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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lly KyuHyang Lim Mar 04. 2016

할머니와 엄마의 작품을 큐레이션 하며

168년의 세상을 훑어보다. 그녀의 딸의 딸.




1. 삼대 모녀 전을 계획하다.    


갤러리를 하며 현대미술 작가들의  작품으로 외국과 전국을  종횡무진하던 나  , 그리고 그 작가 중 하나이자 비즈니스 파트너이기도 한  서양화가인  엄마와 재미나는 일을 궁리했다. 몇 년  전 갑작스럽게 찾아온 뇌경색으로 쓰러지신 후  농사일을 그만두시고 엄마와 함께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외할머니의 드로잉 작품을 보고 무심코 “이거 전시해도 되겠는데” 하며 지나가는 말로 했던 말이 씨가 된 것이다.



추석 때 오랜만에 들른 시골 할머니 댁에서  “할머니~ 그림이 너무 좋아요” 할 때마다 “덮어놓고 아무 따나 그렸능기 뭐가 잘 그렸노? 넘사시럽다”  며 시종일관 작품 앞에서 시크한 자세를 고수하시던 외할머니의 드로잉 작품도 어느새 백점이 넘어가기 시작하고 그 속에서 일관성 있는 작품세계가 드러나기 시작하자 엄마와 나의 프로젝트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전시할 장소를 물색하고 전시 일정도 빠듯하게  잡았다. 그로부터 딱 한 달 뒤. 차곡차곡 모아진 외할머니의 드로잉 수백 점을 내가 있는 서울로 받은 뒤 그림들을 모두 모아서 사진을 찍은 뒤 하나씩 넘겨 보았다. 이 중에서 액자 할 것과 안 할 것을 분류하고 어떤 틀을 할 것인지 메인작품은 무엇인지 전시장을 상상하며 디스플레이 구상을 짜는 것이다.



그림에 생명력을 불어 넣어줄 큐레이션 과정


외국작가들에게 그림 뭉치를 국제택배로 받아서 바닥에 쫙 깔아놓고 이런저런 고민을 하는 나의  모습. 사실 이러한 행위는 나에게  익숙하다. 그 대상이 멀고 멀게 느껴지는 외국인이 아닌  외할머니라는 것 빼고 말이다.   



왠일인지 작품을 보다가 수시로 가슴이 아파왔다. 무심한 듯 써 내려간 듯한 글과 서툴지만 원초적인 감각의 드로잉 선은 몇 번을 봐도  울컥거리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사랑이뭔지 모르고 살았다.


행복할데가 없었다. 늘 고생만하며 살았다. "168년의 세상보기" 전시


대추나무 그림에 쓰인 “아~가 (아이) 늑대한테 물려갔다” 얘기는 전래동화 같았다


사랑사이. KBS1방송분

이렇게 글과 그림에서 할머니의 고된 삶이 그대로 녹아있었다


정순원 호박, maker on paper, 25x35 ,2015





그렇다.

우리 세 모녀는 1930년대부터 2015년 지금까지. 급변한 우리나라의 너무나도 다른 세대를 경험했지만 동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168년이라는 전시 제목이 탄생한다.  



전시 리플릿 디자인.


2,  외할머니의 예쁜 시절을 만나다.



꼬박 한 달 정도 전시 준비를 하면서 나는 서울 일정을 과감히 접어두고 대구 집에 내려왔다.

엄마의 화실에서 전시에 대해 상의하고  할머니의 작품 액자를 그림과 맞게 직접 액자를  만들었다. 신문사 인터뷰 일정으로 외할머니는 시골에서 올라오셔서 우리 집에 며칠간 머물며 나와  동고동락했다. 나는 그런 할머니에게 틈만 나면 작품에 대해서  물어봤다.    


전시장에서. SBS 좋은아침 촬영중
소통하며 그림그리는 세모녀



“할머니 이건  뭐예요?

이건 누구를 그린 거예요?”

“그냥 아들(아이들) 다 그렸지 뭐 ”

“아물따나 그렸다 ” “생각이 어딨니 그냥 그렸다”     


세상에서 가장 예술가 다운 대답이라고 생각했다.

 할머니와의 대화는 그림으로 연결된 최초이자 가장 깊은 교감이었다.     


실제로 유년기 속 내 기억의 할머니는 참으로 용감하고 한없이 강했다. 부모님은 동생과 나를 방학 때마다 영천으로 일주일 정도 시골체험을 보냈는데 할머니 따라 밭에 따라가기도 하고  소여물을 주기도  했다. 나는 과자도 없고  재밌는 TV도 잘 안 나오는 시골에 있는 게 좋지만은 않았다.  밭일을 하는 외할머니 손 은 너무 까맣고 더럽다며 철없지만 가장  어린아이스러운 말을 하기도 했다.

시골에서의  어느 날  밤 , 내 남동생이 갑자기 아프기 시작하자 할머니는 갑자기 칼을 들고 마당에 나가서 할머니만의 의식을 치르셨다. 아픈 것은 귀신이 붙은 것 이라며 그 귀신을 쫓아내고 들어오시자 내 동생은 거짓말 같이 나았고 새근새근 잠이 들었다.   내게 외할머니는 그런 일련의 몇몇 사건으로서만 점철되어지는 단순한 존재였다.


