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북이 건물주 김대리 #116]

우당탕탕 결혼식

by Kema

결혼식 보름 전, 하루 휴가를 낸 김대리와 희윤은 리모델링 점검 차 호텔을 다시 찾았다.


예상보다 훨씬 정리된 모습이었다.

외벽 작업도 마무리됐고, 로비에 있던 자재들도 치워져 있었다.



“오빠, 생각보다 괜찮은데?”

“그러게. 이 정도면 별 문제 없겠어.”


두 사람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여전히 신부 대기실을 비롯한 식장 곳곳은 페인트 작업을 위한 스크래핑 중이었지만, 보름이나 남았으니 시간은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식장 단상 뒤 배경이 되어 줄 스크린 도어는 곧 설치 예정인 듯 비닐로 싸여진 채 가지런히 벽에 기대어져 있었다.



“지배인님, 보름 안에 완전히 공사 끝나지요?”

희윤이 어딘가 불안해 보이는 지배인을 보며 물었다.


“당연하지요. 페인트칠은 이삼일이면 끝나고, 스크린 도어 저게 설치되면 아주 멋질겁니다. 본식 때 닫아 두면 검은색 배경이라 고급스럽고, 하객들 식사 시간에는 활짝 열어서 밝은 하늘에 한강이 딱 나오면 분위기가 굉장할 겁니다.”


지배인은 애써 둘을 안심시켰다. 인사를 마치고 호텔을 나온 희윤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오빠, 근데 있잖아. 왜 작업하는 사람들이 아무도 없어?”

“음… 점심들 먹으러 간거 아닐까?”



희윤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마음 한 구석의 찜찜함을 떨치기 어려웠다.


하지만 뭐, 보름이나 남았으니까.









결혼식 당일, 새벽부터 부모님을 모시고 미용실에 들렀다 온 김대리와 희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주차장도 제법 모습을 갖추었고, 엘리베이터도 멀쩡히 작동했다. 제대로 눈을 붙이지 못한 피로가 안도감 속에 나른하게 몰려드는 순간, 익숙한 냄새가 코를 찔러왔다.


“오빠 이거 페인트 냄새 아니야?”


신부 대기실에 들어서는 순간, 머리가 흔들릴 정도의 냄새가 훅 하고 밀려왔다.

구석에는 미처 치우지 못한 롤러와 붓, 반쯤 비어 있는 페인트 말통이 놓여 있었다.



당황한 표정의 직원 두 명이 허둥대며 말했다.

“지금 창문 열고 환기 중이니까, 예식 때 정도면 괜찮아질 거에요.”

“보름 전에 페인트 작업 시작하고 있었는데, 어떻게 된 겁니까?”


페인트 냄새에 정신이 번쩍 든 김대리가 황급히 묻자, 주저하던 직원 중 한 명이 대답했다.

“작업자분들이 안나오셔서요.. 오늘 꼭 대금 드린다고 하니 새벽에 오셔서 마무리됐어요.”



의자를 찾아 희윤을 임시로 앉혀놓고, 김대리는 급하게 식장으로 향했다.


지배인은 반쯤 열린 스크린도어 앞에 서서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지배인님, 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지배인은 고개를 돌리더니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호텔은 공사비가 예상보다 커져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급기야 마지막 퍼즐인 페인트칠과 스크린도어 설치를 앞두고는 대금 지급 불능 상태에 다다랐다. 밀린 임금을 지급받지 못한 작업자들은 호텔을 떠나 다른 현장으로 향했고, 스크린도어 업체는 커다란 도어에 딱지를 붙여둔 채 설치 작업을 중단했다.


지배인은 오늘 받을 결혼식 대금으로 밀린 금액을 지불하겠다고 사정한 끝에, 예식 당일 간신히 구색을 갖출 정도로 공사가 마무리된 것이다.



“지금 제일 큰 문제가 이 도어입니다. 무게가 엄청난데, 모터를 달지 못했어요. 저랑 여직원들 몇 명이 붙어서 밀어봤는데.. 두세 사람 힘으로는 이게 움직이질 않아요.”


빛이 들어오는 것도, 완전히 차단되는 것도 아닌, 어정쩡하게 반쯤 열어놓은 모습으로 식을 올릴 수는 없었다. 김대리는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야, 니들 지금 어디야.”









“잠시만 비켜주세요. 지나갑니다”


정장을 차려 입은 청년 셋이 커다란 물건을 들고 로비를 날듯이 뛴다. 이제 막 모여들기 시작한 하객들은 삼삼오오 이야기꽃을 피우다가 움찔 하며 길을 터준다.


