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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편집장 Aug 21. 2022

조지프 캠벨, <신의 가면 2 : 동양 신화>

사르트르, <출구없는 방>

사르트르의 희곡 <밀실>이 기억난다. 지옥의 한 방. 그 방은 비어 있다. 한 사람이 사환의 안내를 받으면서 들어온다. 다음에 어떤 여자가 나타난다. 또 다른 여자가 들어온다. 그것이 전부이다. 그들은 영원히 그곳에 있다. 그 지옥은 그들 중 어느 누구도 변화시킬 수 없다. 남자는 공감적 이해를 요구한다. 두 여자 중에서 나이 든 여자가 그러한 것을 제공할 수 있었으나, 그녀는 남자를 경멸하고 더 젊은 여자로부터 어떤 것을 요구하는 레즈비언이다. 젊은 여자의 눈은 단지 그 남자만을 쳐다보고 있으나, 그녀는 그 남자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그리고 그 남자를 자기 도취로부터 벗어나게 해줄 수도 없다. 희곡의 후반부에서 문이 잠시 열린다. 그들은 스스로 만들고 있는 지옥으로부터 자유롭게 도망을 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밖에는 공허 이외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모두 자기 방어적이므로 누구도 감히 알려지지 않은 세계로 나가려고 하지 않는다. 문이 닫히고 그들은 그곳에 그대로 남아 있다. ... - 조지프 캠벨, <신의 가면 2 : 동양 신화>, 이진구 역, p489 -


  문인으로서의 사르트르는 <구토> 밖에 읽어보지 않은 터라, 캠벨의 요약으로 대신 그 대강을... 국내 번역은 <출구없는 방>, 혹은 <닫힌 방>. 사르트르의 주제인 ‘타인은 지옥’으로 해석할 수 있겠으나, 캠벨가 인용한 의도는 레비스트로스적이다. 모든 학문이 서구 중심이라는 거야. 인간에 대해 연구하는 인간학조차도... 


  그냥 사르트르의 주제로 이해해도,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요약이지? 본 지 오래된 영화라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쇼생크 탈출>에서 오랜 세월동안 감옥에서 지낸 한 노인이 가석방이 되자 자살을 하지 않았나? 갇혀 있는 삶에 익숙해지면 그게 더 편한 거야. 그렇게 바래왔던 바깥의 시간을 막상 맞닥뜨리면 막막한 거고... 사르트르가 말하는 자유와 구속의 역설이기도... 칸트와 헤세의 어록을 패러디 하자면, 자유를 살아가는 일도 용기이며 재능이다.


  우리는 각자의 감옥에 갇혀 있기도 하지? 하여 서로에 대한 대타적 이해가 힘든, 내 의지의 바깥에 놓인 타인. 그런데 우리는 그 타인이 내 이해대로 이해하길 바라니까. 그래서 지옥인 것. 


  사랑도 그런 감옥의 성격이 있지? 내가 너 아니면 만날 사람이 없냐, 호기를 부려 보다가도, 이 사랑이 떠나가기 전에는 그 감옥으로부터 걸어 나오지도 못하는... 혹여 감옥 바깥에서 다시 만난 사람 앞에서 그 감옥의 시간을 떠올리며 그리워하는 것. 하긴 일반화할 수 없는, 그도 사람 나름인, 사랑, 그 놈 앞에서... 나와 같지 않은 ‘타인은 지옥’인 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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