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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편집장 May 03. 2022

사르트르, <존재와 무> - 즉자존재, 대자존재

헤겔과 하이데거

  현전적인 것으로서는, 이런 인상들 - 그 수가 무한하다 해도 - 주관적인 것 속에 녹아들어가서 없어질 것이다. 이 인상에 객관적 존재를 주는 것은 그런 부재다. 그리하여 대상의 존재는 하나의 순전한 비존재가 되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의 ‘결여’로 정의된다. ... -p38


  우리는 이것을 즉자존재의 ‘우연성’이라고 부를 것이다. 즉자존재는 또한 ‘가능적인 것’에도 도출될 수 없다. 가능적인 것은 대자의 구조이다. 다시 말하면 가능적인 것은 존재의 다른 영역에 속한다. ... - p45



  이는 결국 헤겔과 하이데거의 융합이다. 이를테면, 책을 좋아하지 않은 이들에게는 책은 어딘가에 놓여 있고, 꽂혀 있고, 펼쳐 있는, 그저 사물일 수가 있잖아. 그러나 그 물성까지 사랑하는 이들에게 책은 사물 이상의 의미지. 이 경우가 즉자존재로부터 대자존재로 옮아가는 사례. 책의 사물성을 부정하면서 결여를 잉태하는 것. 그 無에 어떤 의미가 채워지는 것. 


  책이 그저 사물 이상은 아닌 이에게는, 그 작가가 세상에 존재한다는 사실도 그냥 자신과 하등 관련 없는 우연에 지나지 않지. 그러나 대상화가 된 책으로부터 꿈을 지니게 되는 이들에겐 그 작가와 작품이 자신을 위해 존재했다는 의미 부여를 하기도 하잖아. 사르트르가 프루스트를 인용하는 페이지도 있지만,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두고 저 비슷한 어록을 남긴 작가가 있었던 것 같은데 기억이 안 난다. 그래서 블로그에 뭐라도 글로 써놓아야 돼. 나중에 찾기 쉽게... 여튼 無는 그런 가능성이기도 하다는 거. 사르트르는 자유라고 부연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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