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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lly You Aug 08. 2019

사이비 2인조의 실체

베일을 벗다


아주 반가운 표정으로 날 보고 신나게 인사하는 구불머리 회장과 안 박사.


-와! 켈리씨! 여기서 다 만나네요!!

-네.. 하하 하하.... 안녕하세요...

-젤리 사러 왔나봐요 저도 젤리 좋아하는데!

-네 저도요.. 하..하...


반갑게 안 박사가 인사를 건네 어색하게 대답을 했다.

슬슬 자리를 피하려는데, 갑자기 구불머리 회장이 대뜸 말했다.


-아니, 우리 커피나 한잔 하러 가죠!!

-네?? 지금요???

-뭐 바쁜 일 없죠??

-네. 아..그게..저 수업 시작해야해서 빨리 가야해요. 다음에 뵈어요!!


구불머리 회장은 고등학생들이나 찰 법한 커다란 검정색 전자손목시계를 흘깃 보더니,


-지금 한시 이십분인데??? 수업은 두시 시작일거고. 시간 많네 뭘!! 갑시다!!!


라고 하면서 당장에라도 안 가면 안될 것 같은 분위기를 만들었다. 순간 또 기분이 나빠져서, 딱 잘라 거절해야겠다 싶었다.


-저 강의실도 멀고 자리도 미리 잡아야해서요. 다음에 뵐게요.

-아니 무슨 자리를 40분이나 일찍 간대요? 그렇게 일찍 안 가도 될텐데!

-아니에요. 강의실이 여기서 아주 멀어서 지금 가야해서요. 죄송합니다.


그러자 굉장히 아쉬운 표정을 하면서 다음에 꼭 보자며 자리를 뜨는 구불 회장과 안 박사.


정말, 정말, 100% 확신으로, 이상한 사람들임이 분명했다.




집으로 돌아간 후 희영 언니한테도 저 사람들 이상한 것 같다니까 언니마저도 그런 것 같다며 동의했다. 솔직히 언니가 이상하다면 이상한거였다. 언니는 웬만해서는 사람들보고 이상하다고 하지 않는 쿨한 사람이었기에. 


그 후로도 학교 롤리샵 주변, 카페테리아 할 것 없이 여기저기에서 그 둘이 자주 돌아다니는 걸 목격했는데, 구불 회장은 빼빼마른 체구에 키도 머리도 커서 어디서든 한눈에 들어와 덕분에 잘 피해다닐 수 있었다. 박사 학생들이 공부도 않고 2인조로 계속 돌아다니는 것 보면.. 진짜 포교를 하러 다니는게 분명해 보였다.


그렇게 시간은 지나고, 그 둘을 피해다니면서 학교와 새로운 생활에 적응하고 있었다. 교환학생이 연습이었다면 이건 실전이었다. 강의 수준은 교환학생 때의 몇 배로 어려웠고, 매번 예습, 복습을 하지 않으면 따라가기가 버거운 수업이 계속되었다. 이렇게 수업 따라가기조차 벅차서야, 무슨 박사 학위까지 하겠다는 건지.. 그리고 커리큘럼은 또 왜이렇게 복잡한지. 연구 과목으로 25%를 듣고 논문 과정을 따로 또 해야 박사 진학이 가능하다는데 그게 무슨 말인지 이해가 힘들었다.


스스로의 결심과 능력치에 계속 의문이 들 무렵이었다. 갑자기 모르는 번호로 문자 한 통이 왔다.


'Hi, this is Jaehee. So sorry I could not have any chance to talk to you on the Korean researcher gathering day. If you and heeyoung are free on this Wednesday, could we have coffee together?'


재희라는 사람이 한인 연구자 모임때 나랑 희영언니랑 이야기하고 싶었는데 그럴 기회가 없었다고 한번 만나서 커피 한잔 하자는 내용의 문자였다. 그런데 재희가 누구더라? 모르는 이름인데.. 


그때 머릿속에 뭔가가 떠올랐다. 그 연구자 모임 하던 날, 언어학 하는 박사 선배 언니가 있었는데.... 말할 기회가 없어서 헤어질 무렵 급히 따로 연락 하겠다고 말씀하셨는데 그 분이 드디어 연락을 주신 거였다. 안 그래도 수업 따라가기도 힘들고 공부에 대해 고민도 많은데 너무 좋은 기회인 것 같아서 얼른 답장을 보냈다. 희영 언니는 바빠서 올 수가 없었다.


학교 내의 커피숍에서 언제 몇 시에 만나자는 약속을 하고는, 그 날이 되자, 설레는 맘을 안고 학교 커피숍으로 나갔다.


커피숍에서 그때 봤던 단발머리 언니를 열심히 찾고 있는데, 갑자기 수풀 뒤에서 구불머리 회장과 안 박사가 나타났다.


'뭐야 저 사람들!!!! 캠퍼스가 이렇게 큰데 왜 어딜가나 있는거야!!!! 세상에나...' 


속으로 기겁을 하며 카페에서 딱 만나 이젠 피할 수도 없다는 생각을 하던 차에 구불머리 회장이 손을 내밀며 나보고 반갑게 인사를 했다.


-아이고~ 어렵게 모시네요. 드디어 시간을 내 주시다니... 김재희입니다.


이게 무슨 일이지? 너무 당황스러운 나머지 뇌가 정지하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뇌는 정지한 게 아니라, 주변의 모든 시각적, 청각적 자극을 거부한 채 잠시 일시정지한 후 빠르게 이 일의 실체를 밝혀낸 거였다.


