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0월 기준 15세 이상 전체인구의 실업률은 2.8%이고 20대 5.7%, 30대 3.0%로 평균 실업률을 크게 상회하고 있다. 또한 40대, 50대가 2.1%, 60세 이상이 2.0%로 경제활동인구 및 취업자의 노령화가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이는 전후 베이비부머세대의 인구 수가 전 연령층에 걸쳐 가장 많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30여년간의 산업성장기를 거쳐오는 동안 ‘한 자리 또는 한 직종’에서 청춘을 불사른 노고의 결과로 여겨진다.
세월은 정직하여 20대 청년이었던 그들이 어느덧 50대가 되어 이제는 은퇴를 이미 하였거나, 다행히 일자리를 보전하고 있다 하더라도 법적 정년 60세 보장은 언감생심(焉敢生心) 하늘의 별따기 또는 사법고시 합격 정도로 여겨질 정도로 힘든 시대가 되었다.
1. 직업에 대한 정의
※ 직업
직업(職業)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자신의 적성과 능력에 따라 일정한 기간 동안 계속하여 종사하는 일을 말한다. 누군가의 도움 없이 먹고 살려면 누구든 직업을 가져야 한다.
(출처 : 나무위키)
대부분의 베이비부머, 현재의 50대가 그렇듯이 그들의 10대는 너무 가난했다. 1970년 국내 1인당 GDP 254달러, 세계순위 100위였고 심지어 북한보다 소득이 작았다. (북한 384달러, 세계 82위)
2020년 1인당 GDP는 3만1755달러, 세계 10위로 자리를 잡았으니 얼마나 가난을 벗어나려고 발버둥치고 열심히 일을 했는지는 50대면 누구나 다 산 증인일 것이다.
“월, 화 , 수, 목 , 금, 금 , 금” 그들은 주말이 없었던 20대를 살면서도 불평, 불만 한마디 없이 직업에 감사하며 생계를 유지하고 가난을 벗어나고, 가끔 ‘개천에서 용나기’도 하고 오늘의 대한민국의 성장을 견인한 중추적인 세대라는 자부심을 갖고 살아왔다.
직업은 경제활동을 영위하는 모든 이들의 타이틀이며, 필수조건이며 ‘자신’을 자원으로 투입한 결과 ‘재화’를 획득하는 수단이다. 그런데 직업을 영위한 결과가 오로지 재화의 획득에만 그친다면 인간의 기본적 욕구 중 가장 기초인 ‘생리적 욕구’의 해결솔루션으로만 비칠 수 있으니 (여기서는 먹고 사는 욕구) 직업의 결과물에 대한 스펙트럼을 넓혀 볼 필요가 있다.
직업은 워낙 다양하여 1969년 최초로 발간된 직업사전에는 당시 직업의 개수가 약 3,260개에 불과하였으나 2018년 기준으로 약 12,145개로 집계가 되었고 최근 IT신기술의 발전과 코로나 팬더믹으로 인한 온오프라인 경제환경 및 생활환경의 변화에 따라 더 많은 직업이 탄생하였다고 이해할 수 있다. 몇 년 전부터 직업에 대한 전통적 패러다임이 흔들리고 깨지면서 직업에 대한 가치관의 변화 및 직업의 형태, 직업의 명칭과 직업을 통해 창출하거나 제공하는 결과물들이 가속적으로 변화 또는 파생하고 있다.
유튜버는 2005년 세상에 선보인 동영상커뮤니티였으며, 2006년 구글이 인수한 이후 경제활동과는 무관한 온라인 동영상 포털로 수십억의 시청자가 모인 이후 자연스럽게 사람 사는 세상에는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직업적 관점에서 ‘돈이 되는 플랫폼’ 으로 변모하였고 ‘관심 = 경제 = 돈’ 으로 귀결되는 ‘관심거리 동영상 제공자 = 유튜버’ 가 어엿한 직업으로 자리잡은 것은 상식에 속한다. 이처럼 직업은 고정된 틀이 아니라 무한변신과 창조가 가능한 재료가 된 것이다.
현재 나의 직업, 과거에 거쳐 온 직업이 무엇인지? 미래에 희망하는 직업은 무엇인지 생각을 정리해 보고 다음으로 넘어가 보자.
