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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편집장 Sep 07. 2022

<일본정신분석> - <너의 이름은>, 무스비

라캉의 언어

  “땅의 수호신 말이다. 옛말로 ‘무스비’라고 부른단다. 여기에 몇 가지 깊은 뜻이 있지. 실을 잇는 것도 무스비, 사람을 잇는 것도 무스비, 시간을 흐르는 것도 무스비. 전부 같은 말을 쓴단다. 이 말은 신을 부르는 말이자 신의 힘이란다. 우리가 만드는 실매듭도 신의 솜씨와 시간의 흐름을 나타내지. 한데 모야서 모양을 만든 후에 꼬아서 휘감고, 때로는 되돌리고, 끊기고, 또 이어진다. 그것이 실매듭이고 시간이고 무스비란다. 물이든 쌀이든 술이든, 무언가를 몸에 넣는 행위 또한 무스비라고 한단다. 사람 몸에 들어간 것은 영혼과 이어지는 법이지. 그러니 오늘 올리는 제사는 말이다. 미야미즈 가문의 핏줄이 몇 백 년이고 지켜온, 신과 인간을 단단히 이어주는 아주 소중한 전통이란다.” - 신카이 마코토, <너의 이름은> 중 -


  단적으로 말해 무스비는 神이다. <고사기(古事記)>는 무스비를 원초적 신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처럼 신으로서의 무스비는 <너의 이름은>에서 모든 관계성이자 시간이고 언어이며 실매듭이면서 동시에 먹는 행위를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그것은 실과 실, 사람과 사물, 사람과 사람, 몸과 영혼을 연결시켜주는 신의 힘이지 이자(二者) 관계의 매개체인 꿈 그 자체이기도 하다. 모든 관계성을 신적인 무스비로 여기는 관념은 지극히 일본적이다. ... - <일본정신분석> 박규태, 이학사, p327 -


  무엇보다 주목할 것은 신을 언어와 연관시키는 발상이다. 사실 고대 일본인은 언어와 사물 사이를 구분하지 않고 양자를 동일한 것으로 생각하여 말 속에 영혼이 깃들어 있다고 믿었다. 이를 ‘언령(言靈) 신앙’이라 한다. 통상 신은 인간과 사회와 세계의 구성에 관여하는 근원적인 존재로 여겨진다. 그렇다면 신으로서의 무스비를 언어와 동일시하는 위의 관념은 지극히 라캉적이라고 할 수 있다. ... - <일본정신분석> 박규태, 이학사, p327 -

  ‘이자(二者) 관계’란 라캉의 상상계(거울단계)를 설명하는 키워드인데, 주체란 자아와 타자의 사이에서의 효과라는 의미. 우리가 거울을 볼 때도, 타인들이 어떻게 볼까를 신경 쓰며 나를 단장하는 거잖아. 내 의지대로의 선택 같아도, 그 의지 안에 이미 수많은 타자의 담론이 관여하고... 


  그런 관계의 전제와 매개인 언어, 그것은 라캉적 주체와 상통한다. 그리고 그 한 사례가 ‘이름’이다. 그 기표가 어떻든 간에, 그가 타키이고 그녀가 미츠하란 사실은 변함이 없잖아. 그러나 그 이름 자체가 이미 인식의 매개인 바, 그리움의 밀려드는 순간 그 사람의 이름부터 불러보는 사랑이기도 하고... 


  라캉의 상징계를 설명할 때 자주 인용되는 김춘수의 <꽃>.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는 거. 이름을 부르지 않으면 개념으로 인식되지 않으니까. 나훈아의 노래를 빌리자면, ‘아무도 찾지 않는 바람 부는 언덕에 이름 모를 잡초’일 뿐. 하긴 ‘잡초’ 그 자체도 언어이고...


  세계는 그런 언어의 집합체라는 것. 이게 라캉이 말하는 상징계. 그런 무스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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