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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편집장 Sep 14. 2022

가라타니 고진, <일본 정신의 기원> - 문자언어

라캉, 정신분석

중국문화권에서 한자를 기반으로 문자를 만든 것은 일본만이 아니었다. 그밖에도 안남(安南)문자, 서하(西夏)문자, 계단(契丹)문자, 여진(女眞)문자 혹은 조선의 이두(吏讀) 등이 있었다. 실제로 7세기 무렵의 만요가나(万葉仮名) - 이것으로 <만요슈(万葉集)>와 <고사기(古事記)>가 쓰여졌다 - 는 원래 조선에서 고안되어 사용된 것으로 일본의 만요가나는 반도에서 귀화한 사람들에 의해 고안되었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일본의 가나나 가타카나는 9세기경 관습적으로 고정된 한자의 표음적 사용(만요가나)을 간략하게 함으로써 자연발생적으로 만들어졌다. - <일본정신의 기원>, 가라타니 고진, 송태욱 역, 이매진, p64 -


어쨌든 세 종류의 문자를 사용해 말의 출처를 구별하고 있는 집단은 일본 이외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게다가 그런 방식이 천 년 이상에 이르고 있다. 이 특징을 무시하면 문자는 물론 일본의 모든 제도나 사고를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제도나 사로란 그러한 에크리튀르(문어)에 의해 가능하기 때문이다. ... - 같은 책, p65 -


라캉은 일본의 문자 용법을 대단히 흥미로워 했던 듯한데, 적어도 관련된 글을 세 번을 쓴 것 같다. 예를 들어 <에크리>의 일본어 번역판이 출판되었을 때 서문인 「일본 독자에게 부치는 글」에서 라캉은 일본어 같은 문자사용 방식을 쓰는 사람은 “정신분석이 불필요하다”라고 했다. 나아가 일본의 독자에게 “이 서문을 읽고 당장 내 책을 덮어버리고 싶은 기분이 들게 하고 싶다!”라고까지 말했다. 라캉이 주목한 것은 일본에서 한자를 훈으로 읽는다는 사실이었다. - 같은 책, p69 -


물론 나는 라캉의 말에 찬성할 수 없다. 사실 라캉은 반 농담으로 말했을 것이다. 다만 일본인의 정신분석에서 그 곤란함을 통찰함고 동시에, 그 핵심으로써 일본어의 문자 표현에서 음훈이 같이 쓰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역시 라캉다운 것이다. ... - 같은 책, p70 -

  契丹은 보통 ‘거란’으로 읽지 않나? ‘조선’이라는 대표성으로 한국을 표현한 것이면 몰라도, 시기도 조선은 아니지. 에크리튀르도 ‘문어’라기보다는 ‘문자 언어’겠지. 구어도 문자로는 기록할 수 있으니까. 전체적으로 번역이 매끄럽지는 않은 것 같은...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논어>나 <맹자>를 읽을 땐, 한국식 조사를 붙이는 경우가 있잖아. 이럴 때 ‘면’이나 ‘아’의 조사도 한자로 기입했는데, 이걸 ‘현토(懸吐)’라고 한다. 한자 그대로 쓴 게 아니라, 마치 일본어처럼 조금 더 간략하게 만든 기호로... 현대 중국어는 발음을 로마자로 기입하지만, 대만에서는 이런 식의 기호로 사용한다. 글자가 지닌 의미와는 별개로 표음의 기능인 거야. 일본어의 훈독 방식도 이런 경우라는 거지.


  가라타니 고진은 이전 포스팅에서 언급했던 일본의 ‘주체’성과 관련해서 라캉을 인용하고 있다. 언어의 구조는 무의식을 지배한다는 요지. 이 챕터는 그 중에서도 문자언어에 관한 이야기. 


  우리의 역사에선 조선까지만 해도 한자는, 기득권의 아비투스일망정 철학과 문학을 다루는, 이미 내면화가 된 문자였잖아. 하여 골수에까지 찬 문자에 대한 사대가 한글창제를 반대했던 것이었고... 


  일본은 조금 달랐다는 거야. 한자를 빌린 형태의 문자를 사용하지만, 역사 내내 한자는 외래문화로 간주되어 왔다는 것. 훈독의 방식은 한자를 수용하면서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 일본은 외래의 문화를 잘 수용하는 반면 토착화되지 않고 부유한다. 그게 문자의 영향이었을 수 있다는 거야. 라캉에게서 언어의 구조는 그 사회의 매커니즘을 대변하는 무의식이기도 하기에, 이런 해석을...


  예컨대 한자나 가타카나로서 수용된 것은 결국엔 외래적이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무엇을 받아들이든 상관없는 것이다. 외래적인 관념은 아무래도 한자나 가타카나로, 즉 표기에서 구별되는 이상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그 관념들은 본질적으로 내면화되는 일도 없고 또 저항도 받지 않는다. 불필요하다고 생각되면 그저 옆으로 치워질 뿐이다. 결과적으로 일본에는 외래적인 것이 모두 보존되게 된다고 할 수 있다. - 같은 책, p66 - 


  조금 어렵지? 결국 이도 언어의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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