할머니는 원래부터  할머니였을 것 같은 착각.          

그런 할머니 에게도 나처럼 꽃 같은 시절이 있었을 거란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이 작품 때문이었다.  


정순원 , 임을기다린다 , maker on paper , 25x35 , 2014


교과서 적인 감상평 같지만 파란색 치마와 보색 대비의 예쁜 노란색 블라우스를 입은 할머니는 누구를 그렇게 애타게 기다린  것일까.  지금처럼 통신수단도 없던 6.25 시절 전쟁 나가신  외할아버지 , 일제시대 때 일본으로 건너가 공장일을 하셔야 했던 외할아버지를 외할머니는 한없이 기다려야 했던 게 아닐까?


할머니에게도 지금의 나처럼 설레는 감정 꽃 같던 청춘을 품고 살았던 때가 있었을 것이다.

시대적 배경과 상황 때문에 지금 내가 누리는 모든 것들을 잃은 채 자식과 가족을 위한 헌신으로 가득 찬 할머니의 청춘이 안타까워 가슴이 일렁였다.  




3, 나의 예술 감각의 뿌리는.   


작품 디피를 끝내고. 한컷



나는 철저히 제도화된 미술교육의  수혜자였다. 어렸을 때부터 미술학원을 하던 엄마 덕분에 예술을 접하는 것이 자유로웠으며 중학교 때 이미 미대 진학을 목표로 선택해  예술 고등학교를 갔고 또 그 옆의 미술대학을 갔다.

모든 결정이  순탄했으며 나는 엄마의 지도를 잘 따랐다. 감각은 있으나 가만히 앉아있는걸  힘들어하는 에너지틱한 성격의 소유자로서 대학교 재학 중에 이미 갤러리 일을 접하며 지금까지 커리어를 쌓아 오고 있었다. 엄마 또한 젊은 시절부터 운영해오던 미술학원을 어느새 접고 전업 작가로 작품 활동을 꾸준히  해오셨다. 그런 엄마의 작품으로 나는 홍콩이며 대만이며 전국에 열리는 아트페어에 참가하며 소개하고 판매하기도 했다.


혹자는 이런 모녀의 행보를  부러워하기도 했다.


작가인 엄마와 갤러리스트인 딸 이라니

그야말로  찰떡궁합이 아닌가.

그런 우리 모녀 뒤에는

크고 큰 나무가

존재하고 있었다.     





KBS 1.대구 행복발견 오늘



“저는  우리 딸의 감각적이고 창의 적인 부분이 철저히 저의 조기교육으로 인한 것이었다고 생각했는데 저희 어머니로부터 전해져 왔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손영숙 작가 인터뷰 중



이 화려한 세상의 교태에도 꿈쩍 않을 만큼 강해진 나의 타고난 감성과 뿜어져 나오는 색채의 근본은  어쩌면 그 힘든 시절을 살아오신 우리 외할머니로부터였던 것이다.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며 차분히 글을 써내려 가시는 할머니.


근 삼 년 동안의 작품 활동으로 할머니께서는  치매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그림 그릴 때마다 엄마가 이끌어낸 과거에 대한 끝없는 질문에 대해 생각하고 또 그 시절의 색들을 그려내기 위해 종이 위에서 만들어진 놀라운 결과였다. 지금은 젊은 시절 잠시 배운 일본어까지 유창하게 하실 만큼 예전으로 돌아오셨다.



방송취재중 KBS1TV 생방송행복발견 오늘


전시 오픈식중 인삿말 중
전시 오픈식날 가장 기쁘다.


한 달간의 전시는 성황리에 끝이 났고 내 전시 기획 사상 최고로 많은 사람이 모였다. 작품을 보러 전국 각지에서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였고  최초로 갤러리라는 곳에 모인 이모와 삼촌들은 할머니의 그림 속 아이가 서로 자기라며 웃고 떠들기도 했다. 이모와 삼촌들은 자신의 자식들에게 할머니 그림 속에서 보이는 시대상황을 설명해주느라 여념이 없었고 우리는 모두 할머니의 일생을 간접 경험했다.

전시소식을 듣고 대구의 한 신문 기자님이 취재를 해 신문에 대문짝만 하게 나는 바람에 방송 출연을 여러 번 하기도 하였다.  



전시를 기획하며 두 달 간 대구와 서울을 오가며 했던 무형의 노력은 세간의 관심으로 눈 녹듯 씻겨 내려갔고  나의 뿌리를 찾아 탐험하는 여행은 두 달 만에 끝이 났다.



기적은 물위를 걷는것이 아니다. 아직도 내가 그대를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이 전시를 접한 모든 나의 또래 친구들이 어른들과 세대차이를 느낄 때마다 한 번쯤은 엄마,그리고 엄마의 엄마의 인생을 한 번쯤 그려보는 기회를 가졌으면 한다.



손영숙 Flowering, 캔버스위 아크릴 Acrylic on canvas , 90x65 cm , 2013






엄마도 할머니도

나처럼 꽃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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