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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편집장 Sep 08. 2022

<일본정신분석> - 미야자키 하야오

소녀, 여성, 하늘

... 정신의학자 히라시마 나쓰코에 따르면 미야자키의 소녀 캐릭터들은 감독 자신의 내적 여성성이 작품 속에 나타난 것이다. 그러니까 소녀 캐릭터는 미야자키의 아니마가 무의식적으로 표현된 것이라는 말이다. 사실 거의 모든 작품 속에서 미야자키가 자신을 여성, 특히 소녀와 동일시하는 경향을 찾아볼 수 있다. 이런 경향 안에서 어른 남성 또는 근대적 아버지로부터의 도주 모티브가 숨어 있다. ... - <일본정신분석>, 박규태, p356 -


... 가령 <원령공주>의 등장인물 에보시는 문둥병자와 소외당한 자를 돌보는 따스한 여성 지도자이지만 동시에 강력한 군사 지도자로서 시시가미를 죽이기도 한다. 그려는 파괴와 재건을 동시에 상징하는 존재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늑대 모로는 현명하고 용감한 어머니이지만 잔인한 도살자이기도 하다. 산 또한 아시타카를 돌보아주는 부드러운 측면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적의에 찬 피투성이 얼굴로 무자비한 폭력을 휘두르는 공격적인 동물적 전사로 묘사되기도 한다. ... - <일본정신분석>, 박규태, p356 - 


... 여성과 ‘향수적인 기묘함’을 결부시켜보려는 근대적 경향은 실제로는 ‘근대화 이전의 문화적 혐오감을 일으키는 측면들과 미분화된 모성을 가진 신체적인 것’으로서의 아브젝시옹이 지배 집단으로부터 거부당하고 버림받는 과정의 한 형식일 뿐이다. ... - <일본정신분석>, 박규태, p359 -

  일본은 보수적인 나라잖아. 국민성이기도 한 장인정신을 그런 측면에서 접근할 필요도 있단다. 미야자키 작품에서의 소녀와 여성성은 그런 상징계적 질서로부터의 탈주라는 이야기. ‘아브젝시옹’은 크리스테바의 키워드로, 라캉의 상상계에 대응하는, 그의 어린 시절과 무관하지 않은 주제이기도 하다. 


  “살아 있다는 사실 자체가 실은 저주받은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정의 편에 서지 않았던 부모에 의해 키워졌다는 사실을 견디기 어려웠던 시기가 있었다. 그래서 나는 부모를 떠나 살았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집안이 세계대전 당시 전투기 군수업체였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진 이야기. 하여 청년 시절 내내 좌파활동을 하기도 했었고, 상징계의 폭력에 저항하는 판타지를 그려가기 시작한다.


  기득권과 지배담론으로부터 소외된 계층을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대속이 투영된 소녀와 여성이었다는 거지. 아이러니는 그 탈주의 공간이, 그의 트라우마이기도 하면서 그를 대변하는, 하늘이라는 점. 경계도 그어지지 않고, 방향도 나뉘지 않는, 중력으로부터의 자유.


  한 일본 평론가는 ‘그의 긍정은 존재가 아니라 운동을 향해 있다’고 말했단다. 이 바닥에서 지식인들과 마주하다 보면 종종 느끼는 모순은, 그 말이 향하고 있는 운동성보다는 그것을 말하고 있는 자기 존재가 더 중요한 듯한 이들에 관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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