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다는 걸 누군가에게 알리고

by 래소


‘정말 바쁜 것인지 바쁘다는 걸 누군가에게 알리고 싶은 것인지’라는 문장을 《언어의 온도》라는 책에서 보았습니다. 제가 직업병이 있는 건지 그 글을 ‘정말 아픈 것인지 아프다는 걸 누군가에게 알리고 싶은 것인지’라고 읽었습니다. 이런 책에서도 아프다는 이야기를 하나 하고 다시 보니 제가 잘못 읽었더라구요. 환자 중에는 아프다는 걸 알아 달라고 오는 사람이 많아서 제 머릿속에 그런 말이 잠재되어 있었나 봅니다.

4년을 일주일에 두세번 씩 꼬박꼬박 침을 맞으러 오시는 환자분이 있습니다. 올해가 93세가 되시는 분입니다. 치료가 끝나면 대기실 소파에서 잘 모르는 다른 환자에게 말을 거십니다.

“아줌마는 어디가 아파서 왔어요?”

“무릎이 아파서요.”

“나이가 우째 되는디 무릎이 아파요. 젊어 보이시는데.”

“올해가 70입니다.”

“아이고 젊네. 나는 93이요.”

“어머나, 정말 정정하시네요. 그렇게 안 보이세요.”

그러면 주변에서 듣고만 있던 분들도 “젊어 보이시고, 건강하시네요”라고 한마디 건네십니다. 그렇게 70대 분과 다른 분들에게 젊다는 소리를 들으시면 기분이 좋아지셔서 댁으로 돌아가십니다. 대기실에 아무도 이야기 나눌 사람이 없으면, 간호사에게 ‘원장님 시간 있으면 나랑 이야기 좀 하자고 전해 줘’라고 하십니다. 원장실에서 매번 비슷한 이야기를 하시지만 그래도 조금씩은 달라지는 통증 이야기이니 들어 드립니다.

“원장도 알잖어. 내가 여기 4년 다니면서 허리며 무릎이며 많이 좋아졌지. 나더러 수술하라고 하는 의사들이 많았지만 안 하고도 이렇게 잘 지내잖어. 내가 앞으로 얼마나 더 살지는 몰라도 계속 여기나 다니면서 지내려고. 그런데 무릎 아픈 사람이 한의원에 많이 와? 나랑 똑같이 아픈 사람도 있어?”

“그럼요. 50대도 무릎이 불편해서 와요. 어머니처럼 아프신 분도 많고요.”

“50에 병원을 온다고? 난 그 나이에 병원을 모르고 살았어. 80넘어서 다니기 시작했지. 젊은 사람들이 뭐가 그리 아프다고.”

젊어서부터 아픈 사람에 대한 동정과 자신의 건강했던 과거를 회상하십니다. 그리고 혼자만 이렇게 아픈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매번 듣고 싶어 하십니다.

“수술한 사람도 많이 오지? 수술한다고 하나도 안 아픈 건 아니지?”

“수술이 잘되어서 하나도 안 아프신 분도 있어요. 그러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수술 전만큼은 아니지만 아파서 오기는 하세요.”

“거 봐. 수술해도 아프다니까. 그래서 내가 80에 수술하라는 거를 안 했어.”

이번 대화에서는 수술받지 않았던 자신의 결정이 옳았다는 확신을 다시 한 번 하시는 겁니다. 그리고 수술받지 않은 것에 대한 약간의 후회를 ‘수술해도 아파’라는 말씀으로 사라지게 만드십니다. 이렇게 저하고 대화가 끝나면 기분이 좋아져서 댁으로 돌아가십니다.

제가 환자 상담으로 바쁘고 대기실에 아무도 없는 날이면 간호사에게 이야기를 건네십니다. “나보다 나이 많은 환자가 여기 와?”

“그럼요. 98세인 분 계셔요.”

“호적이 잘못된 거 아니고 진짜 98이야? 어디가 아파서 와?”

“예전에 군인이셨던 분인데요. 허리가 가끔 아파 오세요.”

“무릎은 안 아프고? 허리만 아픈 거야? 부럽네. 다른 데 아픈 데가 더 있지?” 하시며 표정이 어두워지십니다.

“예, 가끔 소화도 안 되셔서 소화제도 사 가지고 가시는 분이에요.” 이 말에 얼굴에 화색이 도시면서 “난 소화는 잘 되는데 입맛도 좋구 말이야. 속병 있으면 고생이 많지”라고 하십니다.

98세 환자분의 건강한 무릎이 부러우시면서도 자신은 그 사람보다 위장이 튼튼한 것에 위안을 받으시며, 또 기분이 좋아지셔서 댁으로 돌아가십니다.

4년 정도 뵙다 보니 이 환자분은 정말 아픈 것인지 아니면 남보다는 덜 아프다는 것을 확인하러 오시는 것인지 가끔은 헷갈릴 때가 있습니다. 어떤 마음으로 한의원에 오시는지 모르지만 기분이 좋아져서 집으로 가시니, 침으로 기운을 보태 드리지는 못했어도 말로나마 기분을 올려 드린 것 같아 저도 기분은 좋습니다.

어르신들의 만성질환은 획기적으로 나아지지 않습니다. 매일의 똑같은 생활 속에서 조금 덜 아픈 날과 조금 더 아픈 날이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내 아픔을 누가 들여다봐 주고 다른 이의 아픔을 조금 들여다보고 위안을 얻고 안도하면서 어두운 아픔의 기간을 견뎌 나가는 것이 노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작은책>에 실린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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