2. ‘일’을 하는 이유
필자는 32년간 일을 했고 지금도 일을 하고 있다.
최소한 76,800시간 (공휴일 제외 1년 300일 * 8시간 * 32년)이상을 일을 했다. 야근과 주말근무까지 합하면 100,000시간 이상을 일을 한 것이고, 퇴근 후에도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머릿 속에는 온통 일과 관련된 생각과 심지어 밤늦게 고객과 통화하면서 업무를 추진하고 있으니 과장되게 말하자면 16만시간이상 (1일 7시간 수면 17시간 일 * 300일 * 32년)을 일했다고 할 수 있다.
대기업 과장시절 스스로 ‘워커홀릭(일 중독자)’ 이라고 선언했고 어떤 해는 주말과 공휴일을 단 하루도 쉬지 않고 1년을 일했던 적도 있었다. 과거에 이렇게 혹독하게 많이 일하는 것이 흔했고 대부분 이렇게 일했다.
그런데 일의 의미와 가치가 ‘투입시간’으로 평가받을 수 있을까? 모든 직업인은 일을 해왔고 지금도 하고 있지만 일에 대한 본질 또는 이유에 대한 정의도 없이 ‘그저 일하는 것’ 그 자체에 매달려 있는 오류에 빠져들기 쉽다. 직업인 특히 남성들에게 일은 성과를 내야하고 그러려면 더 많은 일을 해야하고, 일의 결과로 인해 승진을 하고 더 나은 직장으로 이동하고 결론적으로 명예 더하기와 더많은 연봉을 추구하여 일을 해왔다.
1997년 IMF 외환위기
2009년 서브프라임모기지로 촉발된 세계금융위기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위기
지난 20여년간 3번의 경제위기에 노출되면서 그저 열심히 일만 하던 대부분의 직업인들은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거나 조기해고를 당하거나 직장에 붙어 있어도 눈에 가시처럼 눈총을 받으면서 ‘인내와 인고’의 시기를 버텨내야했다.
외환위기 때 TV광고 중에 친구 둘이 술 한잔 걸친 후 돌아가는 친구의 등을 두드려주던 장면에서 그의 뒷모습, 그의 쳐진듯한 어깨가 우리 = 나를 닮은 듯 마음을 짠하게 했던 기억이 있다.
50대는 그래도 타 세대에 비해 일이 있어서 나은 편이었다. 신세대였던 40대는 경제위기의 직격탄을 맞아 창업의 주체가 되었고, 30대는 부모의 파산을 지켜보며 좁아진 취업경쟁에 시달렸고, 현재의 20대는 개인주의와 비대면 소통시대가 열리면서 더욱 줄어든 취업과 고용한계 시장 안에서 이 일 저 일 파트타이머로 일하며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숨막히는 시절을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상만 보면 생계수단으로서의 일과 일자리의 중요성이 부각이 되지만 막상 원하던 일자리 또는 어떤 일이든 하겠다고 하던 차에 막상 일을 하고 재화를 벌게 되면 다음의 질문이 꼬리를 물게 된다.
“평생 이 일만 하다 죽겠구나!”
“일이 재미가 없는데 다른 일을 할 수 없을까?”
“일을 통해 돈 버는 것 외에 무엇을 성취하고 있는 걸까?”
일을 통해 돈을 벌고 최소한의 안정이 찾아오면 소속에 대한 자부심(사회적 욕구)와 존중받고 싶은 욕구로 심리적 동기의 상향조정이 일어나면서 궁극적으로 ‘나 자신’의 존재의 이유 ‘자아실현’의 욕구로 발전하게 됨은 자연스럽다. (매슬로우 욕구 5단계모델, 1954년 발표)
결국 일이란 표면적으로는 재화를 대가로 직업인이 투입하는 자원의 활동이라면, 내면적으로는 조직과 사회 더 나아가 세계의 관점에서 ‘의미있고 가치있는 무언가’를 남기고 싶어하는 인간욕구의 상위목표에 도달하게 하는 수단이라고 정의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많은 신입사원들이 “맡겨만 주시면 열심히 일해서 최선의 성과를 이루겠습니다!” 라고 호언장담하면서 취업에 성공하지만 입사 10일차에 그만두고 다른 일자리를 찾아 나서는 케이스를 보는 일이 흔한 이유이다.
