 출장을 다녀오고, 나란히 앉아 밤을 새워 보고서를 쓰고, 프로젝트가 끝나는 순간을 같이 맛보는 리서처들에게 동료는 소중한 존재일 수 밖에 없다. 내 경우는 이 감정을 필요할 때와 아닐 때 구분 없이 모두 발동시켰던 것 같다. 그렇다면 나를 감상에 빠뜨렸던 '동료애'는 조심해야 하는 것일까.
'공공의 선'이라는 게 있듯이, 나와 그가 함께 선의일 때 '동료애'가 존립한다. 어느 한쪽에서 동료애에 대한 부당한 사용이 시작되면 이미 그들은 '동료애'가 없는 것이다. 한마디로 '신의'가 깨진 것이다. 그것을 알아채지 못한다면 계속 상대의 부당한 사용에 착취될 것이다.
조직 안에서 우리 모두는 물고기 같이 개별적인 존재이다. 무리를 지어다니지만, 강력한 적수가 나타나면 결국 자기만의 근력과 흐름을 이용해 각자의 길로 헤엄쳐간다. 중요한 것은 나는 누구의 사수도, 누구의 후배도 아닌 그냥 이름 석자인 나 자신이며, 이 상태로 회사와 독대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의 고용주는 회사이지, 팀이 아니다. 이것을 인정하기까지, 그리고 그 선배의 행동을 (수용이 아닌)이해하기까지 참 오래 걸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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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9년 간 리서치 회사를 다니면서 얻고 잃은 것을 써내려가려고 합니다. 지금은 백수이고, 이 업계로 돌아갈지 말지 (물론 받아주는 회사가 있을 때의 얘기지만) 바닥을 뒹굴며 계속 생각만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결론이 나든 나의 젊음과 열정을 바친 이 업계에서 경험한 다사다난한 일들, 그리고 비단 리서치 종사자에게만 적용되지 않을 일과 나의 관계에 대한 많았던 고민들을 써내려갈 생각입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이름은 모두 가명이며, 사건 역시 실제 일어난 일에 상상을 더한 것입니다. 혹시라도 리서치 업계나 특정 회사에 대한 오해가 없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