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식간에 나타난 개 두 마리
“목줄을 하고 배변 치울 휴지와 봉투를 챙겨 밖으로 나왔습니다. 주택단지 골목을 걸으니 강아지는 구석구석 킁킁 냄새를 맡으며 배변할 장소를 찾고 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큰 개 두 마리가 골목으로 나와 저희 강아지를 물었습니다. 놀란 마음에 큰 개 두 마리를 밀치고 강아지를 안고 털썩 주저앉았습니다. 큰 개들이 계속해서 제 품에 있는 강아지에게로 덤벼들었지만 웅크리고 소리를 지르며 등으로 그 개들을 밀쳤습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지만 제게는 너무나 긴 시간이 지났고 큰 개들은 어느 집 대문으로 들어갔습니다. 밤길을 가다 호랑이를 만나면 이런 기분일까요. 비명 소리 때문인지 자기 집 개들이 나갔다 들어오는 소리를 들어서인지 개 주인이 나타났습니다. 동물 병원에 갔더니 저희 강아지 피부에 이빨 자국이 나 있고 멍이 들었습니다.”
월요일 아침 환자로 온 50대 부인이, 담담한 목소리로 강아지가 다친 이야기를 시작하셨습니다. “토요일 오전에 동물 병원 다녀오고 그래도 강아지가 크게 다치지 않아서 다행이다 싶었습니다. 저 또한 큰 개들에게 물리지 않아서 천만다행이었고요. 금요일 밤에는 강아지 걱정에 잠을 못 이루었는데 토요일 밤에는 제 몸이 아파서 잠이 안 왔어요. 몸살감기인가 싶어서 일요일에 목욕탕에 다녀왔는데 허리가 너무 아파서 어젯 밤에도 못 잤습니다. 3일을 못 잤더니 몸이 이상합니다.” 이야기를 하시면서 점점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합니다.
“금요일 밤에 많이 놀라셨나 봐요?”
“그날 강아지 배변 때문에 급하게 나가느라 휴대폰을 안 들고 나갔거든요. 황당한 일을 겪었는데 가족들과 연락도 안 되고, 출장 간 남편을 부를 수도 없었어요. 혼자 강아지 걱정을 했더니 서럽더군요. 얼마나 울었는지. 어제 목욕탕에서 다리 부위 멍을 발견했어요. 언제 멍이 든 건지도 모르겠어요.”
“우선 아픈 허리부터 치료하시죠. 그리고 오늘 밤에도 잠이 오지 않으면 우황청심환이라도 드릴께요.”
“원장님, 치료 잘 부탁드려요.” 하시는데 목소리가 안정을 찾은듯합니다.
화요일에는 허리는 조금 나아지셨는데 등이 아프다고 하셨습니다. 밤마다 아파서 뒤척이고 잠이 들 만하면 개들이 달려드는 장면이 떠올라 깬다고 하셨습니다.
“차츰 괜찮아지실 거예요. 자동차 사고를 당해도 사고 이삼일 후에 아프기 시작하고 꿈에도 사고 장면이 나타나고 하거든요. 개한테 안 물린 것만으로 다행이다 여기세요. 요즘 한창 그런 이야기로 시끄럽잖아요.”
“그 개 주인분도 원장님 한의원 다닌 적 있다고 하더라고요. 여기 한의원에서 제가 치료받는다고 이야기했거든요.”
잠시 후 개들의 주인분한테서 전화가 왔습니다. 환자의 상태가 어떤지부터 물으셨습니다. 몸과 마음이 놀라신 상태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치료 잘해 달라고 부탁하셨습니다. 이분 이야기를 들어 보니 아파트에 살다가 주택으로 이사와 무서워서 마당에 개를 기르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매일 줄에 묶어 두고 키우는데 겨울밤이라 추워지니 잠은 집 안에서 재웠다고 합니다. 그날도 집 안으로 들이기 위해 밖에 묶어 둔 목줄을 잠시 풀었는데 갑자기 뛰쳐나갔고 순식간에 여자분 비명 소리가 들렸다고 합니다. 잠깐이었는데 강아지도 다치고 주인분도 병원 다니시니 걱정이 더해 간다고 하셨습니다. 덩치는 크지만 두 마리 모두 10개월밖에 안 된 강아지라 장난치듯이 달려든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이야기를 듣고 보니 이분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교통사고를 내신 거라 생각하세요. 의도하지 않았지만 사고가 났으니 수습을 하면 됩니다. 제가 환자분 치료는 잘해 드릴께요.”
“원장님 치료 잘 부탁드려요.”
두 분 모두 저희 한의원에 다닌 적이 있으시고 얼굴도 기억나는 분들입니다. 좋은 결말이 되기를 바라며 교통사고로 비유해서 설명 드리고 안심시켜 드렸습니다. 그런데 교통사고와 아주 큰 차이가 있습니다. 교통사고는 보험이 있고, 보험사에서 규정과 규칙이 있고, 몇 주의 진단이냐에 따라 합의금과 치료비가 정해져 있습니다. 중간 역할을 하는 보험설계사분들도 계시고요. 하지만 이 경우는 사람이 마땅히 지키고 행하여야 할 도덕적 의리, 도의적 책임만 있을 뿐입니다. 어느 누구도 중재할 수 없는 일입니다. 두 분은 제게 약간의 중재를 기대하고 계실지도 모릅니다. ‘치료 잘 부탁드려요.’라는 말을 두 분 모두에게서 들으면서 저 스스로 중간 역할을 해야겠다는 결심했을 수도 있습니다.
‘전치 2주 상해’라는 말을 기사로 접하면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얼마나 다쳤는지 대략 가늠은 되지만 숫자만 머리에 남아서 전치 3주보다는 약하구나 하는 생각만 남습니다. 전치라는 단어의 뜻은 ‘온전할 전’, ‘치료할 치’, ‘온전히 치료하다’입니다. ‘병을 완전히 고침’이라는 뜻이지요. 그러면 전치 2주이면 2주 후면 완치되어 예전처럼 지낼 수 있는 걸까요?
진단서 발급을 부탁받으면 객관적으로 판단하려고 노력하지만 환자 상태를 숫자로 판단하기가 미안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골절이 아니면 4주 이상 나올 수가 없습니다. 타박만 있을 경우는 전치 2주입니다. 이 사고는 골절은 없고 약간의 타박과 근육통이 있으니 진단서상으로는 전치 2주입니다.
두 분 모두에게 전치 2주라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습니다. 두 분 모두 몇 주짜리 진단이냐며 진단서를 내어 달라는 이야기도 하지 않으셨으니까요. 그리고 2주 진단이라는 단어가 두 분 모두에게 상처가 될 수 있습니다. ‘내 심리적 상처가 2주짜리라고?’ 하며 섭섭해하실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제 마음속으로만 2주라 여기고 근육통 치료를 해 드리기로 했습니다. 아이 싸움이 어른 싸움 되듯 강아지 문제가 주인 문제로 남습니다. 사고로 망가진 자동차를 바라볼 때와 다친 반려견을 볼 때의 마음은 다를 것입니다. 환자분 마음이 다 풀리고 잠을 잘 주무시고 꿈에도 개들이 나타나지 않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기를 바랍니다.
<작은책>에 실렸던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