따라서 일은 ①내가 좋아하는 것이어야 하고 ②내가 그 일을 할 수 있는 역량이 있어야 하고 ③내가 그 일을 통해 존중받고, 성장할 수 있어야 ‘적합한 일’ 이라고 하겠다.
3. All In 과 Multi In 의 특징
두 명의 대학친구가 있다.
한 명은 4년간 같은 학과에서 공부했고, 열심히 공부하는 시간에 비해서 학점은 그다지 높게 나오지는 않으나 중상위권은 유지하던 성실한 친구였다. 그는 한 우물 파기의 달인이었으며 다방면에 취미나 욕심이 없었기에 우직하게 일상을 보내던 친구였다. 그는 제대 후 K자동차회사로 입사를 했고 차량출고업무, 영업, 관리업무 등을 거치며 아직도 정년을 2년 앞두고 현직에 있다.
또 한명은 다른 학과 ROTC 동기로 후보생 시절 두드러진 인물이 아니었고 간부활동도 하지 않아서 아무도 주목하지 않던 평범한 대학생이었다. 그는 장교 임관 후 정훈장교로 배치를 받았고 장기복무를 신청하여 몇 년 전에는 공수부대장을 거쳐 기무사령관이 되더니 작년에는 육군 참모총장이 되었다. 아직 그는 군에서 신뢰와 존경을 받고 잘 나가고 있다.
한 명의 첫 회사 입사동기가 있다.
그와 필자는 입사 후 신입사원 교육시절부터 서로를 한 눈에 호감하였고 교육 후 부서배치가 지방과 서울로 나뉘어져서 자주 볼 수 없었지만 일년에 두 번 정도 단합대회 및 집체교육에서 서로를 반갑게 맞이하며 응원하며 지냈다. 필자는 3년이 채 안되어 더 큰 대기업으로 이직을 했고 이후 여러 번 직장을 옮기며 32년을 보내고 있다. 그는 작년 초까지 첫 회사 영업부장으로 재직하다가 31년 만에 명예퇴직을 했다.
그는 필자를 만나면 항상 부러워했다. 그의 눈에 필자는 규모가 크거나 전문영역의 회사로 여러 번 이직하는 모습이 신기하면서도 필자의 역량이 대단하고 다양한 조직문화와 업무를 경험하는 것에 대한 부러움이 있다고 했다.
필자는 그에게 종종 이렇게 말했다.
“너는 00회사 박물관에 전시해야겠다. 어떻게 한 직장에 뼈를 묻고 있을 수 있는 거니? 대단하다!”
위 세 케이스는 모두 일자리(=일)에 대한 All In 케이스이다.
그 특징은 다음과 같다
①평생 한 직장에서 일한다.
②안 잘린다. 자르기 전에 명퇴 신청을 하더라도...
③몸담은 분야에는 최고 전문가다.
④다만, 예기치 않은 변화(실직, 기업파산 등)에 취약하다.
⑤임원이 되지 못하면 수치심은 참고 살아야한다.
또 한명의 친구가 있다.
그는 주택회사 홍보팀 사원으로 일을 시작했다. 팀장이 된 이후 홍보회사를 차려서 독립했다. 재벌2세가 아니었으므로 당연히 ‘1인 기업’을 차린 거다. 한동안 대기업 몇 곳의 일을 하면서 어느 정도 돈도 벌었다. 모든 사업은 흥망성쇠가 있는 법이니 그도 사업이 기울고 아무 것도 손에 남은 게 없었다. 그 사이 그는 대학원을 다니며 학위를 쌓아나갔다. 그리고 전문자격증 시장에 눈을 돌려서 자격증대비반 수강생을 모아서 고득점으로 합격시키는 소위 일타강사가 되었다. 이후 돈이 모여서 국회위원의 꿈도 꾸어 보았다. 하필 지역을 강남으로 예비공천 후보로 배정받아 수억만 날리고 정치의 거품과 허망을 돈과 몸으로 체감한 후에 다시 교육프로그램을 가동시키면서 공공컨설팅과 채용시장에서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다.
직장에서 받아보지 못했던 ‘억대연봉’을 여러 가지 일을 하면서 달성해내기도 했다. 지금도 그는 대여섯가지의 일을 한다.
