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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lly Kenye Kwon Aug 18. 2019

인간관계

- 다시 돌아오는 문제 (배경사진@ pinterest)

돌고 돌아서 결국 다시 시작되었다. 어제 정신과 상담을 받고 내가 묶어 둔 모든 문제의 원인은 결국 인간 관계에서 비롯되었음을 깨달았다. 케케묵은 학창시절의 기억, 의지하고 상처 받았던 그 모든 상황들이 결국 똑같이 반복되고 있음을 감지했다. 

난 누구에게 나의 어려움을 토로할 만큼 안정감 있지 못했다. 항상 흥분해 있었고, 누군가를 비난하고 싶었고, 그래서 많이 난폭했었다. 그 결과 아주 많이 상처받고 외로웠었다. 

그 난폭함으로 사람들이 스멀스멀 뒤로 물러났고, 나는 난폭함이 원인임을 깨닫지 못한채 나를 이해해 줄 사람은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처절하게 바닥을 기고 있고 그래서 피를 토하듯 불만을 말하는데, 사람들은 슬며시 나를 뒤로 했다. 아주 외로워졌고 결국 혼자 남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나를 아껴주는 사람이 있었다면 다시 안도감을 찾고, 평안해지고, 내 앞에 있는 상대방에게 깊은 우정을 느꼈을 것이다. 그런데, 아쉽게도 그런 사람은 없었다. 아니 몇몇 있었지만 내가 다 밀어냈었다. 그러면서 짙어지는 외로움. 세상 그 누구에게도 기댈 수 없을 것 같은, 언제나 혼자인 듯한 기분. 이 감정이 깊어지면서 자연스럽게 난 아주 외로운 사람이고, 현재 옆에 있는 사람들이 떠나가지 않도록 잘 대해줘야 한다는 강박이 생겨 버렸다. 내 주변의 인간관계에 심각한 불안감을 느끼면서, 외적으로는 매우 강한 자부심을 가지고 싶어했다. 이 불안감을 극복했다라는 식의......


사실 그 사이 인간관계가 그렇게 나쁘진 않았다. 내가 속내를 보이면 멀어진다는 걸 무의식적으로 인식하고 있었기에, 상대방에게 서운해도 내색하지 않았고 내가 힘들어도 그들에게 기대지 않았다. 결국 '세상살이는 혼자'라는 생각으로 버텨왔고, 그 사이 관계를 숙성시킬 희망이 남은 친구들에게조차 거리감 있는 사이처럼 대해 왔다. 그게 쌓이고 쌓여, 다시 문제가 터졌다. 

사람 좋은 척하는 게 일상이 되다보니, 내가 상대로부터 상처를 받아도, 화를 내어야 할 상황에서도 아무 말 하지 못하고 먹먹하게 순간을 보내고 말았다. 그런 순간은 찰나처럼 지나가진 해도, 마음에서 사라지진 않았다. 결국 그 기억이 쌓이고 쌓여 난 스스로 고립되고 말았다. 모든 것-관계든 추억이든-의 의미가 사라지고 만 것이다. 그리고 결국 3개월만에 다시 정신과 상담을 받았다. 


이렇게 글은 쓰지만, 이게 다 내 '욱하는' 성질 때문이라며 모든 원인을 '나'로 돌리고 싶지 않다. 나도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까지 나를 내몰면 나는 정말 갈 데가 없을 것 같다. 다만, 이렇게 된 것의 '경위(經緯)'를 알았다고나 할까. 내가 왜 마음을 나눌 사람을 만들려고 하지 않았는지, 왜 상대방에게 나의 허물을 드러내려고 하지 않았는지 파악이 되어 가고 있다.

의사가 말한 것 중에, 정말 힘들 때 기댈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진정한 관계를 가지는 것이고(그게 친구든 가족이든), 그런 관계에서 오는 든든함이 더 넓은 관계로 뻗어 나갈 수 있는 힘을 준다고 했다. 어린 아이가 돌아오면 언제든 반겨줄 부모가 있다는 믿음을 근거로 5m, 10m 밖으로 나가 놀 수 있다는 거다. 그리고 그러한 관계는 서로의 허물과 어려움을 공유하고 나서야 형성될 수 있다고 했다. 그런 면에서 난 의지할만한 인간관계를 맺을 기초부터 하지 않은 듯 하다. 


허물을 소란스럽지 않게 내보이고 고통을 조용히 공유할 수 있으려면 난 어떤 상태여야할까. 내가 무너지고 세상이 무너지는 큰일이 아닌, 고통 그대로 직시할 수 있는 여유가 있는 상태가 아닐까. 여러가지 방향으로 생각이 확장되는 조용한 주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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