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체화된 목표
대리와 희윤은 일상을 계속 이어나갔다.
전략적 궁상은 시간이 갈수록 더 정교해졌고, 두 사람의 생활에 자연스레 녹아들었다.
이제는 예전처럼 마구잡이로 소비하던 시절이 있었는지조차 가물가물할 지경이었다.
한 달에 한 번, 둘만의 재무제표를 작성하는 의식도 계속됐다.
자산은 느리지만 꾸준하게 쌓였다.
하율이도 무럭무럭 커서 이제 꽤 먼 거리도 잘 걸어 다녔고,
무얼 하고 싶다거나 어디가 아프다거나 하는 의사표현도 제법 할 줄 알게 되었다.
하지만 두 사람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갈증이 있었다.
아파트를 샀고, 가격이 오르기는 했지만… 팔지 않는 이상 어디까지나 장부상의 숫자일 뿐이었다.
김대리와 희윤이 함께 꾸는 꿈은 ‘회사에 매달리지 않는 경제적 자유’였지만,
여전히 어떻게 이루어야 할 지는 선명하게 떠오르지 않았다.
"희윤아, 우리 목표를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 것 같아."
김대리의 말에 희윤이 고개를 들었다.
"무슨 얘기야?"
"우린 '경제적 자유' 를 목표로 했잖아. 월급 없이도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막연히 지금까지는 순자산이 10억 쯤 있으면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는데,
생각할 수록 그게 그렇게 단순하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어."
"음... 어떤 생각을 했어?"
"예를 들어, 우리가 산 아파트의 가격이 올라서 10억이 됐다고 가정해 보자.
우리가 직접 들어가 살고, 전세금은 이미 반환한 상태라면, 우리 순자산은 얼마지?"
"음...부채 없이 자산만 10억이니 순자산도 10억이지?"
"맞아. 순자산이 10억이야.
하지만 이런 상황을 두고 우리가 경제적 자유를 얻었다고 할 수 있을까?"
희윤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10억 짜리 집에 살며 부채가 없다면 분명 흐뭇하고 든든하겠지만,
생활을 지탱할 수 있는 소득이 없으니 여전히 회사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그럼 10억이 된 아파트를 팔고, 우리는 3억짜리 집으로 들어간다고 해 보자.
그리고 남는 7억으로 생활을 한다면 어떨까?"
희윤은 머릿속으로 잠시 계산을 해 보고 다시 고개를 흔들었다.
"아끼고 아껴 월 300만원으로 생활한다 해도, 20년이 채 안 되서 돈이 다 떨어질거야.
게다가 인플레이션도 있잖아. 생활비는 그 동안 몇 배나 뛸텐데...
그리고 난 이런 방식은 싫어.
자산이 유지되거나 늘어나야지, 시간이 갈 수록 줄어드는 걸 보는 건 너무 불안하고 기분 나쁠 것 같아."
김대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애써 모은 자산이 줄어드는 걸 보는 일은 결코 유쾌하지 않을 거야.
그래서 단순히 10억을 달성하는 것 보다,
그 10억이 어떤 형태로 이루어져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
희윤도 고개를 끄덕였다. 김대리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알 것 같았다.
"오빠 말은 결국 그 10억이 얼마만큼의 현금흐름을 만들어 내는지가 중요하다는 거지?"
"맞아. 최소한 생활을 지탱할 만큼은 만들어져야 월급에 기대지 않을 수 있으니까.
그리고 중요한 게 하나 더 있어."
"뭔데?"
"아까 희윤이 네가 말한 대로, 바로 인플레이션이야.
자산에서 나오는 현금흐름이 반드시 최소한 인플레이션만큼은 늘어나야 해.
그렇지 않으면 당장은 월급에 기대지 않고 살 수 있겠지만,
시간이 갈 수록 실질 소비 수준을 줄이거나, 원금을 까먹을 수 밖에 없어."
희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가진 목표를 구체화해야 한다는 말이 바로 이거였구나."
"응. 지금까지는 종잣돈을 모으는 데만 집중했기에 단순히 10억이라는 숫자가 의미가 있었지만,
그게 진짜 우리가 원하는 삶으로 이어지려면 더 구체적으로 생각해야만 한다고 느꼈어."
"언제 그런 걸 느꼈어?"
"사람들이 흔히 1억을 모으는 게 힘들고, 그 이후에는 눈덩이처럼 빨라진다고 하잖아.
그런데 막상 해 보니까 똑같더라고.
눈덩이같이 만들기 위해서는 그 1억으로 추가적인 현금흐름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걸 깨달았어.
우리도 아파트를 샀고, 운 좋게 가격도 좀 올랐지만, 현금흐름이 생긴 건 아니잖아.
그래서 이런 방식으로 정말 경제적 자유를 얻을 수 있는지가 의문스러웠어."
희윤은 가만히 김대리의 손을 잡았다.
김대리의 말이 옳았다.
둘의 꿈은 ‘회사에 매달리지 않는 경제적 자유’였고,
그 꿈을 이루려면, 월급을 대신할 안정적인 현금흐름이 필요했다.
아파트를 사고팔아 실제 현금을 손에 쥔다 해도,
안정적으로 들어오는 현금흐름이라고 부를 수는 없다.
"그럼 이제 목표를 뭘로 정하면 좋을까?"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현금흐름을 만드는 자산을 쌓는 걸로 하자."
"좋아. 그리고 그 현금흐름은 최소한 인플레이션 만큼은 늘어나야 하고?"
"맞아. 거기다 자산 자체도 까먹으면 안되는거고."
"이렇게 해놓으니까 훨씬 구체적이어 보인다.
근데 오빠, 우리에게 필요한 현금흐름이 얼마나 될까?"
"음... 아직은 하율이도 어리고 해서 잘 모르겠어,
금액은 나중에 정하더라도,
우선은 우리 둘 중 한 사람의 월급이라도 대체하는 걸 목표로 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