그와 필자는 지금도 서로를 신기하게 여긴다.
그는 필자가 대학교수나 한 직장에 All In 할 것으로 여겼었고 나 또한 그가 이렇게 다양한 일을 해내는 역량을 지니고 있을 줄 몰랐기에...
그는 일에 있어서 전형적인 Multi In 케이스다.
필자는 직장에 있어서 Multi In 케이스다.
첫 직장은 군기가 엄청난 영업사관학교로 불리던 기업이었고, 두 번째 직장은 아직도 대한민국에서 제일 큰 기업이고, 세 번째 직장은 지금은 망해버린 한 때 세계적인 컴퓨터기업이었고, 그 이후 전통적인 제조회사, 외국계 기업, 아웃소싱비지니스 기업, 다시 대기업, 문과출신임에도 IT 솔루션기업을 거쳐 일하고 있다.
필자의 일은 B2B 직판영업으로 시작하였고, 유통영업을 거쳐 유통기획과 마케팅커뮤니케이션, 구매대행 아웃소싱 영업과 관리, IT솔루션 마케팅과 영업을 거쳐서 공공기관 채용에 대한 수주와 운영대행 일을 하고 있으므로 다양한 일을 접하게 되고 수행하고 경험하고 역량을 조금씩 쌓아오게 되었다.
즉, 필자는 완벽하지는 않으나 직장과 일의 성격에 있어서 Multi In 케이스로 살아가고 있는 거다.
Multi In 케이스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①한 직장에서 일하지 않는다.
②비교적 안 잘린다. 자르기 전에 당당하게 사표 낸다.
③다양한 분야의 경험과 지식, 전문성을 가진다.
④예기치 않은 변화(실직, 기업파산 등)에 강하다.
오히려 변화를 능동적으로 리드한다.
⑤임원이 되지 못하면 나가서 CEO를 한다.
※한 시기에 두 개의 직장, 두 가지 이상의 일을 하기도 한다.
(직장인 + 강사 + 코칭 멘토 또는 작가 등)
Multi In 케이스의 직업인이 가지는 두드러진 기질과 성향 중에서 대표적으로는 ‘변화를 추구하는 성향’ 과 ‘도전정신’을 들 수 있겠다. 그들은 누군가 밀어내서가 아니라 그들이 스스로 새로운 직장이나 일거리를 찾고 일을 통한 ‘자아실현’과 ‘재화획득’ 의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역량을 지닌 이들로 보인다. 물론 필자는 아직도 한참 부족하지만...
어릴 적 어른들은 이렇게 말했다.
“열심히 공부해서 판, 검사 되거라. 안되면 선생님을 하든지 공무원을 하든지 군인해라!” 그랬다. 어른들은 공부를 잘해서 출세하거나, 출세 못하면 안정적으로 돈을 벌 수 있는 직업이 최고하고 여겼던 거다.
그 때는 7080시절이었기에...
지금은 판이 바뀌었다.
세계는 온라인으로 한 판으로 연결되었고, 개인은 그 판 속에서 또 다른 모든 개인과 1:1 또는 1:다수의 복합적인 사회관계망을 형성하고 있으며 대부분의 경제단위가 큰 비즈니스는 전통적인 제조업에서 서비스업으로 축의 이동이 일어났고, 문화와 예술과 지식 및 경험이 놀이형태로 발전하고 IT 기술의 혁신과 응용기술의 발달로 인하여 온라인 플랫폼에 기반한 비즈니스로 일자리와 일의 형태와 종류가 급변하고 있다.
요즘 어른들은 이해가 안되는 일들이 쏟아지고 있다.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전자화폐가 수억을 호가하고, 전자적으로 그린 그림이나 사진이 ‘유일한 것’ 이라는 증빙으로 NFT(Non-Fungible Token ; 대체불가능토큰)으로 명명되어 역시 수억을 호가하는 디지털 요지경 경제가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마치 봉이 김선달이 대동강물을 팔아먹었다는 옛 이야기는 애교스러울 정도이다.
더군다나, 요즘 세대(MZ세대 ; 90년대~00년대생)는 태어나면서부터 온라인과 모바일 세상에 던져졌고 그들은 개성을 중시하며, 재미있는 일을 추구하면서 엄청난 개인주의 성향을 보이면서도 환경을 중시하고 명분있는 가치소비에 관심을 기울이고 지불의향과 동조 및 공유할 줄 아는 모바일 스마트족이어서 필자의 세대와는 이종의 신인류처럼 보일 지경이다.
