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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편집장 Jun 01. 2022

들뢰즈, 라이프니츠, 모나드 - 사주팔자 인연법

주어와 술어

  “모든 술어는 주어 안에 있다.”


   라이프니츠의 모나드를 설명하는 들뢰즈의 어록, 이 말의 의미를 직관적으로 이해하는 분들도 있을 게다. 들뢰즈는 ‘계열’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데, 삶으로 비유하자면, 삶의 모든 양상은 주체의 성격으로 뻗어 나오는 잠재성이란 이야기.


  “최초의 파리는 이후 등장할 모든 파리들을 포함하며, 이 모든 파리들은 때가 되면 자신의 차례에 고유한 부분들을 펼치도록 호출된다.”


  이 어록도 뭔가 운명론 같지 않아? 물론 그렇지는 않지만... 들뢰즈는, 조건에 의해 정립되는 주체를 주제로 하는 구조주의 담론으로부터는 벗어나 있으면서도, 그들에 준한다. 주체가 조건에 종속되는 게 아니라, 그가 내재한 잠재성이 발현되는 조건을 만난다는 거야. 스피노자와 라이프니츠의 종합. 스피노자의 한 어록으로 대신하자면, “신은 우리가 할 수 없는 것이나 욕망하지 않는 것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금지하지 않는다.” 운명이란 것도 그것을 욕망하는 한에서 주어진다는 거지.


   사주팔자는 일주 기준으로 해석한다. 일주는 중년의 시기라고 말하는데, 수명이 늘어난 오늘날에는 40대 전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글자라고 본다. 그 즈음에는 사회의 중추를 담당하는 주체로 살아가는 시간이기도 하니까...


  그럼 년주와 월주를 거쳐 오는 10대, 20대, 30대에는 일주의 영향을 받지 않는가? 그렇진 않지. 들뢰즈의 어록으로 이해해볼 수 있다. 주어에 포함된 중년의 술어가 자신의 차례에 고유한 부분들을 펼치도록 호출되는 것.


  라이프니츠의 모나드 이론은 인생의 방정식을 의미한다. 정자와 난자에 이미 기입되어 있는 정보들처럼, 그 방정식에 준하는 일주가 과거에 영향을 미치다 결국 그 일주의 글자를 가장 활발히 쓸 시기를 맞이하는 것. 후설의 표현을 빌리자면, ‘미리 당김’이랄까? 말년을 의미하는 시주의 글자도 35세 전후로는 그렇게 끌어 쓴다고 봐.

  그럼 애초부터 모든 게 정해져 있는 거냐? 운명의 대상도 나의 모나드에 적혀 있을까? 그렇다면 상대방의 모나드에는 내가 적혀 있을까?


   방정식이라고 했지. x와 y는 미지수의 자리니까. 그럼에도 ‘누군가와의 만남’은 적혀 있다는 거야. 그 최고의 경우가 ‘귀인’의 형태일 테고... 누구를 만나게 될지, x에 관한 선택은 결국 주체가 하는 거지. 그런데 그 선택의 결과도 모나드에 y로 적혀 있다는 이야기.


  사주팔자에서도 이 정도만 볼 수 있더라구. 그가 반드시 그인지는 또 모를 일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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