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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편집장 Jun 28. 2021

여전히 어리고 약한

사랑니의 어원

   몇 년 전에 사랑니의 어원을 처음 알게 되었다. 사랑과는 전혀 무관한, ‘살안니’란다. 언제부터 내 치열 속에 끼어들었는지도 알지 못하고 있었는데, 썩은 후에 통증으로야 다른 치아와의 차이의 관계를 깨닫는, 원래는 없던 것. 나도 모르는 사이 내 마음에 들어와 아픔으로 내 모든 것들을 헤집어놓는다 점에서, ‘사랑니’라는 음운변화가 적절한 것 같기도 하다.


   아주 오랜만에 나를 찾아왔지만 별로 반갑지 않은 치통. 어린 시절과 달라진 게 없는 치과 앞에서의 두려움. 그래도 어린 시절보다는 제법 잘 참아내는 마취주사의 따끔함. 간호사는 발치 후 주의해야 할 것들에 대해 알려준다. 혈액 순환이 원활하면 상처가 아무는 시간이 오래 걸릴 수 있느니 술과 운동을 삼가라고…. 그런데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은 마음도 어린 시절로부터 별반 달라진 건 없다. 또한 ‘어른의 치기’로 그 정도의 충고쯤은 간단히 무시해준다. 이런 날은 꼭 술이 댕기기 마련, 공교롭게도 그 인력의 범위 안을 스쳐 지나고 있던 누군가와의 우연도 결코 피해가지 않는다. 마취가 풀리기도 전에 지인에게서 술 한 잔 하자라는 연락이 온 것. 시작할 때는 그저 맥주 한 두 잔에서 끝내려고 했던 술자리였건만, 맥주 한 잔을 넘긴 순간에 이미 선은 넘은 것이다. 마취가 풀릴 즈음부터 술에 취하기 시작한다.

  

   그런 통증은 어릴 적에나 겪는 건 줄 알았는데, 이렇게나 어른이 된 나를 다시 주저앉히는 아픔. 이러저런 사랑의 곡절을 겪을 만큼 겪었다며, 이제 다시는 그런 사랑을 할 수 없을 거라며, 늘어놓던 내 착각과 오만을 밀어내며 들어차는 아픔. 그 아픔을 대하는 방식이 조금 더 어른스러워졌다는 차이가 있을 뿐, 그때보다 더 아프고 그때만큼이나 침착하지 못하다. 사랑 앞에서는 어른이 되지 못하는 것 같다. 여전히 어리고 약하다.   


- 민이언, 디페랑스, <불운이 우리를 비껴가지 않는 이유>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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