그러나 그들에게도 피할 수 없는 숙명과제인 먹고사는 일에 관한한 직업과 일은 필수도구이며, 그들 앞에 주어진 취업과 경제활동의 결과는 좁고 척박한 것이 송구할 정도이다. 그래서그들은 이미 변화한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시대에 자동으로 몸과 마음이 반응하고 있으며, 직업이나 일에 대한 선택과 도전에 기성세대가 가진 가치관과는 다르게 판단하고 행동하고 선택하면서 놀라운 일들을 만들어내고 설령 그것이 돈이 되지 않는 일일지라도 회피하지 않고 내가 즐거우면 그만인 행복한 이벤트와 새로운 경제추구의 도구와 방식을 속속 보여주고 있다.
재미삼아 만든 도지코인이 수억을 할 줄 누가 알았겠고, 지구온난화의 심각성을 알리자고 학교수업을 빼먹고 거리에서 구호를 외친 어린 소녀(그레타 툰베리)가 월드스타로 조명받을 줄 누가 짐작했겠는가?
젊은 그들은 Multi In 유전자를 이미 가지고 태어났고, 디지털 월드로 변화한 온라인 세계 속에서 다양한 취미와 재미, 노력과 발명을 거듭하면서 더욱 세상을 Multi 하게 이끌어가는 현재의 파도이며 내일의 기둥들인 것이다.
4. N잡러 - 필수인가? 선택인가?
※N잡러
복수를 뜻하는 N과 직업 Job 그리고 사람을 뜻하는 '러(er)'의 합성으로 만들어진 신조어로 본업 외에 재능이나 관심사를 살려 여러 직업으로 수입을 창출하는 사람을 뜻한다.
이제는 일반용어가 되어버린 'N잡러‘는 2, 3년전부터 회자되기 시작한 Multi In 직업인을 일컫는다. 과거에도 단 하나의 직업이 아닌 두가지를 병행하는 ’투잡족‘은 존재하였다. 직장을 다니면서 주간 또는 야간에 편의점 알바, 대리운전 등을 뛰는 생계형 투잡족부터 대학교수로 일하면서 기업의 경영고문이나 컨설턴트로 활동하는 전문가형 투잡족도 있어왔다. 그런데 코로나 팬데믹이 불어닥친 이 시기가 하필 국내의 경우는 전 연령대를 통틀어 가장 인구 수가 많은 베이비부머 세대의 은퇴시기와 겹치고, MZ세대의 취업문이 얼어버리는 취업 빙하기가 겹치니 세대와 나이를 불문하고 N잡러의 길을 원하고 먹고 살려고 뛰다 보니 몇 개의 일을 동시에 해내고 있는 N잡러가 되어 있는 현상인거다.
여러분은 N잡러가 되고 싶은가?
N잡러는 필수사항인가 선택사항인가?
질문을 드려본다.
시대적 상황이나, 경제적 여건, 문화 및 과학적 변화 그리고 국제 트랜드의 기조는 선진국은 선진국이어서 후진국은 후진국이어서 형태는 다르지만 N잡러로 살아가야 하는 시대로 몰려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누구도 대세의 흐름을 막을 수는 없지만 선택의 여부에 대한 것은 자신만의 의지가 솔루션이 될 수 있으므로 N잡러의 필수, 선택여부는 여러분에게 맡겨두려고 한다.
다만 평생직장의 개념이 사라지고 평생직업이 중요시되고, 부동산가격의 폭등에 따른 자신이 이룰 수 있는 자산에 대한 왜소함과 박탈감이 증대되고, 취업문은 좁아서 구직을 단념하는 청년들이 늘어나 창업으로 눈을 돌리지만 창업 3년 안에 80%가 문을 닫게 되는 ‘폐업공화국’ 에 살다보니 자연스럽게 직업을 확보한 이들은 20대부터 30대까지 악착같이 돈을 모아서 40이전에 조기은퇴를 하고 유튜버나 세계를 돌면서 인생을 한 판 신나게 놀아보는 파이어족까지 생겨나고 있다.
