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도 그런 일에 엮이거나 노출되고 싶지않지만 불가항력으로 벌어지는 현상 앞에선 직장인은 그저 하나의 소품같은 초라함을 느끼게 되는거다.
화사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
두 개의 큰 부문이 하나로 합해지면서 필자가 속한 조직에서도 물리적으로 두 사업부가 하나로 합해져야했다. 더군다나 두 개의 영업팀이 한 개로 축소되었고 컴퓨터부문의 팀장이 연구소로 발령이 나면서 공석이 되었다.
덕분에 나의 영업 면면을 잘 알던 이사님은 나를 팀장대행으로 임명하고 팀장책상에 앉게했다.
당시 나는 대리였고 팀장은 과장만 보임할 수 있었던 터라 '팀장대행' 이란 타이틀로 과장책상에 앉을 수 있었다.
당시 팀장책상은 사원책상의 두배 사이즈였고 좌우측으로 서랍장도 두 개 배치되었다. 게다가 ㄷ 자 배치로 중앙에서 정면을 좌우로 보면서 팀원을 보는 권위적인 배치형태였다.
즉, 책상의 크기와 위치가 그 사람의 지위와 권위를 나타내는 노골적인 수직서열문화의 아이콘이었다.
기분이 좋았다. 영업 아이템도 추가되고 매출볼륨도 커져서 영업하는 맛도 두배로 상승했다. 두어달이 지나고 임원교체가 있었고 신임 이사님이 오시기 전에 나는 여름휴가를 가졌다.
휴가 복귀 후 사무실로 출근했는데 내 책상이 없어졌다. 영문을 몰라서 총무직원에게 물어 보았더니 신임 이사님이 내 자리를 사원자리로 바꾸고 팀장 책상을 비우라고 했던 것이었다.
무시를 당한 기분이었다
대놓고 신임 이사님께 속내를 드러낼 수도 없었다.
특히 그 분은 엄격하고 원칙주의자에 실적중심으로 직원을 평가하기로 소문난 분이었다.
많이 속상했지만 안내가 필요했다. 그리고 지혜가 필요했다.
실적으로 승부하자!
마침 모 은행 프로젝트가 있었고 팀원들과 함께 함께 악착같이 영업한 결과 천여대의 컴퓨터 매출계약을 성사시켰다.
그 과정에서 영업상황 중간보고 등을 직접 보고해 가면서 신임 이사님의 리더십 성향을 느낄 수 있었다.
객관적인 사실과 성과를 중시하고 매출목표를 달성하려고 노력하는 직원을 인정하는 분이었다.
석달 뒤에 여전히 대리인 나는 다시 커다란 팀장 책상에 앉았다. 일년정도 그 이사님을 모시고 영업했다.
황00 이사님.
그 분을 모시는 동안 팀의 매출은 계속 신장했고,
대부분의 직원들은 어려워하던 그분의 엄격하고 딱딱해 보이던 리더십의 외견과 달리 속마음은 유함이 가득한 걸 느낄 수 있었다.
나보다 이십년은 먼저 영업에 입문하셨고 그 당시는 경쟁사와 전쟁을 방불케하는 영업현장에서 생존을 위해 경쟁을 극복하고,
승진을 위해 피도 눈물도 없이 매출목표 필달을 해야만 임원이 될 수 있었기에 강철인간화 될 수 밖에 없었던 거였다.
팀장역할을 했기에 대면보고 기회가 많았고 처음엔 긴장이 되었으나 거듭 대면할수록 이사님의 일에 대한 열정과 나에 대한 인정 (성과에 대한 인정을 포함)은 점점 이사님을 어려워하지않고 존경하게 만들었다.
어느 조직에나 무서운 리더, 악명높은 리더는 꼭 있다.그런데 처음부터 무섭고 악명 높거나 성품이 원래 그런 리더는 없다. 적어도 대기업의 그것도 영업의 임원은 성품이 포악한 빌런은 없다. 그분들의 속마음으로 들어가 보기 전에 떠도는 수식어로 또는 한두번의 조우로 느낀 외향적 리더십 스타일로 단정하면 곤란하다.
조직에서 회사에서 내 기준에서 억울하거나 어이없는 일을 당했을 때 '세 번만 참아보자' 그리고 삼일만, 삼주만, 삼개월만 일로 성과를 내고 있어보자. 조직이란 회사란 동호회가 아니기 때문에 '성과'가 있는 곳에 '인격'이 있고 영업조직은 원래 강철인간 부대라는 점을 잊지말아야 함은 이십년 전이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황00 이사님 전별식 모임에서 그 분의 사모님이 피아노 반주를 하고 이사님은 멋진 한국가곡을 불러주시고 본사로 가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