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순간 이별 하는 기분을 안고서 .
비탈길을 굴러내려가기 시작한 차바퀴처럼 , 시작했다 하면 한 시를 멈출 수가 없는 것이 있다. 세상 무슨 일이던 안 그렇겠냐만은 특히 내 전시일이 그렇다. (혹자에겐 사랑일지도) 전시 날짜와 콘셉트가 정해지고 참여할 작가들에게 전시에 대해 설명하는 순간 일이 끝이 나버릴 때 까지 내가 만들어 놓은 비탈길 위에서 바퀴가 멈출 때까지 스스로를 좀처럼 그만두게 할 수가 없이 숨가쁘다.
떠나보낸다는것
가끔은 비탈길이 짧을 때도 있다. 아트페어처럼 길어야 4일 정도인 전시를 할 때면 절대적이고 , 또 찬란하게 빛나다가도 덜 이야기된 채 사라져야 하는 이야기처럼 눈앞에서 순식간에 그림들이 벽에서 떨어져 나오는 광경을 지켜만 보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재개발 되는 자신의 오랜 기억이 깃든 집이 철거되는 광경을 지켜보는 이의 심정 또한 이와 같지 않을까.
나의 일에 있어서 지겨워질 만큼 오래 곁에 두고 볼 수 있는 경우는 그 그림을 직접 구입하여 집에 걸어놓거나
마음으로 품는 방법 뿐이다.
전시기간 동안 작가의 작품 세계와 그 세계들이 만들어내는 에너지 속에서 어울려 마치 영원할것 처럼 교유하다가 채 작별인사를 고하지도 못한 채 생이별을 하게 되는, 전시가 끝나고 모든 것이 철수되는 밤은 고통스럽다. 다음날 아침까지 (Mourning period after breaking up: 이별후 겪는 감정 )에 몸서리 친다.
얕은 해안의 썰물처럼 서서히 그 찬란했던 날들에 대한 미련을 옅게 지워가야 하기 때문이다.
사람과의 이별 역시나 이런 식이 듯
나는
스포트라이트 뒤의 고독
불같던 사랑 뒤의 이별
따위와 같은
느끼한 드라마틱한 상황에
익숙해져야만 하는 사람이 되고야 말았다.
이렇게 이야기가 흘러가다 보니 인생에서 나의 예술에 대한 사심 만큼 이나 애정 가득 한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꿈에서나 나올법한 초현실주의 그림의 한 장면일 뿐이다.
그렇다면 나는 대체 누구에게 이처럼 격정적이며 애틋한 중독의 감정을 품을수가 있단 말인가?
하지만 또다시 다가올 새로운 일에 집중해본다.
역시나 한순간임을 알면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