최근에는 비트코인에 올인하는 온라인경제 한탕주의가 극심하고, 로또의 일확천금을 꿈이라도 꾸어보자는 안위로 경제사정이 나빠진 현실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로또 매출은 5조에 육박할 정도로 해마다 매출이 급성장하는 기현상을 보이고 있다.
결국, 80%의 일반성인에게 N잡러는 필수라고 생각한다.
다만 N잡러를 원하는 이유가 ‘돈’ 때문이라면 마음 아픈 일이고 설령 ‘돈’을 위해 N잡러가 되어야한다고 하더라도 본질의 가치를 잊지 말았으면 한다.
‘본업 외에 재능이나 관심사를 살려 여러 직업으로 수입을 창출하는 사람’
즉, 주된 일은 고정적으로 하나가 있어야 한다. 설령 그것이 가사노동이라고 할지라도. 그리고 자신의 재능이 무엇인지 충분히 객관적으로 살피고 그것을 재능기부 또는 유료수익으로 환원시킬 수 있는 일을 찾는 것이 현명한 N잡러의 미덕인 것으로 본다. 모든 N잡러가 꼭 ‘돈’을 위해 여러 가지 일을 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점도 눈여겨 볼만하다. 필자가 아는 한 어른은 비교적 넉넉한 자산을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여러 가지 일을 하는 N잡러로 살아가고 있다. 그는 인터넷신문기사를 쓰고, 목공으로 소품을 만들고 책을 쓰며 건축기술분야의 자문역으로 일하면서 일반적인 보수의 10%만 받으면서 일정기간 일을 한다. 점심시간에는 30분간 낮잠을 꼭 자면서 점심을 먹지 않는다. 그의 인생목표는 N잡러이고 활동의 최종목표는 ‘돈’보다는 ‘재능의 활용’인 것이다.
그것이 건강하게 사는 비결이라고 한다. 70이 넘은 나이다.
필자는 N잡러를 꿈꾸지 않았다. 지금도 솔직히 N잡러를 하고 싶지 않다. 청년시절부터 지금까지 Multi In 직업인으로 살아 온 탓에 이제는 ‘오직 한 분야’만 집중하면서 조금은 느리게 그리고 깊게 관조하면서 일을 하고 싶다. 그러나 현실은 필자에게도 자의반 타의반 N잡러의 길을 제시하였다.
이미 7년 전부터 중소기업 코칭 컨설턴트로 활동해 왔으며, 공공기관에서 주관하는 심사평가의 평가위원으로도 3년 전부터는 활동하게 되었고 작년부터는 공공기관 면접관 교육의 강사로 데뷔하였다. IT H/W와 S/W 영업과 마케팅만 해오던 필자가 공공기관의 직원채용 전과정을 대행하는 PM역을 맡고 있으며, 강의에 관심과 약간의 재능이 있는 터라 영업-마케팅분야 이외의 강의 콘텐츠에도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고 있다.
더 나이가 들면 시니어 모델데뷔와 지금 조금씩 써나가고 있는 책을 출판할 계획도 있다.
특출나거나 아주 깊은 지식이나 기술을 전달하고 공유할 정도로 박식한 사람은 아니기에 넓고 얇은 지식과 경험이라도 본연의 일(영업과 마케팅)에 빗대어 해석해 보고, 응용해 보고 나만의 것으로 만들어 보려고 하는 도전정신은 있다. 아울러 N잡러로 인정을 받으려면 그의 활동에 결과물이 있어야 하고 그 결과물이 자신만을 위한 것이기보다는 ‘공유하고 성장하고 지원하는 것’ 이 되었을 때 사람의 도리를 다하는 것이라 여겨지기에 ‘선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N잡러가 되길 소원한다.
N잡러를 꿈꾸지 않았지만 N잡러가 되어가고 있다.
세상은 나를 향해 준비되어 있지 않다. 내가 준비되어 있으면 된다.
디지털세상이 AI세상으로 그리고 그 이후 더 모르겠는 세상이 다가올 것이지만 N잡러의 특권-다양성의 향유-을 누리면서 ‘기본에 충실하고 한 분야의 전문가이면서 두 세개의 역할’ 도 거뜬하게 즐기는 Muiti Performer 가 되길 노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