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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lly KyuHyang Lim Nov 24. 2015

비극 후 달콤함을 맛보는 쾌락

#2 가을비가 오는 제주도의  현대미술과  방주교회






비일상적인 공간에 있다 보면
시간에 대한 감각이  사라진다.
2층 높이의 호텔에서도 저 먼 곳까지 보인다.  아침 7시 의 비의 색깔





이튿날도 아침부터 안개비가 내렸다.

여전히 하늘은 그 속에 많은 것을 숨긴 듯 흐리기만 하다. 일어나자마자 호텔 안 온천까지 다녀왔다.

비 오는 가을의 제주 아침을 경험하기 위해 일찍 일어나는 것에 온갖 신경을 곤두세웠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호텔방의 테라스로 나오니 그 비밀스러운 하늘촉촉한 흙이 내 얼굴과 그 어느 때 보다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흙냄새를 맡으며 낯선 아침의 공기를 만끽한다.

고작 이  층높이의 호텔에서 보기에는 내게 너무 가까이 닿은 하늘이다.  



 간소하지만 핵심만 있는 조식이 마음에 든다.




지독한 커피 중독자인 내가 호텔 조식에서 커피를 영원히 마실 것처럼 들이키는 것은 당연 지사였다.

식사를 하며 창문 너머 반대편으로 보이는 어제의 본태 박물관의 콘크리트는 어제보다는 회색빛이 좀 더 연해진 것 같기도 했다.     






 한 쌍의 오리 커플은 육중한 두 건물들 사이의 연못을 여유롭고 우아하게 떠다닌다. 저 둘 만큼 이 두 건물을 자유롭고 쉽게 오가는 이는 없을 것이다.

어제 본태CAFE에서 보았던 푸른 배경의 오리가 표현된 데이비드 걸스타인의 작품이 생각났다. 바로 저 두 오리들 중 하나일 거라 짐작한다.  우연일지도 모르는 복선.       



David Nash




어제밤의 본태 박물관을 본격적으로 탐구하기 시작 한다.


수평선과 지평선을 연상시키는 직선의 콘크리트가  사뿐히 물에 머금어 있는 자태를 보면 대체 그 속에 뭐가 있을지 궁금해진다. 제주도의  자연경관에 스며든 그 온건한 장면을 넋 놓고  바라보고 있다가 신발을 벗고 미술관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예기치 못한 광경에 입을 떡 벌리게 된다. 그 자극은 단순한 미술품에 관한 경외심이  아니었다. 사실 내겐 전혀 새로울 것이 없는 익숙한 작품들이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눈과 귀는 매우 예민해 작은 것으로 모든 기억이  되살아난다. 가령 사진의 데이비드  나쉬의 작품을 보고 그것을 보았던 갤러리 , 날씨 , 동행자 까지 자동  연상되는 것을 보면 말이다.




아름다움에 대한 우리의 우리의 감각과 좋은 삶의 본질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서로 얽혀있다.




나의 감탄사 연발의 근원은 바로 높고도 넓은 공간감에 무심하게도 공간에 사치를 부리듯 듬성듬성 자리 잡은 현대미술작품이 안도의 손길에 녹아들어있는 모습 이였다. 하얀 상자 같은 공간의 갤러리에서 보았을 때 미쳐  발견하지 못했던 작품들의 내적 자산 들이 몇 배로 묻어났다.


건축가의 충분한 계산에서 이루어졌을 널찍한 창문으로 흘러들어오는 제주도의 빛과 자연은 작품을 대하는 내게 진중한 자세를 요구 하는 것 같았다.





             로버트 인디애나 LOVE , 쿠사마 야오이


제주의 빛



본태박물관은 소박하고 인간적인 1관과 높이 감이 웅장한 2관으로  나누어지는데  내용 또한 공간과 맞게 전시되어있다. 1관의 전통미술  수공예품은 우리의 소박함이 파격적인 디스플레이로 해석된 것이  새로웠다. 2관의 <현대미술 작품과 안도 타다오> 전에서는 전시 제목을 고스란히 전해주듯 안도가 만들어놓은 담담한 공간에 화려한 색채와 그 조형감을 자랑하는 백남준 데이비드 걸스타인 , 살바도르 달리 , 데이비드 나쉬,  로버트 인디에나 등 굵직한 현대 미술작가의 작품들이 개방감 있게  전시되어있다.      





방주교회 ( 이타미준 설계)




본태 박물관에서 차로 1분 거리의 방주교회에  도착했다. 형태가 없고 영적인  것이라는 서술에 근거하여 예술과 종교는 같은 맥락이다. 나는 그곳에 존재하는 어떤 무형의 에너지 에 단단히  압도되고 말았다.  

숭고한 어떤 존재 앞에서  한없이 세속적인 초라한 나를 발견한  당혹스러움.

바깥 세계의 소음은 사라지고 경외와 정적만이 맴돌았다. 그 침묵의 너머에는 바람과 물의 소리가  들렸다. 방주교회는 이름처럼 노아의  방주처럼 물 위에 편안하게 떠  있었다.



물에 비친 방주교회 . 예술이다



이타미 준과 안도 다다오의 공통된 생각 중 종교건축의 최종 목적은 건축물이 사라지게 만드는 것이었다 고 한다. 이타미 준은 교회가 침묵의 공기와 자연에 스며들게 만듦으로써 그 목적을 달성한듯하다.




쿠사마 야오이








미술품과  건축물에서 이런 영감을 얻고 나면

"의자 는 의자 에 불과하다"

 는 식의 교과서적 사실 들이 시시해지고  만다. 그리고는 눈에 띄는 모든 사물들에 운문적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한다. 이런 일련의 경험과 과정들을 겪고 나면 우리 삶의 일반적인 명제에도 시적인 표현을 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른다. 그 경지는 세상을 바라보는 통찰력과 긴밀한 관계 를 유지한다.  


남들보다 감각적이고 앞서 나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보면 괴로운  일이다. 우리 삶이 언제나 모던하고 세련된 쾌적한 환경 만을 제공해주리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나 또한 견딜 수 없는 공간은 견디지 못하는 공간성애자다.  하지만 많은 아름다운 것들이 고통과 대화할 때 그 가치가 드러난다는 알랭 드 보통의 말처럼  삶은 우리에게 긴 비극을 내 비친 뒤 가끔씩 짜릿한 달콤함을 맛보게  한다.

내가 미술과 건축에 미쳐있는 이유이다.



유독 빨리 해가  지는 잔뜩 습기찬 날 제주의 5.PM



흘러넘치는 영감들이 내 작은 머리에 정리 되지가 않는다.  때론 건축물이나 미술품이 내 기를 빼앗아 가버린 건 아닐까 생각한다. 해가 저무는 광경에 내 복잡한 머리를 기대며 의지 해본다.



나의 다음 행선지의 건축물들은

내게 어떤 말을 걸어줄까?




                                                     LUV contemporary art

                                                       갤러리스트 임규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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