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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lvinstyle Mar 09. 2022

군인은 무엇을 지켰을까?

좋은 리더 되기 시리즈 07

1985년 봄.

연고도 없던 광주에서 군사훈련을 받았다. 삼개월간의 보병학교 교육이 끝나야 부대 배치를 받고 제대로 군 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다. 교육과정 중에 하이라이트는 '유격훈련'.


"지금부터 장교 여러분들에게 이름은 호명하지 않습니다. 교육생이란 호칭도 붙이지 않습니다. 여러분에게 배부한 번호표는 훈련복 상의 왼쪽 가슴에 부착합니다. 그 번호가 여러분의 호명 번호이고 번호 뒤에 올빼미를 붙입니다. 56번 올빼미, 61번 올빼미 이런 식입니다. 아시겠습니까?"


교관은 두어 명의 장교 교육생을 호명하였고, 버벅거리거나 대답 소리가 작다는 이유로 전체 장교 교육생들에게 '선착순 5명' 집합 얼차려를 30분 정도 반복하였다. 입에서 거품 날 정도로 선착순을 반복에 반복을 거듭했다. 이른바 유격훈련 군기잡기가 시작된 것이었다.


입 안이 쩍쩍 마르고 누런색 유격복은 땀으로 흥건히 젖고 연병장을 통나무 덩이처럼 굴러 다니다 보면

'나는 누구? 여긴 어디?'가 절로 나왔다.

유격훈련을 받아 본 대부분의 병역 필 대한민국 남자들의 공통분모가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지점 이리라.


피가 나고 알이 배긴다는 PT 체조

흙탕물 참호에서 서로밀어내는 참호격투

한 번만에 통과하기에는 너무 미끄러운 외다리 건너기

세상에서 제일 더러운 흙탕물을 어김없이 들이키게 되는 통나무 그네 타고 웅덩이 건너기

키의 두세 배는 되는 나무 벽을 외줄 타고 올라가기

공포심 극대화 높이인 11미터 상공에서 물로 떨어지기

군장을 우의로 패키징하고 부기삼아 강 건너기

그리고 암벽 로프 타고 거꾸로 내려오기 등의

훈련코스를 거친.


하이라이트 코스인 산꼭대기에서 250미터 레일 타고 호수로 빠지는 훈련은 나라를 지키러 모인 군인들에게 주어지는 엄숙하고 경건한 세례식 같기도 하였다.


그 산의 정상에 서면 조교는 청년 장교들에게 질문을 한다.

"61번 올빼미. 지금 누가 생각납니까?"


대부분의 장교 훈련생들은

"아무 생각 없습니다"였다.


"어머니! 를 전방에 크게 세 번 외칩니다"

조교의 명령에 자동으로 없던 효도심을 끄집어 올리며 어머니를 크게 외치고 250미터 레일을 잡고 힘차게 강으로 매달려 내려간다.


물론 "61번 올빼미 도강 준비 끝! 도강!"을 외친 후다.


일주일 간의 거칠고 힘든 유격훈련은 청년 장교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무엇을 지키기 위해 이 훈련을 받고 있냐고? 그 시절 청년 장교는 스스로를 지키고 있었다. 최소한 유격훈련에서만큼은 그랬다.

거칠고 힘들고 극단의 고통과 공포로 몰아넣던 체력과 심력을 단련시키는 프로그램이었으므로

스스로를 지켜내는 것이 백번 옳았다.


군인은 나라를 지키는 것이 미션이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자신을 먼저 지키는 것이 옳다.

자신을 지키는 것이 곧 나라를 지키는 것이다.


리더가 되고 싶어 청년은 장교가 되었고

대의 목표인 구국실천의 구체적인 리더십이 곧 스스로를 지켜내는 것임을 유격훈련을 통해 알게된거다.


청년 장교 시절이 무척 그립다. 61번 올빼미 시절이.

배경 사진은 1981년 봄
광주 보병학교 동기와 함께 유격훈련 중 찍은 사진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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