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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lly KyuHyang Lim Apr 07. 2016

봄에 보기 좋은 그림.

신비롭고 은밀하게  봄을 만끽하는 법.





한낮의 봄바람 냄새가 창문으로 흘러 들어온다. 오후 1시, 봄 이 한가득 안은 햇살은 자신의 존재감을 있는 힘껏 드러내며 집의 보이지 않는 곳 구석구석까지 빛을 내리쬘 것처럼 기세 등등하다. 벽 한편에는 빛을 교묘하게 피한 그녀의 키 만한 작품이 걸려있다. 너비가 3미터 남짓 한 이 거실에는 저  그림을 제외하면 가구나 장식이라 불릴 만한 것이 없다. 그녀는 커피 한잔을 들고, 내리쬐는 햇살과 그림이 전부인 이 거실에서 다가온 봄을 만끽한다.


빛이 드는 공간과 그림으로만 점철되어진 나의 이상은 이렇듯 비현실적이다. 단순함과 간소함을 외치는 미니멀리스트를 위장한 나의 욕망은 따지고 보면 사치보다도  비싸다.  


이런 상념을 하면서 봄이라는 이 내게 주는 어떤 물질적 형체를 애써 떠올려 보았다. 아마도 채도가 옅은 파스텔 톤의  얼룩덜룩한 추상적인 이미지가 펼쳐진다. 부드럽고도 섬세한 의문의 이미지들이 머릿속을 부유한다.      

나는 지금 공상과 상상으로 봄을 느끼는 중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유명 벚꽃놀이 투어 코스는 안산인해다. 가기 전에는 벚꽃과 봄의 향기에 가득 취해 있을 스스로를 상상하며 올해도 도전한다.  하지만 현실은 시야에 분홍색 벚꽃보다  새까만 사람 머리가 차지하는 비율이 더 많다. 좋은 사진 스폿을 찾기 위해서는 줄을 서는 수고도 감행해야 한다. 줄을 서며 다른 사람의 커플 사진을 찍고 있는 것을 바라보는 당신은 어느 순간 묘한 허무감에 사로잡힐 것이다. 그리고 뒤 배경에 사람이 최대한 덜 찍힌 베스트 샷을 엄선해 SNS 에 올리고는 해시태그는 #벚꽃놀이#나도 다녀옴으로 허무함을 위로한다.



그래도  벚꽃은 무심코 지나치던 심장을 자극시킨다. 벚꽃의 등장으로 칙칙하던 도시는 순식간에 봄 필터링이 입혀진다.  한강의 아침8:00



꼭 벚꽃 소풍을 가야만  봄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행복은 우리 가까이에 있다는 식상한 말처럼 살짝만 생각의 범위를 확장해보면 보다 다양한 즐길 것들이 있다.


듣기만 해도 생기가 샘솟는 노래를 듣는 것.

쌉쌀한 봄나물이 곁들여진 음식을 먹는 것.

나의 지난봄에 대한 기억들을 추억하는 것.

그 기억이 묻어있는 옷을 꺼내 입는 것.


나는 봄 느낌 물씬 풍기는 작가들의 그림 몇 점으로 벚꽃놀이를 했다.  단. 나의 놀이에는 객관적인 형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1. 헬렌 프랑켄 탈러

   Helen Frankenthaler


Beginnings 2002


눈 감으면 떠다니는 환영과도 같은 같은 헬렌의 작품은  “이 그림은 꽃이다 “ 와 같은 명명백백한 답을 내려주지 않는다. 단지 “비기닝 (beginning)" 이란  제목으로  우리가 작품 앞에서 어떤 태도를 지녀야 할지 은근한 힌트만 던지고 있다. 만물이 깨어나는 봄 에 우리는 새해의 첫 계절을 맞이하며 핑크색 축제에  사로잡힌다.           


Mauve District, 261.5 x 241.2 cm , synthetic polymer paint on canvas 1966


Nepenthe,Color aquatint on paper_39.8 x 61.7 ,1972


봄이 주는 심상의 성질은 지적이기보다는 감정적이며 직선보다는 곡선에 가깝다. 캔버스 위의 유기체적인 감성은 봄의 낭만을 떠올리기에 무리가 없다.  봄이 되면 찾아오는 은근한 로맨스의 갈증 때문에 드러난 사실화 보다는 여지를 둔 신비로운 추상화에 끌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헬렌 프랑켄 텔러는 미국의 제 2세대 추상표현주의 여성화가로 캔버스에 물감을 드 리핑하는 얼룩 (Soak Stain)이란 추상미술 양식을 발전시켰다. 물과 투명성에 이끌렸던 그녀는 오일로 묽게 희석한 유채물감을 여러 가지 그릇을 써서 캔버스에 붓는 적시고 얼룩 내기 기법을 처음 사용했다. 물감이 캔버스에 닿는 몇 초의 순간 이루어지는 우연성들이 모여 이루어진 예상치 못한 물감의 스며듬이 이렇게 우리의 심리적 감흥을 일으킨다