나는 문자 메세지의 Jaehee를 보고 그게 여자 이름이라 생각했고, 언어학 하는 박사 선배인 줄 알고 상상의 나래를 펼쳤건만, 김재희라는 사람은 구불머리 회장이었던 것이다. 문득 첫날에 페이스북으로 받은 메세지에서 '김재희 회장'이란 단어를 본 기억이 떠올랐다. 


그런데 왜 몰랐지? 왜 눈치를 채지 못했을까? 왜 그 문자를 보고 너무 당연히 여자라고 생각했지??


보통 문자를 보면 어투나 이모티콘 사용 등에서 남자인지 여자인지 거의 구분이 가능한데, 구불 회장이 영어로 문자를 보내버렸기 때문에 이름 하나에만 의존해서 이리 저리 유추하다 보니 이런 일이 벌어진 것 같았다. 


당황스럽기 짝이 없었지만 차마 다른 사람인 줄 알고 왔다는 말은 하지 못하고 굉장히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아..안..녕하세요.


하고 어쩔 수 없이 인사를 했다.






자리에 앉자, 구불 회장은 뭘 마시고 싶냐고 물어보더니 카페로 들어가서 내 커피, 안 박사의 커피, 그리고 각종 초콜릿과 젤리까지 한아름 사 들고 왔다. 


'센스 있는데?'


커피만 사 주는게 아니고 초콜릿도 잔뜩 사 왔는데, 그 중에서 민트맛 초콜릿도 있었다. 나는 민트맛 초콜릿을 정말 정말 좋아하는데도 그건 대중적인 취향이 아니라 누구한테 받아 본 적은 없는데, 구불 회장이 민트맛 초콜릿도 테이블에 올려놓는 걸 보자 갑자기 사람이 다르게 보였다.


'이상한 사람이 아니었구나... 완전 센스있잖아?'


구불머리 회장은 안 박사에게 내 이야기를 들었다면서, 들은 후 재미있는 사람 같아서 꼭 만나고 싶었다고 했다. 문자를 왜 영어로 보냈냐고 하자, 한글 자판이 갑자기 고장나서라는 단순하기 짝이 없는 이유를 댔다. 그리고 내가 민트맛 초콜릿에 감탄하자, 그게 민트에요? 몰랐네. 아무거나 집어왔어요 라고 더 단순하기 짝이 없는 이유를 댔다.


단순무식한 스타일인 것 같았다.


여튼 며칠 전 한인 연구자 모임에서 나랑 희영언니 둘만 뉴 페이스여서 회장으로써 우리를 더 챙겼어야 했는데, 오랜만에 만난 다른 친구들이랑 어찌 이야기를 하다 보니까 우리랑은 말도 못 하게 되었는데다가 또 우리가 재미 없는 티를 내며 사라져서 너무 미안해서 꼭 만나서 커피라도 대접하고 싶었다고 했다. 다들 아는 사이인데 우리만 처음 와서 그렇게 보낸게 죄송했다며.


자초지종을 듣고 나서 나는 조심스럽게 교회에 나오라고 하실 까봐 피했다고 고백하니, 그 둘은 그건 농담이었다고 진짜 믿으셨던 거냐고 배꼽을 잡고 웃기 시작했다. 알고 보니 구불머리 회장은 장로도 뭣도 아니고, 그 둘은 대부분의 유학생이 그렇듯, 나가는 둥 마는 둥 하는 작은 한인 교회를 다니고 있었던 거였다. 


둘이 사이비 종교도 아니고 전도를 하려는 사람들도 아닌 게 밝혀지자 오해하며 대놓고 피해 다녔던 일이 미안해지기 시작했다.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구불머리 회장과 안 박사는 아는 것도 많고 입담도 좋아서 재미있었다. 정치부터 종교, 책, 방송, 관심사, 가치관까지도 전부 너무나도 비슷해 앉은 자리에서 엄청 재미있게 이야기를 했다. 그 분들도 내가 재밌다며 자주 만나서 이야기하자고 서로 신나서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헤어질 무렵 나이 이야기 가족 이야기 등등이 나와서 나이를 물어보는데, 결혼 했고 몇 살이다 등을 그냥 이야기해주는 안박사랑은 달리 구불 회장은 장난스런 표정을 지으면서 자기가 몇 살로 보이냐고 물어봤다.


솔직히 30대 후반으로 보였지만 바로 맞추면 기분나빠 할 수도 있으니 생각한 나이에서 5살 정도를 뺀 나이를 이야기 해 줬는데, 구불 회장은 갑자기 실망한 표정을 지으며


-어....어쩜 바로 맞췄네... 보통 나 30대 초반으로 보는데.?


라고 해서 더 충격을 받았다.


죄송한데 그것도 줄여서 이야기 드린건데..쩝. 여튼 사람이 좀 도끼병이 있는지 단순한건지 모르겠지만 여튼 평범과는 거리가 먼 듯 했다.


모든 오해가 풀리고 다음에 또 뵙시다 하고 헤어지는데 안 박사가 다음번엔 아내도 내 또래라며, 다같이 함께 만나자고 해서 그러면 더 재밌겠다 하는 생각을 하고 헤어졌다.


뭔가 학교 생활이 더 재미나게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희영언니한테 이 분들 사이비 종교 아니었다고 얼른 가서 말해 줘야지!! 즐거운 마음으로 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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