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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편집장 May 28. 2022

사르트르, <존재와 무>, 초승달의 비유

사주팔자를 보는 심리

... 그런 뜻에서 우리는 헤겔이 그 풍부성이 무한하다고 평가한 스피노자의 유명한 명제, ‘모든 규정은 부정이다’를 본떠, 오히려 다음과 같이 말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자기 자신의 모든 규정으로 있어야 하는 존재에 속하지 않는 모든 규정은 관념적인 부정이다.” ... - <존재와 무, 동서문화사, 정소성 역, p326 -


  우리가 익히 들어본, 철학자의 표상이라고 할 수 있는 이름들. 플라톤, 데카르트, 스피노자, 칸트, 니체... 이는 그만큼 철학사에서 자주 회자되는 주요 거점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스피노자 철학은 원리로서의 자연과 현상으로서의 자연을 일원론적으로 설명한 경우. 그로써 신과 인간에 대한 설명까지... 이 도식을 활용해 정신과 현상을 자신의 키워드로 점한, 철학사에서 스피노자주의로 가장 수혜를 입은 철학자를 헤겔이라고 말한다.


  원리라는 건 눈에 보이지 않잖아. 현상을 찢고 들어가 관념적으로 추출해내는 것이지. 사주팔자가 이런 논리이기도 해. 자연의 이법을 지닌 글자들의 추상성을 인간이 살아가는 구체적인 삶의 장면에 적용하는 것. 그런데 자연과 인간 사이에는 감각의 차이가 있다. 


  어느 역술가 분이 설명하길... 입춘은 자연의 입장에서는 봄의 시작이지만 인간이 느끼기엔 여전히 추운 시기잖아. 인간에게서 봄의 시작은 춘분이란다. 스피노자는 자연의 입장과 인간의 인식을 설명하면서 기독교 사회가 떠받드는 신을 비판한 것. 신의 모습대로 인간이 창조된 것이 아니라, 인간이 인간의 방식대로 신을 상상해냈다. 이 전제와 결론이 니체로까지 이어지는 철학의 역사. 사르트르는 즉자와 대자 관계로 설명하고 있는 거야.


  그런데 사르트르가 인간의 ‘대자’를 비판만 하는 건 아니고, 인간만이 지닌, 이 세계를 유의미화 하는 정신의 힘이라는 거야. 사르트르는 초승달에 비유한다. 현전하는 모습은 초승달이지만, 나머지 부분은 아직 無로 존재하는 거잖아. 無란, 이를테면, 보름달을 향해 가는, 당장에는 현전하지 않고 인식되지 않는 에너지인 셈. 그 에너지는 초승달에 만족하지 않고, 그것을 부정하며 나아간다. 그 힘이 관념적 형태라는 거지. 이걸 헤겔이 정신과 현상의 변증법적 과정으로 설명했던 거고...


  사르트르는 이 관념적 부정으로 ‘결여’로서의 욕망을 설명했던 거야. 스피노자의 ‘코나투스’, 니체의 ‘의지’, 프로이트의 ‘리비도’ 같은, 생의 방향성.


  사주팔자를 인문학적으로 설명해 보자면... 우리는 우리의 존재론적 환경의 바깥에서 사유할 수 없다. 쉽게 말하자면, 내가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 놓여 있다는 거야. 그런데 자연의 이법이 현상 기저에 존재하듯, 그런 존재론의 바깥에 내가 인식하지 못하는 無가 있다는 거지. 왜 그것을 욕망하는가? 그 현상 이면에서는 다른 목적이 숨겨져 있다는 거지. 이게 정신분석의 논리이기도 하고... 그 결여에 준해 세계를 바라보고, 그 결여를 무엇으로 채우는가로 존재가 결정(結晶)된다는, 후설과 하이데거를 잇는 사르트르의 ‘지향성’에 관한 문제인 거고...

  지금의 시대에 스피노자와 헤겔과 사르트르가 대중적이지는 않잖아. 그러나 지금의 시대에도 절판이 되지 않는 이유가 있는 거겠지? 보다 대중적인 사주팔자 역시 사라지지 않는, 되레 시장을 보다 확장해 가는 이유가 있는 거겠지? 결국 모두가 안고 살아가는 결여의 문제, 자신의 생활체계 내에서는 만족스런 대답을 얻을 수가 없으니까 무언가의 도움을 기대해 보고 싶은 것이기도 할 테고... 나의 바깥에 놓인 無가 지닌 가능성이 무엇인지를 알고 싶어 하는 심리이지 않겠어? 초승달에게는 아직 보이지 않는 보름달의 꿈, 혹은 결여, 욕망에 관한...


https://blog.naver.com/kemsan/222749495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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