“저거 뭐야? 선풍기 아니야?

“오, 무슨 이벤트 하려나본데? 꽃가루 날리는 그거 하나?”

“이 사람아, 무슨 식장에서 꽃가루를 날려. 종이꽃을 날리겠지.”


하객들은 무언가 재밌는 볼거리를 기대하며 웃음을 터뜨렸다.







“야 이걸로는 안되겠어. 지배인님, 어디 선풍기 없어요?”


김대리의 전화를 받은 친구들이 급히 식장으로 뛰어들어왔다.

롤러를 치우다 정장에 흰 페인트가 묻어서 오만 욕을 퍼부어대긴 했어도, 친구들은 상황을 재빠르게 수습했다. 창문을 여는 것 만으로는 냄새가 빠지질 않자, 아예 창문을 틀에서 떼어버렸다.


그래도 냄새가 빠르게 가시질 않아, 대형 선풍기까지 들고 온 것이다.



“야 그거 방향 틀어! 그쪽 말고 창쪽으로!”

“아니 창 밖으로 바람을 쏘라고?”

“그쪽으로 쏘면 냄새가 식장으로 다 가잖아. 밖으로 몰아내야지!.”


우당탕거리며 선풍기를 고정시키자 거짓말처럼 바람이 몰아치며 냄새가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친구들 덕분에 신부 대기실의 페인트 냄새는 한결 옅어졌다. 드디어 희윤은 의자에 앉아 지인들을 맞기 시작했다.


“야 야 이게 끝이 아니야. 일루 와봐”


이제 예식 시간까지는 15분이 채 남질 않았다. 도어 얘기를 들은 친구들은 급하게 문 뒤쪽 공간으로 게걸음을 하며 들어갔다.


“씨X, 우리가 덤비면 이게 안닫히고 배겨? 다 들어와서 밀어!”


육중한 도어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친구들의 모습은 식장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지만, 혼인 서약과 양가 부모님에 대한 인사를 끝으로 신랑신부가 퇴장하는 순간까지 본식은 무사히 마무리가 되었다.


친구들은 먼지가 가득한 도어 뒤쪽에서 쏟아지는 해를 온실같은 통창을 통해 맞으며 삼십 분 째 땀을 흘리고 있었다.


"이제 끝났나?”

“사회자가 2부 식사 시작한다고 하면 타이밍 맞춰 문 열어야 하니까 집중해.”

“젠장 우리 정장 왜 입고 온거야…”


허탈한 표정으로 구겨진 양복을 바라보던 순간, 신호가 왔다.


“야, 야, 2부 시작한댄다. 하나, 둘, 셋!”


분위기있게 서서히 열리는 스크린도어를 보며 하객들은 감탄사를 내뱉었다.


장엄했던 식장에 햇빛이 채워지며 분위기는 마치 야외 피크닉처럼 화사하게 바뀌었다. 죽을 힘을 다해 도어를 민 친구들은 숨을 헐떡이며 뒤쪽 공간으로 빠져나왔다.


“야 이게 끝이지? 저거 또 안닫아도 되는거지?”

“이제 또 하래도 못해. 빨리 가서 땀 좀 닦고 먼지도 털자.”







“정말 송구스럽고 또 감사 드립니다.”


지배인은 하객들이 모두 떠난 식장에서 구겨진 양복을 입은 채 허겁지겁 밥을 먹던 김대리와 친구들 앞에서 연신 고개를 숙였다.


친구들 중 하나가 험악한 표정으로 일어나려 했지만, 김대리가 간신히 자리에 앉혀 놓았다. 지배인은 하늘이 내려주신 분들이라며, 호텔 뷔페 식사권들을 나눠주었다.


“오픈하면 꼭 다시 찾아주세요. 제가 와인이라도 한 병씩 드리겠습니다.”


주먹을 쥐며 덤벼들 태세이던 친구들의 표정이 부드러워졌다.

마음이 풀어진 친구 하나는 결혼식 와서 일당 벌어간다며 농담을 하기도 했다.






몇 년 뒤, 김대리와 희윤이 앨범을 펼쳐 보았을 때, 사진 속에는 먼지와 땀으로 얼룩진 친구들이 신랑신부 옆에서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날의 긴장과 소동은 어디로 갔는지, 남은 건 두 사람이 진짜로 시작했다는 증거이자, 세상에서 가장 유쾌한 결혼식의 추억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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