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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편집장 Jun 03. 2022

사르트르, <존재와 무> - 부재, 기억과 의미

신림선 경전철

  헬스장 가는 길에 늘 보이던 경전철 공사 현장이었는데, 어느덧 개통을 했나 봐. 경기도에 내려가 살다가 다시 올라와 터를 잡은 동네. 이젠 한남동의 기억을 제끼고서, 가장 오래 산 서울이 되어 가고 있다. 그런데 저 자리에 원래 뭐가 있었는지가 기억이 안 나. 하긴 나한테 무슨 의미가 있는 자리라고, 사라진 것에 대한 기억까지야...


  춘천에도 ‘명동’이라고, 닭갈비 골목 상권인 시가지가 있는데, 내 모교가 그 근처에 있다. 고등학교 3년 내내 지하상가를 만드는 공사를 했다. 헬스장을 오가다 보는 풍경 속에서 그 시절을 떠올릴 때가 있었다. 의미라고 한다면 그 정도...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마들렌과 홍차 같은 거야. 공사 현장에서 이는 소음과 먼지일망정... 내게 어떤 당위성으로 다가오는 풍경들이 있잖아. 다시 그때처럼 살아보라는 듯...


  블로그 이웃에서, 우연히 출간 작업으로 인연을 맺게 된 한 저자 분과는 나이 차이가 꽤 난다. 그런데 그 분이 춘천 출신이었다는 또 하나의 우연. 내가 모교로 교생 실습을 나갔을 때, 그 근처 학교의 학생이었다. 그러니 내 고등학교 시절에 일어났던 일들을 기억이나 하겠어? 그렇듯 부재와 존재도 그것에 대한 기억이 있는 이들에게서나 의미화도 가능한 것.


... 피에르가 부재인 것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 있어서이다. 그 부재는 테레즈와의 관계에서의 피에르의 구체적인 존재방식의 하나이다. 부재는 인간존재들 사이의 하나의 유대관계이지 인간존재와 세계 사이의 유대관계가 아니다. 피에르가 ‘이 장소’에 부재하는 것은 테레즈와의 관계에 있어서이다. 그러므로 부재는 둘 또는 그 이상의 인간존재들 사이에서의 존재의 유대이고, 이런 인간존재들 사이에서의 하나의 근본적인 현전을 필요로 하는 것이며, 또한 이런 현전의 특수한 구체화의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 - <존재와 무>, 동서문화사, 정소성 역, p466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는 말. 의미화가 되어 있던 것들의 사라짐으로부터 일어나는 결여를 자각하는 순간, 역설적으로 ‘부재’가 그의 존재를 증명한다. 내게 별 의미가 없는 사람은, 있든 없든 별 관심도 없으니까.


  사라져버린... 한때나마 의미였던... 이젠 내게 없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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