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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편집장 May 21. 2022

앙드레 말로, <인간의 조건> - 대의와 개인의 존엄성

신념과 이데올로기

... 소설의 도입부에는 첸이 무기 중개인을 살해하는 장면이 실려 있다. 국민당에게 무장 해제를 강요받은 혁명당원들은, 무기 중개인을 암살하고 무기를 탈취하고자 했던 것. 말로가 세밀한 묘사로 다룬 살해 장면에서는, 자신이 벌인 테러로 인해 죽은 사람들에게 느끼는 첸의 죄의식이 잇대어지기도 한다. 첸은 상부의 명령을, 손에 직접 피를 묻혀 본 적 없는 이론가들의 정치로 폄하하며, 조직에게도 저항하는 과격한 테러리스트로 변해 간다. 대의를 위해 저지른 살인이지만, 자신이 죽인 사람들에 대한 대속이, 자신의 목숨을 아끼지 않는 과감함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삶보다 더 큰 의미가 있는 죽음이라는 명분은, 실상 죽음에 관한 번민의 증상이었다. 소설의 제목이기도 한 ‘인간의 조건’이란, 이미 자신들의 죽음을 기정사실화 하고 있는 테러리스트들이 죽음을 대하는 방식이다. 대의라는 기치 아래로 앞당겨진 죽음 앞에서 고민하는 삶의 가치는, 즉 어떤 삶을 살 것인가를 결정하는,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 관한 고민이기도 하다. 그러나 기요는 죽음을 담보하는 신념이라는 것에 다소 회의적이다. 

  ‘인간의 조건’이 의미하는 바는, 결국 자신이 처한 상황적 조건 안에서 선택하는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성찰이다. 그러나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존엄의 문제는 그리 간단하지 않다. 각자가 처한 상황 내에서의 자기 결정에 대의적 기준이란 게 있을 수는 없다. 반드시 국민당을 선택하거나, 공산당을 선택해야 하는 이분법적 논리로 개인의 인생을 재단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국민당일 수도 공산당일 수도 없었던, 그런 거대 담론의 이념이 아니더라도 ‘인간의 조건’을 보장받고 싶었던 이들의 삶은, 이념이니 뭐니 보다 그저 조금 더 행복한 삶을 추구하고 싶었을 뿐이다. 과연 어떤 명분으로 이들을 비난할 수 있는가의 문제는, 사형 직전에 기요가 만났던, 기요를 글줄 꽤나 읽은 정치범이라 조롱했던 일반 수감자들이 대변하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이 소설이 감추고 있는 반전은, 테러리스트들보단 그 일반 수감자들이 실질적인 주인공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격변기의 상하이라는 도시에 모든 ‘부동(浮動)’하는 인간들이 모여들었다. 그들은 어느 한곳에 매여 있으면서도 제대로 정착하지 못하는 군상들이다. 그저 각자의 욕망을 위해서 몰려들었다. 타협에 타협을 거듭하는, 보신의 처신은 부당한가? 세상을 바꾸기 위한 혁명은 늘 옳고, 그 어떤 혁명가도 존경과 찬사를 받아야만 하는가? 소시민적 사고와 행동은 늘 비판받아 마땅한 일인가? 앙드레 말로는 그런 ‘인간의 조건’에까지 아울러 질문을 던지고 있다.


- <세기의 책>, 앙드레 말로, 『인간의 조건』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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