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으로 효도하는 법

by 래소


치료받으러 오실 때마다 다정한 목소리와 상냥한 말투로 저와 간호사의 기분을 좋게 해 주시는 70대 후반 여자 환자분이 있습니다.

“오늘은 환자가 많으네. 간호사가 친절하니 환자가 많이 오지.” 환자가 많아 정신이 없을 때 이런 말로 간호사를 칭찬해 주십니다. “새해 복 많이 받아요, 우리 선생님들. 건강 지켜서 오는 사람들 많이 도와주고.” 설날 다음 날에는 나이 어린 사람에게 먼저 새해 인사를 건네주시는 마음 여유가 있는 분입니다. 허리가 많이 아프셔서 자주 치료를 받지만 호전이 없어 걱정을 하는 제게 “나이 들어 허리 아픈 것을 원장이 노력하면 언젠가는 나아지겠지. 마음 급하게 빨리 나으라고 하지 마세요. 나 그럼 한의원에 못 오잖어. 조금씩 나아져서 여기 선생님들 오래오래 보고 싶어.” 하십니다. 이런 표현력은 실력 없는 원장을 더 열심히 하게 하고 무뚝뚝한 간호사도 친절을 베풀게 합니다. 5년을 한결같이 한의원의 분위기를 화사하게 만들어 주는 분입니다.

그런 그이가 요즘 이상합니다. 월요일 아침 한의원에는 오셨는데 피부가 창백하고 웃는 모습이 평소와 달리 억지스러웠습니다. 그런데 침 치료하려고 보니 손을 떨고 계셨어요.

“어제 무슨 일 있으셨어요? 놀라거나 당황스러운 일이 있으셨던 거예요?”

“아니, 괜찮아”라고 말씀하시는데 표정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불안해’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평소와 달리 간호사들에게 말도 안 하시고 주무시듯 조용히 치료를 다 받고 나오셨습니다. 마침 환자가 없어 잠시 원장실에서 이야기를 좀 나누자고 말씀드렸습니다.

“당뇨가 심해지셨어요? 왜 손을 떠시지? 아침은 드셨어요? 어제 정말 아무 일 없으셨어요?”

갑자기 눈물을 뚝뚝 흘리시는 환자분. 5년 동안 그녀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가족사를 많이 들었습니다. 착실히 일해서 돈 벌어다 주었던 남편은 10년 전 돌아가셨지만 아들 둘이서 그 빈자리를 채우느라 주말마다 번갈아 가면서 옵니다. 딸은 캐나다로 이민을 갔지만 한 달에 한 번은 꼭 필요한 물건을 보내 주고 작년에는 외손녀가 한국에 다니러 왔었습니다. 허리는 아프지만 혼자서 생활하기에 불편하지 않은 작은 아파트에서 동네 사람들과 음식도 만들어 먹고 나누며 살고 계십니다. 외로움이나 노인 우울증 같은 단어와는 거리가 먼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5년을 한결같던 분이 눈물이라니요.

“어제 아들놈이 왔는데, 내가 허리도 아프고 추워서 운동을 한 달 못 갔다고 했더니 가만히 듣고만 있는 거야. 저도 매번 올 때마다 내가 아픈 이야기하니 받아 주기가 힘든가 싶어. 너는 어디 안 아프니 했더니, 또 아무 말이 없어.”

“그냥 아드님이 다른 일로 기분이 안 좋으셔서 그랬나 보네요.”

“그러더니 집에 간다는 거야. 그러면서 ‘운동 열심히 안 하고 허리 자꾸 아파서 못 걸으면 요양 병원 가야지’ 하며 가더라고.”

그녀는 한숨도 못 자고, 아들이 간 이후로 ‘요양 병원’이라는 단어만 머리에 남았다고 합니다. 잠을 못 주무셨으니 억지로 웃으려 해도 얼굴이 어두워지고 누군가와 말도 하기 싫어진다고 합니다.

“아드님이 운동하시라고 하시면서 말실수한 걸 겁니다.”

“내가 더 아파지면 자식이랑 같이 지내고 싶다고 말한 적도 없는데, 그냥 좀 내가 아프다 하면 ‘더 아프면 저희 집으로 가셔요’ 하면 얼마나 좋아.”

한참을 자녀분 흉을 보시는 걸 들어 드리고 나니 기분이 좀 나아지시는 것 같으셔서 다행이다 하며 보내 드렸습니다. 그러고 나서 한 주는 예전 모습처럼 잘 지내셨습니다. 지난 주말 큰아드님 이야기를 잊은 듯이요.

주말이 지나 월요일 아침 또 얼굴이 사색이 되어 환자분이 왔습니다. 들어오시면서 저와 상담을 하고 싶다고 하십니다. 순간 작은아드님이 오셔서 뭐 또 상처 받으셨나 싶었습니다.

“어제 작은놈이 왔는데, 큰아들이 수술을 받아야 한대. 그래서 지난주에 와서 그 얘기 하려고 했는데 내가 하도 계속 아프다는 이야기 하니까 말도 못 꺼내고 갔나 봐.”

“큰아드님 어디가 아프신 거래요? 큰 수술인가요?”

“작은놈 말로는 간단한 거라고 신경 쓰지 말라는데, 어미에게 말하러 온 놈을 내가 좀 보듬어 주지도 못하고 나 아픈 것만 이야기하고 요양원 이야기 했다고 원망만 했어. 못난 에미가 되고 말았어.”

아픈 아들은 아프다는 어미 앞에서 자신의 통증이나 수술에 대해 이야기할 수 없었습니다. 혹시나 수술이 잘못되면 어머니를 어찌 모셔야 하나, 동생에게 부담을 줄 수는 없고, 요양원에서 편히 지내시도록 해야 하나, 머리가 복잡했을 겁니다. 형의 수술 소식을 동생이 어머니에게 전할 때는 어머니가 충격을 받지 않는 것이 더 중요했을 겁니다. 그냥 간단한 수술이라고, 그러니 한동안 형이 못 와도 섭섭해하지 말라고 말입니다. 하지만 어미의 마음은 자신의 허리가 아파서 무너져도 자식은 손가락 하나 아프지 않기를 바랍니다. 미소천사 환자분의 무너진 마음을 치료하는 것은 아드님의 완치입니다.

저를 포함한 세상의 모든 자녀분들, 아프지 않는 것이 효도입니다.

<작은책>에 실렸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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