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이사를 하다
처음 원룸에 들어갈 때는 SUV 트렁크만으로도 충분했지만, 2년이 흐른 지금은 살림이 늘어나 작은 용달차 한 대를 불러야 했다.
원룸에는 옵션으로 있던 냉장고와 세탁기도 새로 장만해야 했는데, 부지런한 희윤은 재활용센터를 뒤져 거저나 다름없는 값에 냉장고와 세탁기를 구해놨다.
세탁기는 한 모퉁이가 찌그러져 있었고, 냉장고에는 곤란하게도 장미가 그려져 있었지만 희윤은 개의치 않았다. 늘 다른 사람들이 찾지 않는 곳에 기회가 있는 법이다.
“사장님, 이거 나중에 이삿날 가져도 되죠?”
“예, 용달 불러서 바로 실어가면 됩니다. 젊은 새댁이 대단하네, 잘 살아요.”
“감사해요 사장님!”
희윤은 아기 옷을 넣을 작은 서랍장까지 얹어, 용달 기사님께 부탁해 이사 당일 한 번에 실어 오도록 해 두었다. 밥솥과 부직포 옷장, 개다리소반 같은 살림살이는 원룸에서 쓰던 그대로 들고 나왔다.
“어차피 전세집인데 언젠가 또 옮겨야 하잖아. 새거 사봤자 이사하다 다 망가질텐데.”
희윤은 씩씩하게 말했다.
전략적 궁상에 익숙해진 둘이었다. 아파트로 이사한다고 해서 크게 달라질 건 없었다.
별다른 추가 지출 없이, 원룸 전세금에 3천만 원을 더해 열일곱 평짜리 주공아파트로 이사할 수 있었다.
짐을 옮기는 소란에 옆집 아주머니가 슬리퍼를 끌고 복도에 나와 구경을 했다.
“새로 들어오시나 봐요?”
“네, 이번에 아기가 태어나서요.” 희윤이 웃으며 대답했다.
“아이구 잘 왔네. 여기 단지는 애 키우기 좋아. 유모차 끌고 돌면 금세 다 친구 돼요.”
그 말에 둘은 인심 좋은 이웃들이 사는 포근한 동네에 온 듯 둘은 마음이 놓였다.
하지만 전세 계약을 하던 날은 달랐다.
집 주인은 어딘가 불만이 가득한 듯 보이는 할머니였다. 부동산에서 서류를 보는 내내 “너무 싸게 내놨다”며 도장 안 찍겠다고 투덜거렸고, 결국 부동산 아주머니가 손에 땀을 쥐고 설득한 끝에야 겨우 계약이 마무리되었다.
게다가 아기를 안고 있던 희윤을 쏘아보며 “애 있으면 집 금방 더러워지는데.. 젊은 애들이 청소나 할 줄 아나..” 하며 투덜거렸다. 속으로는 억울하고 화가 치밀었지만, 혹여 어렵게 구한 전세집이 날아갈까 두려워 “네, 네” 하고 고개를 조아릴 수밖에 없었다. 왜 사람들이 “자기 집이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지를 뼈저리게 깨달았다.
김대리도 주먹을 꼭 쥔 채 마음속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내가 집주인이 되면 절대 저렇게는 하지 말아야겠다.'
부엌 옆 작은 곁방 하나, 거실 겸 안방이 있는 열일곱 평 아파트.
베란다에 빨래를 널고, 복도에서 먼지를 털 수 있다는 사소한 여유조차도 소중한 행복이었다. 서른 평 신축 아파트에서 출발한 사람에게는 불편한 공간일지 몰라도, 원룸에서 시작한 둘에게는 작은 사치를 누리는 듯한 설렘이 있었다.
“오빠, 우리 집 진짜 넓다. 빨래 널 데가 있다는 게 이렇게 좋은 줄 몰랐어.”
“그러게. 여기 오길 잘했다. 애 키우기에도 훨씬 나을 거야.”
두 사람은 자신들의 힘으로 좁디좁은 원룸을 떠나 처음으로 ‘집다운 집’에 발을 디뎠다는 작은 성취감을 느끼며, 한발 더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