2. 윌렘 드 쿠닝

    Willem de Kooning




Untitled I, 1977  oil on canvas, 76 1/2 x 87 1/2 inches


얼핏 아름다운 봄빛 색채의 향연처럼 보이는 이 작품을 보고 있자면 통쾌하다. 사실 미국 추상미술가 윌렘 드 쿠닝은 단 세 점의 그림에서 보이는 것처럼 섬세한 감성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는 오히려 거친 마티에르 , 격렬한 붓질로 내제 하는 충동을 표현하던 작가였다.     




삼 년 전 봄 어느 주말 오전 , 나는 서울의 어느 큰 미술관  상설전에서 현대미술의 거장들의 다양한 화풍이 모인 미술관 내부를 거닐고 있었다. 모든 작품들은 자신의 미학적 의무를 의식하듯 아주 잘 구획되어 있었고 각자의 에너지는 적당하여 미술관 안의 모든 사람들 에게서  무언의 만족을 느낄 수 있었다. 질투 날 만큼 따스한 날이었고 나는 당시 막 고향을 떠나 새로운 도시에서 시작했던 일에 적응해나가던 중이었다. 창밖은 온통 봄꽃이 만개했지만 나는  각종 생각과 사고의 충돌과 긴장감이 온갖 신경을 지배당하고 있었다. 어쩐지 내면은 나를 둘러싼 모든 환경과 정 반대였다. 그래서인지 평소 열광하던 작가의 작품을 보아도 그림 앞에서 머무는 시간은 이 초 정도였다.


 그때 , 내 눈앞에서  폭발적이고 자유로운 거친 필촉에서 뿜어져 나오는  격정적인 아우라로 나의 심정을 뒤흔들고 있었던 한 작품이 있었다.



Rosy-Fingered Dawn at Louse Point, 1963


작품은 드 쿠닝의 황금기였던 50년대 이후 만들어진 작품으로 분홍 노랑 등 화사한 색감을 바탕으로 물감이 짓이겨진 채 채색되어있다. 그런 화사한 색감과는 완벽하게 상반되는 격렬함과 폭력스러운 붓질은 당시 나의 정신적 상태와 완벽하게 융합되었던 것이다.





3, 김환기

    Kim Hwan-Ki


 봄의 소리 ,  코튼에 유채 178 x 127 . 1965-1966 / 6억 천만원 낙찰


 헬렌 프랑켄 텔러 의가 여성적이고 섬세한 봄을 이야기했다면 김환기는 동양적이고 남성적인 색채로 봄을 노래한다. “봄의 소리"는 그가 뉴욕에서 활동하던 시기에 고국의 밤을 그리며 제작된 것인데 각색의 별들이 하모니를 이루며 경쾌하면서도 침착하고 부드럽게 연주되고 있다. 마치 봄에 사랑에 빠진 사람의 심장 맥박처럼 그 흥분 , 설렘에 한껏 들뜨다가도 이내 봄의 소리처럼 고요히 제 박자로 돌아간다.  각각의 색채 상호작용은 너무 섬세해서 음악적이기까지 하다. 우리는 그림을 보는 것이 아니라 듣고 있는 것이다. 음악은 우리의 기억을 가슴 아플 만큼 극명하게 환기해내는 효용성이 있기에 더 가슴에 남는다.



무제_코튼에 유채_213×153cm_1971 . 출처 네오룩


최근 미술시장에 불었던  단색 화풍의 주역이자 한국의 피카소로 불리는 김환기는 우리나라 추상미술의 1세대로 지금까지도 한국 현대미술 사상 최고가를 갱신하고 있는 한국 추상미술의 거장이다. 그는 자연의 일부로 살아가려는 우리 동양의 정서를 캔버스에 함축적으로 나타내는데 달 , 항아리 꽃과 같은 자연 형상으로 멋을 발산하던 초기 작품은  그의 예술세계의 절정기라고 일컬어지는 뉴욕 시기(1964-1974)에 돌연 바뀌어 버린 삭면 추상화에서는 대상을 재현하기보다는 은유적으로 이루어진 자연의 리듬을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있다.



