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쓰는 편집장 Mar 02. 2022

유진 오닐, <밤으로의 긴 여로> - 같은 언어

반드시 좋지만은 않은, 이해

  같은 언어를 사용한다는 건, 긴 설명 없이도 이해하고 이해받는다는 느낌과 동시에, 저 사람의 깊은 속을 들여다 볼 수 있고 나 또한 드러내지 않은 속을 이미 다 들킨다는 불편함을 안겨주기도 한다. 내 영혼을 투명하게 들여다보는 사람에게 내가 평화롭지 못할 때 내 속을 가차 없이 들키는 것은 상당히 불편하다. 그리고 만약 둘 사이의 관계가 온전치 못할 때는 배로 더 고통스러울 수 있다


  저자 분이 유진 오닐의 <밤으로의 긴 여로>에 관해 쓴 글을 편집하다가, 뭔가 한 대 얻어 맞은 느낌. 극중의 가족은 불화 중에도 문학이라는 공통 언어로 정서적 교감을 이어간다. 그런데 때로는 서로에 대한 이해가 더 싫었을 수도 있다는 거야. 내 이해의 노력이 되레 상대에게는 부담이었을까? 그냥 문득 그런 생각이 스치던, 밤으로의 긴 미로 속에서...

작가의 이전글 사르트르와 카뮈 - 앙가주망(engagement) 문학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