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라는 영어는 안 하고.....
우여곡절 끝에 교환학생 본 학기가 시작되었다.
그런데 호주의 학점제는 한국 대학과 아주 달라서, 한 학기에 보통 3-4과목 만을 수강하는데, 한 과목에서 배우는 양이 한국보다 월등히 많았다.
점수가 나오는 체계도 달라서, 한국은 보통 수강생의 2-30%는 A나 A+, 나머지는 B, C를 받았는데, (D나 F학점은 굉장히 드물었다...) 호주의 학점 체계는 독특했다.
HD - High Dictinction (시험 점수 평균 85점 이상)
D - Distinction (평균 70점 이상)
C - Credit (평균 60-70점)
P - Pass (평균 50점 이상)
F - Fail (평균 50점 이하)
HD가 한국의 A+에 해당하는 높은 점수고 F는 호주에서도 F다. 그런데, 호주는 대학도 모두 절대평가라 HD는 정말 한 과목을 들으면 반에서 2-3명만 받을 수 있었고 그마저도 교수가 시험을 어렵게 내면 아무도 못 받을 수도 있는 정말로 뛰어난 학생만 받을 수 있는 높은 점수였다.
시험 평균 85점 이상이 한국에선 그리 어렵게 느껴지지 않는 점수라면 호주에서는 시험 자체가 굉장히 어려워서 성취하기 쉽지 않은 점수였다. 반면 한국 대학의 A+은 받는 사람의 수도 많을뿐더러 상대평가라 내 성적이 상위 2-30%만 든다면 받을 수 있었다.
그렇다 보니, 먼저 교환학생을 다녀온 선배들이, 호주는 학점 받기가 너무 어려울뿐더러 열심히 해 봐야 겨우 Pass, 아니면 잘해봐야 Credit인데, 이는 유학생의 문제가 아니라 대학 구조 자체가 열심히 하지 않으면 졸업이 불가하게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한국처럼 적당히 해서 좋은 학점 받기란 하늘의 별 따기라고 했다.
선배들의 불만인즉슨, 전공 수업을 들어 열심히 해 호주 대학에서 Credit을 받으면 한국에서 수강하는 내 전공수업의 A+을 받기 위한 노력보다 10배는 더 들어가는데도 불구하고 한국에 돌아와서 학점이 변환되면 C+이 된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학점 체계가 상이한데도, 단순히 HD = A+, D=B+, C=C+ 이렇게 대응이 되어서 교환학생을 다녀오면 한 학기 이수한 총 학점수도 겨우 9학점이 되고, (보통 한국 대학은 한 학기에 20-23학점을 수강함), 평균 학점마저 C에 수렴하게 되어 여러모로 불리해진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교환학생으로 받아온 나쁜 학점은 나중에 재수강도 불가능하기 때문에 최악의 경우엔 답이 없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면서 선배들은 하나의 팁을 가르쳐줬는데, 전공 관련 수업을 원한다면 한두 개는 신청하되, 나머지 한 과목을 일본어나 중국어 같은 교양 강의로 신청하면 따라가기가 아주 수월하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선배들 중엔, 호주 학교에서 교양 선택 수업으로 한국어 기초수업을 수강해 HD를 받은 선배도 있었다.
나도 그 유혹에 넘어갈 뻔 했지만, 한국인이면서 한국어 기초 수업을 들어가기는 너무 창피해 차선으로 일본어 교양을 신청했다. 고등학교 때 제2외국어로 일본어를 2년이나 했어서, 조금 부끄럽지만 학점을 날로 먹겠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선배들이 절대 하지 말라고 경고한 개론 수업을 2개나 신청할 예정이었기 때문에 이거 한 과목이라도 편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교환학생 학기의 성적은 나락으로 떨어질 것 같아 겁이 났다.
결국 일본어를 제외한 2개는 언어학 개론 수업과 영어교육학 개론 수업을 신청했다.
하지만 나는, 선배들의 충고대로, 개론 수업을 신청하지 않았어야 한다. 나중에, 개론 수업을 두 개나 신청한 것을 정말, 정말, 정말, 뼈저리게 후회했다.
개론과는 달리 일본어 기초 수업은 정말 재미있었다.
히라가나부터 배우기 시작하는데 그건 거의 누워서 떡 먹기였고, 심지어, 일본어 선생님께 발음이 좋다고 매일 칭찬을 받았다. 호주의 언어 수업은 한국처럼 문법만 공부하는 게 아니라 그날 배운 문법과 그걸 이용해 말하기까지 연결했는데, 아무래도 영어만 쓰는 호주 친구들은 발음이 힘든지 많이 헤매었다.
아리가또 고자이마스!! 이렇게 발음해야 할 것을,
아~뤼~카토우~~~ 코우~ 챠이~ 마Sss~
이렇게 누가 봐도 나 영어 하던 사람이오~ 하는 느낌이 들게 발음을 하니 일본어 선생님은 코~챠~이마s~가 아니고 고쟈이마스! 스! 스! S ~ 아니고 스!!!! 라고 열심히 고쳐주시느라 바빴다.
