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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 속의 아름다움

서울 사는 대구사람의 이야기

by Kelly KyuHyang Lim





내일 시내에서 한시까지 보자.





시내가 유일한 동성로뿐이라 (이를테면 서울에는 명동 이태원 홍대 등등을 시내로 분류한다) 저 한 단어로 모든 것이 통하는 대구에서 유년기와 학창시절 , 대학 까지 모조리 보낸 내가 서울에서 지낸지도 삼 년을 향해 달리는 중이다. 처음 일 년간은 일주일에 한 번씩 찾던 대구가 어느새 한 달 에 한 번이 되고 이제는 마지막으로 내려온 게 언제인지 까마득할 만큼 줄어든 그 횟수는

나도 모르게 스며들어버린 서울생활의 반증이 되었다.





추석 지나 가을 색이 짙어진 후 처음 온 고향. 기차역에서 내려 버스비가 얼마인지 기억이 안 나 주머니에서 대충 동전을 주섬주섬 꺼내 무심히 동전 통에 던져 넣었다.

버스기사 아저씨도 언제나처럼 무뚝뚝하시다.






안녕. 대구
대구시 수성구 지산2동. 가을비 내리던 날 밤









내가 이런 동네에 살았었나?


20층 이하의 아파트 들을 감싸주는 돌담과 그 앞의 즐비한 가로수들. 빗물 때문에 바닥에 척척히 달라붙은 낙엽들은 없어지기를 거부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려 수분기 가득한 촉촉한 밤

내 학창시절의 청사진을 그렸던 동네를 걸어본다.


거리에는 그때는 몰랐던 것이 분명 존재 했다.













내가 출가 한 짧지않은 시간 동안 보수성이 강한 도시인 대구에서도 꽤 많은 표면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어렸을 적 얼음이 얼면 그 위에서 아슬아슬 얼음을 걷던 , 나의 큰 운동장이나 다름없던 수성못 은 어느샌가 도심 속 못의 운치를 뒤늦게야 알아본 듯이 급진적으로 카페와 술집 , 밥집들이 생겨났고 지금은 연못을 끼고 엄청난 상권이 형성되어 수성못은 차 막히는 곳이라는 공식이 생겨났다.

어느새 우리동네가 저 멀리서도 찾아오는

유명한 곳이 되어있었다.



또한 올해 봄에는 무려 지상철 3호선이 개통되어 버스로 한 시간 반을 통학해야 했던 대학 캠퍼스를 삼십 분 만에 갈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가뜩이나 오밀조밀 서로 부대끼며 살고 있는 동네에 비정상적인 비율로 자리 잡은 지상철이 떡하니 들어오니 경관을 망친다는 둥 볼멘소리를 하던 동네 사람들마저 어느새 현대적인 삶의 속도감의 황홀함에 저도 모르게 넋놓고 있는 듯했다.








용지공원이 빨갛게 물들었다.
401번은 시내로 402번은 학교로



목련시장 생선가게 아저씨의 낙엽장식에서 보이는 가 을 낭 만 !








하지만 아무리 변해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기 마련이다.



우리 아파트에서 딱 열발자국만 떼면 나오는 역사 깊은 목련시장 , 24시간 돌아가는 이모 김밥집에 파는 단무지와 당근만 들어간 이상하게 맛있는 김밥 , 내 지난 격정적인 연애사의 역사를 담은 용지공원 벤치, 겨울에는 하얗고 가을엔 늘 빨갛던 , 시내로 나가기 위한 버스를 기다리던 , 교복 입고 학교 가는 버스를 기다리던 그 공원 앞의 버스정류장.







보라색과 노란 은행잎의 보색조화는 철저한 우연이였다.






서울의 삶에 지쳐

휴식하러 오던 내게

왜 그런 얼굴을 하고 있나며 묻지도 않고

같은 자리에 있어주던 그곳은


권태처럼 또는 길게 늘어진 습관처럼

따분하기도 했던 그곳은


내 지난 날의 아름다운 일상이였다.





어느 유명한 단풍 명소 보다 색채가 짙다. 나의 집.






내가 누리던 것이

이토록 풍요로웠다는 것을,


변한 것은 고향이 아니라

진정한 가치와 삶의 혜안을

저울질 할수 있게 된

라는 것을 깨닫는다.





아파트11층에서 내려다 본 풍경.







빠르게 회전하는 우리 삶

어느 한 켠에 존재하는

정지된 시간의 덩어리

언제나 그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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