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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lly KyuHyang Lim Mar 18. 2021

전시를 끝내고 북촌을 걸으니 어느새 봄이네

전시 종료 30분 전

전시의 마지막 날답게 꽤 많은 관람객이 다녀갔다.

전시 기간중 관람객이 가장 많은 때는 오픈날 , 두 번째는 마지막 날이다. 저 멀리 제주도에서 나를 보러 온 구독자 팬도 있었고 미술계의 지인들도 갤러리에 들러 소품을 몇 점 구입해서 분주했던 날이었다. 오후 여섯 시가 지나자 갤러리 창으로부터 그림자가 사라진다.





작품들과 이별해야 할 마음의 준비를 한다. 작품은 내일 철수하기로 했고 직원도 출근하지 않았기에 갤러리 식구들 없이 소소하게 마무리의 축배를 들기로 했다. ( 그래 봤자 동네 칼국수집에서 비빔밥을 먹는 것으로 )


그런 마음 정리를 하고 있었는데 순간

가족 컬렉터가 갤러리를 찾았다. 내가 최근에 업로드한 라이브 영상을 보고 직접 방문하고 싶었다고 한다. 마무리 준비를 하며 차분함을 준비하던 나의 마음은 다시 심장이 쿵쿵 뛰기 시작하고 모든 교감신경이 활성화 되었다. 이벤트로 기획했던 작은 소품 몇 점을 구입하려고 했던 그 컬렉터는 내 자리 오른쪽에 걸려있던 큰 작품을 고르고선 칼같이 계산하고 작품을 바로 들고 나가셨다. 나는 우편으로 보증서와 다음 달에 있을 아트페어 티켓을 보내주겠노라 기약했다.


끝날 때 까진 끝난 것이 아니었다.



나는 돌아가는 길에 작가님께 드릴 정산금을 일부 현금으로 인출해두었다. 한달 가까이 고생한 것에 대한 보상이 주어진것. 뿌듯한 마음으로 돈을 바라본다.

예술작품이, 작가와 나의 고민과 열정이 돈으로 환산되어서 다행이다. 하고 말이다.




다음날 철수를 위해 강동호 작가님이 갤러리를 찾았다. 어제의 에피소드를 그대로 전달해드렸다.


"작가님 어제 철수 30분 전에 컬렉터가 오셔서 작품을 구입하셨는데 라이브 영상을 보고 찾아오셨대요, 라이브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을 많이 했었는데 역시 하기를 잘했어요"


"와 고민을 많이 하시는구나, 저는 대표님이 정말 재밌어서 즐기시는 줄 알았어요"


와,

내가 재밌어 보였다니

그렇다면

성공적이다.


사실 우리 갤러리 전시를 를 유튜브로 노출시키는 것이 굉장히 조심스럽다. 즐거운 것과는 별개로 굉장한 정신적인 부담감을 느낀다. 온라인 라이브 경매라도 할 때면 단 한 명도 들어오지 않고 유찰되면 어떡하나 하는 과대망상의 꿈을 꾼다. 라이브 하는 날이면 집에 돌아와 떡볶이를 먹고 실신한다. 전시 광경을 유튜브로 대 놓고 홍보하는 것 같아서 적절히 센스 있는 콘텐츠를 만들고 싶은데 그것도 갤러리를 운영하다 보면 실행하기가 녹록지 않다. 특히 북촌에 공간을 확장한 후로는 갤러리 내실을 다지느라 전력 질주하고 있기에 콘텐츠를 예전처럼 올리지 못해서 이렇게 라이브로 할 때면 날로 먹는 것 같아 구독자들에게 미안하기도 하다. 나의 온갖 잡념과 걱정과는 무관하게 이렇게 순기능으로 새로운 컬렉터를 만나서 또 부담감과 경직되어있던 내 마음이 사르르 녹았다. 또한 그런 내가 즐기는 것처럼 보였다니 그 또한 다행이었다.




작가님께서는 철수 날 나를 닮은 속눈썹을 하고 있는 <SOLDOUT> 이 크게 적힌 작품을 선물해주셨다. 책 출간 기념이라고 한다. 그리고 내 왼쪽에 걸려있던 10호짜리 작품은 갤러리 오픈 선물이라며 주셨다. 나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 작품은 일부는 갤러리 수장고로 돌아가고 일부는 작가님의 차에 실렸다. 작가님을 보내고 창문에 남아있는 글자 커팅 흔적을 지워내던 중 갑자기 피곤함이 몰려와 집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갤러리에서 우리 집 까지 오는 길은 낭만적이다. 난 한동안 그것을 외면했을뿐이다. 이런걸 즐길 때가 아니라고 말이다  


국립현대미술관 뒷길에서 창덕궁까지 가는 길. 얼마 만에 걸어보는 오후 3시의 북촌 거리인가? 어제까지만 해도 추웠는데 오늘 갑자기 딱 봄 날씨다.

뭐야 여기저기 목련이 필락 말락 몽우리가 가득하고  사람들의 옷이 코트에서 재킷으로 바뀌어있다. 세상은 계속 변하는데 나만 몰랐던 것 같은 이 기분은 뭐지?


북촌 거리의 카페엔 저마다 사람들로 가득 차있다.  

태연하게 다가온 봄을 맞이하고있었다. 유난히 춥고 눈이 많이 왔고 꽁꽁 얼어있던 지난 겨울날이 마치 없었던 것 처럼. 그들은 태연하게 봄을 즐기고 있었다.


돌연 그들의 일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스쳤다. 가던 길을 멈추고 뒷걸음질로 카페에 돌아왔다. 배고픔과 피곤함을 , 업무에 대한 부담을 뒤로하고 나를 더 배고프게 할 차를 마셔본다.




자유,따뜻함,생기가 느껴지는 날씨다.

오늘 저녁까지 다음 주에 이어질 전시의 기획 글을 마무리해서 디자이너에게 넘겨야 하는데 이렇게 대책 없이 낭만을 즐기고 있다니.



러브컨템포러리 아트

임규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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