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elly You Aug 12. 2020

Shall we..?

나비효과의 시작


너무 오래되어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구불 회장의 메세지는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페이스북에 잘 들어오지도 않고 정말 바쁜가보네. 오랜만에 한국 간다며, 가족들 친구들 만난다고 좋아하더니 즐거운 시간 보냈으면 좋겠다. 근데 메세지는 너무 안 보는거 아니여?


-오늘도 진짜 바쁜가봐. 어디 가서 누구 만났는데 켈리가 없으니까 허전하고 이상하다. 매일 이야기하다가 한국 가버리니까 넘 허전하네. 


-저녁 되면 너랑 메신저로 이런 저런 이야기 하면서 하루를 마무리하는게 참 좋았는데.. 이렇게 갑자기 없어지는게 어딨나. 나는 할 말이 많은데... 보고싶다. 이거 확인하게 되면 연락 줘. 기다릴게.



내가 한국에 와서 유심카드를 다시 끼우게 되어 구불 회장의 카톡에서도 사라지고, 페이스북 연락도 되지 않자 구불 회장은 많이 기다렸던 것 같았다.


메세지를 두번, 세번, 다시 읽고는 생각에 잠겼다.


분명히 그는 날 좋아한다고 전하는 것 같았다. 직접적으로 너가 좋아, 라고 한 건 아니지만 그의 문장들은 일관된 의미를 담고 있었다. 


가만 앉아 생각해보니 구불회장의 연락이 없어서 조금 서운했던것도 맞고, 그와 이야기하면 늘 즐겁고 재밌었던 것도 맞았다. 문제는 나였다. 한번도 그가 날 특별하게 생각한다거나 이성으로 보고 있단 느낌을 받은 적이 없었다. 그의 주변에는 늘 사람들이 가득했고 그는 항상 누군가를 만나서 이야기하고 차 마시고 술 마시는 걸 즐기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내가 그렇게 생각할 여지조차 없었고, 그럴 이유도 없었다.


내가 그와의 대화를 즐겼듯, 다른 사람들도 똑같이 저녁마다 그와 페이스북에서 만나서 이야기했을거라고 여겼다.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아닌 거라면 빨리 아니라고 이야기해야 어색하지 않게 정리 될 것 같았다. 급작스럽게 알게 된 그의 진심에 놀라 모든 메세지를 읽고 서둘러 메신저를 닫으려고 하는 그 순간, 구불머리 회장이 상태가 온라인으로 바뀜과 동시에 '진짜 오랜만이네' 하는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나가기엔 이미 늦은 듯 했다.


-네, 요즘 갑자기 투잡 하느라 너무너무 바빴어요. 이제 막 확인하던 차였어요.


라고 대답하자 내 걱정과는 달리 구불 회장은 어쩐지 너무 연락이 안 되더라며 다시 시시껄렁한 일상이야기를 시작했다. 내가 우려했던 그런 류의 이야기는 나오지 않은 채 이야기가 끝났다.


컴퓨터를 끄고 자리에 누웠는데, 문득 이상해서 다시 메세지함을 살펴보았다. 


보고싶다, 라는 말은 아무나한테 하는 말인가?

누가 없어서 허전하다, 라는 말도 아무나한테 그냥 할 수 있는 말인가?


영어로는 miss you, 인데, 외국 친구들과는 정말 정말 자주 쓰는 말이었다. 먼저 자기 나라로 돌아간 친구에게 we miss you so much, I really miss you.. 하루에도 몇 번씩 하던 그 말.


허전하다, 는 영어로 뭘까? empty..? 


구불머리 회장은 너무 호주에 오래 살아서, 보통 한국인의 정서와는 좀 멀어져서 그냥 내가 오해를 하는 것 뿐일까. 


혼란스러운 느낌이 가시질 않아서 다시 한번 페이스북 메신저를 꼼꼼히 살펴보았다. 

나 혼자 하는 착각인지 아닌지 알고 싶었다.


오늘 했던 대화부터 다시 한번 훑어보고 있는데, 문득 눈에 들어오는 게 있었다.


구불 회장은 내가 뭘 하는지, 너무 힘든진 않은지, 하루를 어떻게 보내는지 계속 내 이야기만 물어보고 있었다. 별 생각 없이 대화를 했다고 생각했는데, 구불 회장은 자신의 이야기는 하나도 하지 않은 채 내가 어떤 학원에 나가는지, 몇 학년 아이들을 가르치는지, 학원 가는 길은 멀지는 않은지, 엄마 일 도와주는 건 힘든진 않은지, 그게 어떤 일인지.... 


그는 온통 내 안부와 내 이야기만 물어보고 있었다.


누군가를 좋아하면 그 사람의 하루 일과가 궁금해지는 법이다. 그 사람이 뭘 먹었는지, 누굴 만났는지, 오늘은 어떤 기분이 들었는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구불머리 회장은 내 하루가, 내 나날들이 너무나도 궁금한 것 같았다.


더 지난 메세지들을 볼 필요도 없었다. 이 사람은 나를 좋아하는게 분명하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러면 내 마음은 어떤가?


그런데 그게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호주에서 만날 때 마다 딱히 그런 생각을 해 본적이 없었기 때문에 이제 와서 눈앞에 없는 사람을 내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밝혀내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그렇다면 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다시 호주에 가서 보고 결정하면 될 일 아닌가.


그렇게 한국에서의 바쁜 몇 주간을 잘 살아내고 다시 브리즈번으로 향했다.

그동안 구불 회장과는 계속 연락을 주고 받았다. 그저 그런 일상의 내용들.


그리고 언제 도착한다고 말 하면 혹시라도 공항에 온다는 둥 어색한 일을 벌일까봐 도착 날짜는 알려주지 않은 채 비행기에 올랐다. 



매거진의 이전글 한국에서의 짧은 방학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