중국 학생들도 나름의 고충이 있었는데, 특유의 얼~얼~ 발음이 일본어에서도 나타나 일본어를 하는 걸 들으면 저것이 일본어인지 중국어인지 헷갈렸다.
중간고사는 선생님과 1:1로 하는 말하기 시험이었는데, 정말로 식은 죽 먹기였다. 선생님은 나와 다미의 일본어를 매일같이 크게 칭찬해 주셨고, 우리는 부산 사투리가 일본어랑 많이 비슷한 덕에 부산 원어민의 혜택을 톡톡히 보고 있었다. 우리는 일본어반의 에이스 듀오가 되었다.
일본어 반의 호주 친구들은, 대부분 남자였는데, 대다수가 일본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일명 덕후들이었다. 이 덕후들은 처음에 우리가 일본어를 잘하고 발음도 좋자 일본 사람인 줄 알고 좋아하며 접근했다가 한국인임을 알고 빛의 속도로 흥미를 잃었다. 그들은 필통부터 가방까지 범상치 않은 걸 들고 다녔다. 프라모델이나 피규어를 수업시간에 들고 와 일본어 말하기 때 소개하기도 하는 등 수업 중 말하기 부분 내용의 대부분은 망가(만화)와 이에 관련된 내용이었다. 호주에도 이렇게 덕후가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사실 호주는 일본에 대한 호감이 굉장했기 때문에 내가 일하는 일식집에서도 우리가 일본 사람인 줄 알고 배운 일본어를 막 써먹어보려는 호주 사람들도 많이 만났다. 그때마다 일본어로 응대해주면 굉장히 좋아하며 얼굴이 빨개져서 언제 호주에 왔냐, 무얼 하냐, 고향은 어디냐 등등을 물어보곤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당당하게 일본어로 '부ㅡ산 슈신 데스 (부산 출신입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러면 부산이 어딘지 모른다며 미안해하며 가던 호주 사람도 있었고 부산은 한국 아니냐며 되묻던 사람도 있었다. 그럴 땐 당당하게 응, 나 한국인인데? 하면 대부분은 황당해했다.
사실 학점 잘 따려고 배웠던 일본어 수업인데, 그걸 영어로 배우니 너무 새로웠다. 우리나라말은 일본어와 체계나 조사가 너무 비슷해 별다른 어려움 없이 접근할 수 있었는데, 영어로 일본어를 배울 때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되었다. 조사 은, 는, 이, 가 이런 것도 영어에 아예 존재하질 않고 어미 ~했다, 했었다, 했을 것이다 등 어미가 바뀌어 시제를 나타내는 것도 영어로 설명하자니 완전히 새로운 내용이었다. 일본 사람들은 선생님을 이름으로 부르지 않고 왜 센세(teacher)라고 지칭하는지, 선배도 이름으로 부르지 않고 왜 선배라는 호칭을 쓰는지 그런 류의 문화적 차이에 대한 설명도 따라와야만 했다.
결국, 배울 건 없겠지만 학점만 잘 따자고 생각해 등록한 수업이었지만, 거기서 동, 서양의 언어가 어떻게 다른지, 영어권 화자들은 일본어를 배울 때 어떻게 접근하는지 체계적으로 알아갈 수 있었고 언어를 배운다는 것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생각을 갖게 해 준 좋은 수업이었다. 이 수업은 훗날 내가 호주와 카타르에서 한국어를 가르칠 때 정말 귀한 가이드가 되었다.
반면, 야심 차게 기대에 차서 등록한 언어학 개론과 영어 교육학 개론 수업은 선배들이 경고했던 대로 정말, 너무나, 지독하게 어려워 시험 2-3주 전에는 밤을 새우면서 공부를 해야만 했음에도 학점은 좋지 않았고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너무 커 뭘 배웠는지도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 속 빈 강정 같은 수업이 되었다. 얼마나 스트레스가 컸는지, 시험기간에, 영어 교육학 수업을 공부하던 다미는 엉엉 울며 내 방에 내려왔고, 우린 결국 같이 울면서 깡 와인을 드링킹했다.
나는 사실 남의 말을 잘 듣지 않는 타입이었다. 아 그래? 니들 경험은 그랬어? 근데 난 다를 거야~ 이런 생각을 많이 하고 그냥 내 멋대로 하는 걸 좋아했다. 20대 초반, 어린 나이였다. 어린 마음에서 나온 패기일 수도 있었다. 그런데 교환학생의 힘든 학기가 지나고 나서, 호주에서의 이런저런 시간을 겪으면서, 바뀐 게 하나 있다면 다른 사람 말을 경청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누군가 경험에서 우러나온 이야기를 해 주면, '나는 다를걸~ 난 아냐~ 사람마다 다르구, 내가 모르는 이야기니까 저건 사실이 아닐 수도 있지!'라고 생각하는 대신 '나도 그 대부분이 될 수도 있다, 아니, 그 대부분이라는 99%에 들어갈 확률이 훨씬 크다'라고 현실적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고, 그런 후에는 그 다음 일들에 대해서도 생각하고 가늠하고 예측해 볼 수 있게 되었다. 이는 정말 내게 큰 자산이 되었다.
정말, 호주는 여러 방면으로, 내게 새로운 세상을 많이 보여주었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