4, 베네딕트 블랑 폰 테일 Benedicte Blanc-fontenille


In The Cave _ Oxidized bronze powder , ashes, acrylic on canvas . 61x122cm.2013
Underwater
Floating art series


베네딕트 블랑은 마이애미에서 거주하며 작업하고 있는 프랑스의 중견 여성 작가이다. 나는 그녀의 작품을 직접 2013년 이래로 한국에 작품을 들여와 전시했고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있으며 지금은 10점 남짓한 작품이 남아 있다.  그녀는 부러지기 쉬운, 허무한  삶의 모습의 투영으로부터 받은 영감을 부드럽고 몽환적인 색채로 담아낸다.


 우리는 계절과 인사와 작별인사를 고하며 또다시 다가오는 계절과의 포옹을 준비한다. 봄 여름 가을 그리고 또다시 봄 이 왔다. 지난겨울 내내 축척되었다가 이루어진 봄의 태동은 그녀가 캔버스에 물감 대신 쓴 광물이라는 재료를 통해 늘 다시 찾아오는 봄처럼 인생의 순환을 이야기하는 듯했다.


벚꽃의 만개는 절정을 이루는 동시에 떨어질 준비를 시작한다. 폭발할 듯한 아름다움을 뽐내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모습을 달리 한다.  우리 모두는 결코 영구적 일수 없지만 끊임없는 유동과 변화 , 그리고 생성의 상태에 있다는 것을  벤의 작품에서 보이는 광물의 움직임들이 말해준다.  그녀의 작품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현재의 순간의 덧없음을 이 느껴진다. 곧 이 봄도 지나가겠지.


5, Chua Chye Teck


지금까지 내가 소개했던 위의 작품들에는 추상표현주의의 맥락을 기반으로 한다. 그 속에는 폭발적인 복잡함, 서정적인 아름다움처럼 예측할 수 없고 규정할 수도 없는 갖가지의 형용사가 만무했다. 캔버스 안에서의 색채들은 상호작용했고 그들은 동시에 리듬을 맞추었다.


지금 소개할 작품은 앞의 작품에서 보였던 모든 붓터치나 얼룩 , 색감의 화려함이나 자유로움이 사라진다.



Chua Chye Teck _April 2008 Tokyo 2009 Color prints 37.3x36.5 cm

작년 봄 싱가포르 현대 미술관에서 기획한 아시아 전역 작가들의 재료적 탐구를 한자리에 조망하는   “Medium AT LARGE" 전시에서 접한 작품이다. 그저 단순 색상의 나열로만 구성된 이렇게 단순한 작품 앞을 쉽게 떠날 수 없었던 이유는 작품의 제목을 보고 난 후였다.



 April 2008 , Tokyo

모든 의문이 해소되는 아주 함축적인 제목 이였다. 도쿄의 봄의 색을 모아 몇 가지 색의 톤으로 분류한 , 극단적으로 단순화된 봄의 색의  파편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이것이야말로 누군가의 시각에 비친 또 다른 봄의 모습이다. 봄이란 언제나 그렇게 꽃으로 장식된 화려함  만이 존재하는 계절이 아니다.          







추상적인 색채의 이미지에 이런 감정적 동요가 되는 이유중 하나는 우리의 감정이 가진 모양도 이처럼 모호하고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림을 통해 자신을 대입시키면서 형태로서의 존재가 불가한 감정의 실체를 찾으려고 한다.


내가 소개한 작품 속에서는 봄을 상징하는 꽃 모양이나 재현적인 자연은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헬렌 프랑켄 텔러 는 봄의 색채를 은유적으로 전해주었고 드 쿠닝은 봄과 상반된 나의 거친 내면을 , 김환기는 점,선,면 만으로 봄의 소리를 들려주었다. 베네딕트 블랑은 일시적인 화려함을 뒤로하고 끊임없이 순환할 봄. 없어질 봄과 다가 올봄에 관하여 허무함을 상기시켜 주었으며 마지막 Chua Chye Teck 은 봄의 극단적 환원주의를 보여줌으로써 나를 충격에 빠트렸다.


교과서 적인 표현들로 가득 찬 세상은 너무 현실적이기만 하다. 봄에는 꼭 벚꽃을 보아야 한다는 스스로에 대한 강요도 무의미하다. 우리의 시선은 온통 외부와 그에 대한 의식으로 향해있다. 하지만 진정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세상이 말하는 이야기에 모두 귀 기울이기보다는 스스로를 응시할 줄 알아야 한다.


감각과 본능을 토대로 한 작가의 작품세계는 우리를 예측 가능한 장소 대신  모호한 관념의 세계로 데려다주는 역할을 한다. 그림을 통해 경험하는 우리 안의 깊고 특별한 어떤 장소 에 당신이 찾던 것이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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