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쓰는 편집장 Aug 02. 2022

비트겐슈타인, 언어의 분위기

<헤어질 결심>, '마침내'

40. 낱말들에 대한 자신의 느낌들에 관한 우리에게 말하기를, 자기에게는 ‘만일에’와 ‘그러나’가 같은 느낌을 지닌다고 하는 어떤 사람을 우리가 발견했다고 생각하자. - 우리가 그의 말을 믿지 않아도 될까? 그의 말은 아마 우리에게 기이한 느낌을 줄 것이다. 우리들은 ‘그는 전혀 우리의 놀이를 하고 있지 않다’라고 말했으면 한다. 또는 심지어, ‘이 사람 별종이네’라고 말이다.

이 사람이 ‘만일에’와 ‘그러나’라는 말들을 우리처럼 사용한다면, 우리는 그가 그 말들을 우리가 이해하듯 이해한다고 믿게 되지 않을까?


41. 우리들이 ‘만일에’라는 느낌을 어떤 의미의 자명한 상관자로 간주한다면, 우리들은 그 느낌의 심리학적 흥미로움을 잘못 평가하는 것이다. 우리들은 그것을 오히려 다른 맥락 속에서, 즉 그것이 등장하는 특별한 상황들의 맥락 속에서 보아야 한다.


42. 어떤 사람이 ‘만일에’라는 낱말을 발화하지 않는다면, 그는 ‘만일에’라는 느낌을 결코 갖지 않는가? 확실히, 오직 이러한 원인만이 이러한 느낌을 불러일으킨다면, 그건 아무튼 주목할 만한 일이다. 그리고 이는 일반적으로 낱말의 ‘분위기’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 어째서 우리들은 오직 이 낱말만이 이러한 분위기를 지닌다는 것을 그렇게 자명한 것으로 보는가?


43. ‘만일에’라는 느낌은 ‘만일에’라는 낱말에 동반되는 느낌이 아니다. 


- 비트겐슈타인, <철학적 탐구> 2부, 이영철 역, 책세상 -

  <헤어질 결심>에서의 ‘마침내’에 해당하는 경우랄까? 낱말은 하나의 의미로 고정되어 있는 게 아니며, 맥락에 따라 분위기도 달리 한다는, 후기 비트겐슈타인을 대변하는 주제.


  비트겐슈타인은 그 사람이 지닌 어휘가 그 사람이 지닌 세계라고 말한다. 그녀가 딛고 있는 삶의 문법 안에서 ‘마침내’는 그리 어색한 분위기가 아닌 운명론적 어휘일 테지.


  예전에 어느 출판사와의 작업에서... 내가 ‘그러나’로 쓴 부분을, 편집자가 죄다 ‘하지만’으로 고친 거야. 일상적으로 ‘되게’라는 말을 써도, 문어로 옮길 땐 ‘굉장히’로 쓰잖아. 내 느낌상으로는 ‘그러나’가 문어체다. 그렇다고 내가 ‘하지만’을 안 쓴 것도 아니다. 가벼운 느낌의 문장엔 ‘하지만’을 쓰기도 했는데, 이 편집자는 일괄적으로 ‘하지만’으로 고친 거야.


  내가 그 이유를 물었더니, 별 차이 없는 의미인데 왜 그러냐고 되레 내게 반문을 하는 거야. 내 말이, 별 차이가 없는 의미인데, 굳이 그걸 왜 고치냐 말이다. 저자의 호흡으로 가면 되는 일이지.


  그런데 출간하다 보년 이런 경우 흔하게 겪는다. 내가 더 이상 다른 출판사와는 작업하지 않고, 그냥 내 스스로 편집자 생활을 택한 이유이기도...

작가의 이전글 비트겐슈타인, <철학 탐구> - 언어의 조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