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프 등기
잔금일 아침, 김대리와 희윤은 일찍부터 서둘러 부동산에 도착했다.
‘잔금만 치르면 3억짜리 아파트가 우리 소유가 된다.’
스마트폰으로 이체 버튼만 누르면 끝나는 일이지만, 긴장감은 면접이나 시험보다 몇 배는 더 컸다.
“잔금 확인 되셨다네요."
중개사가 매도인과 확인 통화를 하며 손가락으로 OK 사인을 만들었다.
희윤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통화를 끝낸 중개사가 두툼한 서류 봉투를 들고 와 탁 하고 내려놓았다.
“이제부터 서류 챙기셔서 등기 하시면 됩니다. 셀프로 한다고 하셨죠?”
김대리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잔금은 치뤘지만 이게 끝이 아니었다.
아파트가 김대리와 희윤의 소유 부동산임을 공적으로 증명받기 위해서는, 부동산의 권리를 기록해서 공시하는 기관인 등기소에 이 거래를 등록해야 한다.
봉투 안에는 매도인이 부동산에 맡겨 놓은 인감증명서, 그리고 위임장과 등기필증 등이 가지런히 들어 있었다. 중개사는 하나하나 꺼내 보이며 설명했다.
“이게 없으면 소유권 이전등기 못 합니다. 등기소에 제출할 때는 매도인 인감증명서와 위임장, 그리고 취득세 납부한 영수증도 꼭 챙기셔야 하고요.”
“매도인 위임장이요?” 희윤이 미간을 곱게 찌푸리며 물었다.
“원래는 매수인 매도인 두 분이 함께 등기소에 가야하는데, 너무 번거롭고 어색하잖아요?
그래서 보통 매도인은 위임장만 써주고 빠지는거에요.”
중개사는 초보인 두 부부가 못미더웠는지 꼼꼼하게 설명을 이어나갔다.
어디에 메모할 틈도 새도 없이 귀를 세우고 들어야 할 만큼 복잡하게 들렸다.
“주민등록등본이랑 초본도 미리 떼어두세요. 혹시 한번에 등기 못하시더라도 그러려니 하세요. 보통 두세번씩들 가시고 그래요.”
희윤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눈동자가 바쁘게 흔들렸다. 김대리는 주먹을 꼭 쥐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번엔 내가 멋지게 준비해 주겠어.’
등기소 앞.
하율이가 꼬물대고 있는 아기띠를 앞에 맨 김대리는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오늘만큼은 사랑하는 희윤에게 제대로 된 자신의 멋진 모습을 보여주리라.
입구에 들어서자 마치 은행 창구 같은 접수대가 길게 늘어서 있었다.
번호표를 뽑고 기다리는 동안, 희윤은 아기띠 속 하율이를 쓰다듬으며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오빠가 서류 다 챙긴다고 했지? 뭐뭐 챙겼어?”
“등기신청서랑 매도인 인감증명서, 위임장, 등기필증, 그리고 우리 신분증이랑 또 뭐 필요하지…
아 맞다, 취득세 납부 영수증도 있어야 돼.”
김대리는 자신만만하게 봉투를 흔들었지만, 이내 희윤이 되물었다.
“등본은?”
김대리는 순간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하지만 이내 정신을 차렸다. 등본은 없지만 신분증이 있지 않은가.
이럴 줄 알고 운전면허증 뿐 아니라 꼼꼼하게 주민등록증까지 챙겨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등본 꼭 필요하겠어? 신분증만 있어도 우리가 매수인인거 확인 되잖아.”
“오빠, 부동산 사장님이 한 얘기 기억 안나? 등기부에 매수인 현재 주소가 들어간댔잖아.”
“그건 주민등록증에도 쓰여 있어.” 필사적인 표정으로 김대리가 되물었다.
“오빠 신분증 주소는 결혼 전 꺼잖아.”
김대리는 순간 아차 싶었다.
주저앉고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순간 등기소 옆 건물이 주민센터였다는 사실이 생각났다.
“나 금방 다녀올게” 하고 몸을 돌려 뛰어나가려던 순간 희윤이 김대리의 귀때기를 붙잡았다.
“어딜 가. 그럴 줄 알고 내가 떼어둔게 있어.”
김대리는 부끄러워서인지 아파서인지 귓바퀴가 빨갛게 달아올랐다.
아기띠 안의 하율은 뭐가 좋은지 까르르 웃으며 두 손과 발로 김대리의 몸통을 팡팡 쳐댔다.
“서류 다 있네요. 접수되었습니다.”
김대리는 속으로 ‘예쓰!’를 외쳤다.
사소한 실수가 하나 있긴 했지만 김대리가 주도해서 챙겨온 서류들이 깐깐하기로 악명 높은 등기소에서 받아들여진 것이다.
하지만 희윤은 돌아서 나가려는 김대리의 뒷덜미를 잡으며 조용히 얘기했다.
“죄송하지만 저희가 처음이어서요,
혹시 서류 한 번만 살펴봐 주실수 있으실까요?”
왜 그러냐는 눈빛으로 희윤을 바라보는 김대리에게 희윤이 조용히 속삭였다.
“오빠, 실제 심사에서 보완 요청 들어오면 또 휴가내고 올 수 있어?”
모든 서류가 접수되었다는 확인증을 받아들고 두 사람은 동시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오빠, 우리 해냈다!”
“그러게. 돈 아끼겠다고 괜히 무리했나 싶었는데… 생각보다 재미…있네.”
희윤의 날카로운 눈빛에 김대리는 말꼬리를 늘어뜨렸다.
희윤은 하율이에게 입을 맞추며 속삭였다.
“하율아, 엄마 아빠가 드디어 집주인 됐어.”
하율이는 무슨 말인지 모른 채 뽀뽀 하며 입술을 삐죽 내밀었고,
아기의 귀여운 모습에 주변 모든 사람들의 표정까지 환하게 밝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